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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다 Sep 08. 2022

순한 빛이 드는 9월의 순포습지

강릉살이2_조용한 산책길을 찾고 있습니까?

순포습지는 강릉 경포와 사천 사이에 있습니다. 강릉 경포해변으로부터 북쪽으로 가면 사근진, 순긋, 순포해변이 펼쳐집니다. 남해와 동해의 차이, 서해의 차이는 구분할 수 있지만 경포, 사근진, 순긋, 순포 사이 바다는 제가 보기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지는 않습니다. 바다만 보자면요. 대신 그 앞의 분위기는 다릅니다. 경포는 스카이베이호텔이 우뚝 서있습니다. 관광지의 느낌을 지나면 사근진이 나오고 그 다음 순긋, 순포해변은 더 조용해집니다. 사천해변에 이르면 다시 관광지의 흥성스러운 느낌이 살아납니다.  




조용한 바다를 찾는다면 순포해변이 좋습니다. 군부대가 있어 그동안 철조망으로 막아놓았던 곳이기도 하고 솔숲이 바닷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어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솔숲 그늘에서 바다를 즐길 수 있습니다. 주말에는 자그마한 텐트나 의자를 펴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이나 편의점 등은 없습니다.  



순포해변 앞 순포습지 역시 경포호와는 다릅니다. 경포호와 유사한 석호(바닷물이 흘러드는 호수)이며 마찬가지로 한동안 농지로 개간되었다가 다시 습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경포호와 달리 인적이 많지 않습니다. 경포호에서는 관광객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이나 주민들이 운동이나 달리기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순포습지는 산책하는 사람을 아주 가끔 만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고요하고 한적합니다. 좀 더 자연이 살아있고 사람 손길이 들지 않는 곳이기도 하지만, 원래 농지로 개간했던 곳을 다시 습지화한 곳이므로 야생의 자연은 아닙니다. 오전이나 볕 좋은 날 조용한 산보를 즐기고 싶다면 데크가 잘 깔려있고 소나무숲이 멋진 순포습지가 좋습니다. 순포습지 초입에는 오늘에라는 카페가 있고 나가는 길에는 테라로사 사천점이 있으니 산책을 즐긴 뒤 커피 마시기에도 더할나위 없이 좋은 곳입니다.  



순포습지라는 이름은 순채나물이 많이 나던 곳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순채나물이 멸종위기 2급 생물이다보니 순포습지 가운데 순채나물이 자라는 연못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5월에서 8월 사이에는 붉은색 꽃이 핀다고 하는데 강릉에 사는 동안 한번도 순채나물의 꽃을 본 적은 없는 것을 보면, 사는 사람들이 더 모른다고 하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언제라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해 가지 않는 것이죠. 올해 못 갔으면 내년에 가지 하는 마음이지요. 그러다 영영 못 볼 수도 있으니 내년에는 순포습지에 순채나물 꽃을 보러 가야겠습니다.  



강릉 경포호는 7월이면 연꽃이 활짝 핍니다. 연꽃향이 그윽합니다. 연꽃밭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옆에 가시연 습지가 있습니다. 가시연은 잎만 봐도 연잎과 다릅니다. 가시가 난 듯한 가시연 잎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매력입니다. 이 가시연은 오랫동안 논밭에 숨어있던,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던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인 가시연의 씨앗이 어느 날 잎을 틔우며 강릉 경포호에 가시연습지라는 브랜드를 더했습니다. 순채나물은 일부러 심은 것이지만 가시연은 자기 혼자 피어났다고 합니다.  



가시연 꽃은 해가 뜰 때 잠깐 피어나 오전 11시나 정오 즈음 가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2년 동안 강릉에 살며 가시연 꽃을 딱 한 번 봤습니다. 보라색으로 물 속에서 피어나는 난생 처음 본 꽃이었습니다. 올해는 가시연 꽃을 보기 위해 시간이 있을 때 가끔 경포호에 갔으나 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올해 유독 흐린 날이 많아서이기도 하지요. 가시연의 꽃말은 '그대에게 행운을'이라니 가시연을 보면 행운이라는 이 꽃말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순포습지에도 정자 옆에 자그마하게 가시연 습지가 있습니다. 이제껏 순포습지를 갈 때면 데크를 따라 걷다 보니 몰랐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가시연 습지가 순포습지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앞으로 순포습지에 간다면 가시연이 피었나 정자 옆 습지를 한번씩 둘러보아야지요. 이번에 방문했을 때도 가시연 꽃은 보지 못했지만 이 정도 관심이라면 언젠가 다시 한번 '그대에게 행운을'을 경험할 지도요.   



