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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May 03. 2024

주변인도 같이 아프게 하는 사람

아빠의 대장암4기

  

아빠는 어느새 항암9차까지 맞았다. 처음 대장암4기를 진단받았을 때 언니가 했던 말대로 아빠의 투병생활은 본인은 아주 건강하게, 그리고 주변인은 아주 피말리게 진행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빠의 암은 대장암4기라는 단어가 무색할정도로 치료가 잘 진행되고 있다. 항암주사도 몸 전체가 아닌 암이 있는 부위를 겨냥해 소량의 양을 투여하는 방식이라 머리도 빠지지 않고 구토도 없으며 몸무게도 줄지 않고 있다. 항암주사의 부작용은 아빠가 아닌 아빠의 주변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암을 치료해가는 과정이니 어느정도의 고통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건만 아빠는 조금만 아파도 죽겠다며 주변에 별에별 짜증을 다 내고 있다. 살이 빠지면 안된다며 하루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산해진미 좋은건 다 먹겠다는 자세로 저러다간 엄마를 시켜 산삼이라도 뜯어오라고 보낼 기세다. 전자레인지 한번 돌리는것도 할줄 모르며 살아온 분이라 엄마는 하루종일 끼니를 챙겨주느라 잠시도 쉴틈이 없다. 아빠의 짜증은 엄마로 그치지 않고 나와 내 남편에게까지 무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리가 의사도 아니건만 병원에서 지어준 약들을 하나하나 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전화를 안받거나 안부전화를 한통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픈 아빠에게 관심이 없는 것들이라며 가만있는 엄마를 들기름이 무색할 정도로 들들 볶아댄다.      


아빠는 2년전 폐암과 코로나로 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상태와 자신의 상태를 비교해대느라 남편에게 시도때도없이 전화를 한다. 아버님이 폐암으로 투병하실땐 안부한번 묻지 않던 아빠는 본인도 같은 암이란 병에 걸리자 이제야 암이란 질병과 그 과정에 대해서 남편에게 꼬박꼬박 물어댄다. 시아버님은 폐암말기에 수술도 되지 않는 상태였고 항암도 3차까지밖에 받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아빠의 상태완 비교할 수가 없는 중환자셨건만 남편이 무슨 암전문 의료인도 아닌데 매번 자신의 증상을 얘기하며 이약은 먹어도 되는건지 내 배는 왜 아픈건지 묻고 또 묻는다. 시아버님의 투병기간과 지금 친정아빠의 투병기간은 그 병의 위중도 다르지만 너무나도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아버님은 폐암으로 투병을 하시면서도 자신의 몸보다는 본인이 떠난 후 남게되실 시어머님과 우리걱정을 하시느라 자신의 아픈 몸상태는 우리들에게 얘기도 꺼내지 않으셨다. 돈 없고 박복한 삶을 사셨지만 인품하나는 훌륭하셨다. 난 지금도 시아버님께 감사한 부분이 남편에게 물려주신 좋은 인성이다. 타고난 인품은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살수도 바꿀수도 없다.      


아빠의 암투병은 처음 친언니가 예상했던 대로 주변인들만 고생시키고 본인은 멀쩡히 나을 것이란 그 예언이 지금 착실하게 이루어져가고 있다. 경과가 좋아 항암도 3번만 더 맞으면 더 맞을 필요가 없다하고 관리만 잘 하면 완치라고 본다고 한다. 아빠는 완치라는 판명을 받아도 평생 관리라는 목적아래 지금과 같이 산해진미를 찾아먹으며 매일 자신의 몸 상태만 들여다보며 주변인들을 들들 볶아댈 것이다. 차라리 아빠가 직접 산삼이라도 따러 산속 깊은곳이라도 찾아들어가 자연인이 돼서 곰과 함께 동굴 같은데 들어가서 살았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곰도 아마 아빠의 짜증이 듣기 싫어서 곰발바닥으로 아빠를 쳐내버릴 것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 엄마는 진정 우직한 곰보다도 인내심이 끝내주는 분이다. 어떻게 저 모든 행동들을 매일 참고 사시는지 저러시다가 쓰러지시는 건 아닌지 아빠보단 언제나 엄마가 걱정된다.     


