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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가는 길

by 루펠 Jan 27. 2025

"여기가 어디야?"
지영이 물었다.
"잠시만. 인터넷이 느려서 지도가 안 나와."
"아니, 이쪽으로 쭉 가기만 하면 된다며? 거리도 얼마 안 되는데 한강이 나올 때까지 걸어오면 어떡해?"
지영이 짜증을 낸다. 항상 지영이는 이런 식이다. 친구가 없어서 불쌍해서 어울려 줬더니 조금만 몸이 힘들면 짜증을 주체를 하지 못한다.
"기다려 봐. 그 길에서 바로 오른쪽에 보였어야 하는데? 못 본 것 같은데 지나쳐 버렸나?"
내가 지영을 진정시키기 위해선 말을 멈추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요란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작은 입간판이라도 있었을 텐데? 혹시 오늘 문을 닫는 날인가? 문을 공지도 없이 갑자기 닫았을 수도 있나? 내가 다 확인했거든.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네이버 지도, 구글 지도 전부 찾아봤다고."
"혹시 네이버 지도로 따라가면 다른 데가 나오는 거 아냐? 누가 구글 지도를 보고 따라간다고 구글에 제대로 해 놓겠어?"
아차, 놓쳤다. 저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닥치게 하려면 쉬지 않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쉬지 않고>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지영은 절대 말을 자르지는 않지만 한 순간이라도, 마치 256분 쉼표만큼만 틈이 나도 즉시 끼어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니까. 그리고 그 짜증에 말려들면 정말로 내가 잘못한 것처럼 결론이 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틈을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된다. 지영도 진정 상태에서는 정상적으로 사과도 하고 수다도 떠는 아이니까 그것만 탓할 수도 없다. 나도 이런 것들을 알고 있으니 어울려 줄 수 있는 거지. 물론 지영이 내 성격을 알아보고 맞춰주는 것도 없지는 않다. 심하게 몰아붙이다가 어느 순간 내 표정을 보고 멈칫하고선 갑자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대던 것을 본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그런 때는 그냥 사과를 하면 된다고 말을 해 준 이후로는 곧잘 사과를 하고는 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영이 사과를 해야 할 만큼이나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낼 때까지 들어줄 이유가 없기에 사전에 차단을 하려는 것이다. 게다가 지영이 몸이 힘들 때 외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다. 신기하게도 지영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할 때도 그것 때문에 조급해지거나 화내는 것은 본 적이 없으니까. 아마도 누가 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이 아닌데 화를 마구 내는 모습이 주위 사람들을 쫓아냈을 것이다. 보통은 정신적으로 힘들 때 그러는 법인데 평소에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밤을 새우거나 해도 멀쩡한 애가 오래 걷거나 두 끼를 굶으면 갑자기 폭발해 버리니 말이다.
"야, 너 또 딴생각하지?"
지영이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야, 지금 지나온 길이 맞나 되짚어 생각하는 중이잖아."
"웃기지 마, 너 속으로 내 욕하고 있었잖아! 저 성질머리 또 지랄한다고 생각했지?"
"생각해 봐, 우리가 합정에서 이렇게 올라왔잖아?"
내가 드디어 화면에 뜬 지도를 지영의 눈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너 조금 전에 휴대폰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잖아!"
"그래서?"
"속으로 내 욕하고 있었지?"
"우리가 중간에 직진이라고 생각한 게 실제로는 옆길이었어. 이게 직진 같아 보이지만 큰길은 이렇게 동그랗게 돌잖아."
"아무튼 넌 나를 아주 손바닥 위에서 굴린다니까? 티 안 나게 하던가. 아니까 더 분해!"
"그래서 같이 안 갈 거야?"
"나 욕한 거 사과 안 하면."
"안 할 건데? 했어도 속으로 한 거잖아?"
"마음대로 해라. 혼자 가, 이제."
"넌? 사과 안 해서 같이 안 갈 거야? 속으로 욕한 게 사실이래도 그걸 말로 사과하면 나중에 말로 욕하고선 속으로 사과했다고 하면 되겠네?'
지영은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는 지영 얼굴을 요리조리 보고는 별로 화가 심하게 나지 않아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 방금 내려온 길을 다시 돌아서 올라갔다. 가던 길로 계속 가는 대신 바로 앞에 보이는 저 골목으로 들어가서 가로지르면 금세 카페가 있는 길이 나올 것이다.
골목으로 들어갈 때도 지영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
"나, 이 골목으로 들어간다!"
지영은 이쪽을 흘끔 보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골목은 그냥 주택가였지만 가운데쯤 지나자 반지하에 칵테일바가 있었다. 낮이라 장사는 하지 않았지만 젊은 남자 둘이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저녁 시간에 꼭 한 번 와봐야지,라고 생각을 하는 사이 골목이 곧 끝나고 골목 밖으로 나오기 직전에 담벼락에 <라이브 락카페>라는 말과 함께 오른쪽 화살표가 요란한 빨강과 검정으로 그려진 찌그러진 철제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진짜네? 우리 현정이 천재였구나?"
뒤통수로 날아오는 지영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언제 따라왔냐?"
"당연히 따라와야지, 길을 찾았다는데."
"그게 왜 당연해? 같이 안 간다며?"
"같이 안 왔잖아. 따라왔지."
능청스러운 지영의 말에 나는 깔깔 웃고 말았다.
"미안해, 친구야. 내가 커피 쏠게, 응?"
지영이 다시 팔을 잡아끌며 말한다. 이게 동생이지 친구냐...
그런데 막상 카페 앞에 도착하자 보컬 일정 때문에 쉰다고 깨알만 하게 손으로 쓴 A4용지가 카페 문에 붙어 있었다. 자, 이제 지영이의 징징 쇼가 다시 펼쳐질 테니 어서 1:1 필리버스터를 다시 시작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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