순포습지는 대관령으로 지는 해가 비치는 빛깔이 일품인 곳입니다. 오후 무렵 가면 아주 따뜻한 빛을 만날 수 있습니다. 멀리 선자령의 풍력발전이 돌아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게다가 순포습지의 소나무 사이사이 비치는 빛도 따뜻합니다. 이 소나무 중 몇은 해송, 곰솔이고 몇은 그냥 소나무인데 순포습지에서는 소나무와 해송을 구분하기도 쉽습니다. 둘 다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소나무가 유독 붉어 보인다면 그냥 소나무입니다. 붉은 기가 돌지 않고 검은 빛이 난다면 해송, 곰솔입니다. 해송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소나무이고 일반 소나무인 적송과 달리 검은 빛이 돌아 곰솔이라고도 한다는데요. 수형도 다르고 이것저것 다르다고 하는데 침엽수 구분도 어려우니 우선 색으로 저것은 해송, 저것은 소나무 정도를 구분할 때면 왠지 내가 대견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은 강릉에 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포습지에 간다면, 카페 오늘에 앞에서 키우고 있는 고구마 밭에서 고구마꽃을 보는 것도 좋습니다. 고구마꽃도 올해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잘 피지 않는 꽃인데, 몇 해 전부터 고구마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기후변화 때문인지 품종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꼭 반길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도 고구마꽃을 볼 수 있는 기회인가 싶어 보러 갔더니 여름에는 무더기로 피었다가 9월이 되니 잎들 사이 보랏빛 꽃이 숨겨져 있습니다. 고구마꽃의 꽃말도 '행운'이지요. 원래는 100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꽃이라 이런 꽃말이 붙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행운이 무언가 알기 어려울 때도 있고 기후변화 때문에 꽃이 피는 것을 좋다고 보는 게 이상한 일인가 싶다가도 그래도 사진 찍게 되는 게 사람 마음이지요.  



순포습지 초입에는 해당화가 무리지어 펴있습니다. 보통 해당화는 진분홍색인 줄 알았는데 순포습지에서 처음으로 흰해당화를 보았습니다. 이게 해당화가 맞을까 해 모야모에 물어보니 맞다고 하더라구요. 지금은 꽃은 거의 져가고 있고 빨간 열매가 탐스러울 때입니다. 해당화 열매를 오래 전 과일이 귀할 때는 먹기도 했다고 하는데 따서 먹어볼 수도 있지만 별 맛은 없다고 합니다.  


습지이기에 순포습지에는 해당화와 함께 차풀, 갈풀 등 물가에 피는 풀들과 갈대, 강아지풀, 수크렁, 피, 물피 등 벼과의 풀들도 많습니다. 이를 구분하느라 애를 먹었으나 아직 설명할 정도의 실력은 없어 간단히 얘기하자면 강아지풀이 좀 더 작고 수크렁이 좀 더 크고 피와 물피는 까락의 길이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하늘하늘한 아이들 중 누구는 갈대이고 누구는 물피인가 구분하며 걷는 것은 재미있는 일일 수 있습니다.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요.  


차풀, 갈풀
물피, 피


걷다 보면 순포습지의 개구기, 메뚜기, 애벌레들이 사람이 없던 곳에 나타난 인간에 놀라 폴짝거리거나 나무 위에서 떨어지고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자연자연하구나 싶은 기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팥중이


뚜껑덩굴이나 새팥 같은 식물도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고 있어 자세히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뚜껑덩굴은 신기하게도 중간에 금 같은 게 있어 뚜껑을 열면 그 안에 열매가 있습니다. 새팥의 노란 꽃은 장미목답게 예뻐서 자세히 보면 깜짝 놀랄 정도인데 틈새에 자란다 해서 새팥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데 흔하다고 하니, 그동안 못 본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뚜껑덩굴
새팥


순포습지는 습지복원사업을 통해 다시 습지의 모습을 되찾은 곳이기에 이팝나무, 보리수나무, 족제비싸리, 빈도리, 벚나무, 버드나무, 낙우송 등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그 자리에 있을 법한 나무들이 많습니다.  보리수나무는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그 나무는 아니라고 하네요. 이름만 같다고 합니다.  



이팝나무, 보리수나무
빈도리, 족제비싸리

9월 1일에는 며느리배꼽의 열매가 색을 달리하며 예쁘고, 꼬리조팝, 병꽃나무 꽃이 약간 피어있었습니다. 미국쑥부쟁이가 피기 시작했고, 붉은 빛의 여뀌와 흰꽃여뀌 꽃도 볼 수 있습니다. 쉽싸리와 좀싸리도 꽃이 피어있습니다. 노란빛 마타리가 빛을 받을 때도 아름답습니다. 


며느리배꼽 열매, 꼬리조팝, 병꽃나무
여뀌, 흰꽃여뀌


쉽싸리, 좀싸리


해안가에서 자란다는 해란초, 미국실새삼, 갯씀바귀, 백령초도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물론 이걸 혼자 찾았을리는 없고 숲 공부를 하는 분들과 함께 찾아본 것입니다.  9월에 피는 꽃 찾아보기 놀이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지요. 


해란초
미국실새삼


깻씀바귀


백령풀

가끔은 이런 저런 이름을 아는 일은 무엇인가 모르겠고 그래도 또 알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것저것 묻고 답을 들은 것을 기억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순포습지에 가더라도 푸름과 볕, 서쪽의 대관령까지 가을 산책에 충분히 아름다운 곳입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왔을 때 간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걷기 편해 사람들이 밟지 않은 눈밭 트레킹을 마음껏 즐길 수도 있습니다.  

강릉에 순포습지가 있어 저는 좋지요. 


마타리



* 서영석 숲해설사님과 숲 공부하며 식물 이름이나 식생 관련하여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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