치매에 걸려도 곱게 걸리는 분이 있다고 한다. 한평생 남에게 피해 안주고 곱게 살아오신 분은 치매라는 병이 뇌를 잠식한다고 해도 본성은 헤칠수가 없기에 평생 살아오신 고운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평생 친정아빠처럼 본인만 알고 본인을 위해 살아온 사람은 병에 걸려도 아주 지독하게 병치레를 한다. 아빠가 만약 암이 아닌 치매였다면 벽에 바르는 똥정도는 예술가 빙의돼서 발라댔을 것이다.   

  

얼마 전 이른 아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아빠가 밤새 배가아파서 한잠도 못자서 아침일찍 병원에 와서 접수를 해놓은 상태라고 하셨다. 며칠 전 항암도 잘 받은 상태였고 검사결과도 좋아서 아플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갑자기 아프다는 아빠 때문에 엄마 역시 한잠도 주무시지 못한 채 걱정으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혹여나 또 수술을 하게 되는건 아닌지 어디 갑자기 전이가 된건 아닌지 엄마는 울먹거리며 전화를 하셨다. 난 그런데 별일이 아닐 것 같았다. 이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에 우선 엄마에게 선걱정은 하지 말고 의사선생님께 진료를 들어보라했다. 얼마간에 시간이 지났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포비야, 니 아빠 검사 다했는데..”

“그래 뭐라고 하셔? 어디 전이라도 된 거야?”

“하- 그게 아니고 글쎄 니 아빠 장에 똥이 가득 찼단다. 그래서 배가 아팠던 거래.”

“뭐?? 똥이 차서??”

“엑스레이 찍어보니까 장이 다 똥이란다.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밤새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알고 보니 처방약으로 준 변비약을 아빠는 변비약은 먹을 필요가 없다며 그 약을 빼고 먹지 않고 있었던 것이고, 항암치료로 장에 유산균이 없어진 상태의 아빠의 장엔 변이 계속 쌓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전이가 된 건 아니여서 다행이었지만 또 의사얘기를 듣지않고 혼자 판단해서 약을 먹지 않고 밤새 엄마를 힘들게 한 아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아빠는 그렇게 진단을 받고서도 의사말을 100% 믿지 못해 추가 CT촬영까지 예약을 해놓고서야 병원을 나오셨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변비약을 띄엄띄엄 먹으며 배가 아플 때마다 죽겠다며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본 변에 모양과 형태 색깔에 대해서 얘기를 한다. 그럼 난 매일 똑같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을 하며 내일은 더 나은 똥이 나와줄 것이라고 대답을 한다.      


사람은 언제가 되던 삶의 마지막순간이 다가올 것이고 그과정은 순탄치 않을 수 있다. 친정아빠와 시아버님은 같은 암을 앓았지만 다른 과정을 밟고 있다. 두 분의 경우를 보며 내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게 된다. 내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남은 시간을 걱정할 수 있는 온전한 정신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꺼져가는 내 몸 상태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저릴 가족들에게 내 고통을 일일이 다 열거하며 그들에게 또다른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아빠의 지금 모습은 먼훗날 내가 어떻게 행동 하는게 옳은지 미리 알려주고 있다. 난 그 어떤 순간이 온다 해도 의사선생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매일의 내 똥상태를 말하진 않을 것이다. 내 몸의 상태는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싶다. 가족에게 위로를 기대할 순 있겠지만 강요할 순 없다. 내 가족이 마지막순간에 나를 외면한다면 그것 또한 내가 쌓아온 삶의 결과일 것이다. 내 장을 걸고 맹세하고 싶다. 장에 칼이 들어와도 아무도 내 똥의 안위는 모르게 할 것이다. 내 마지막은 내가 책임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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