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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bi미경 Sep 30. 2024

이쁘니의 이쁜 손놀림


이쁘니와의 만남은 우연이였다. 아이를 등원시킨 후 운동을 가기 전 놀이학교 1층 커피숍에 잠시 들렸었다. 커피를 주문 후 기다리고 있는데 딸랑 소리와 함께 하얀 피부에 몸선이 예쁜 여인네가 들어왔다. 여자라면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예쁜 여자의 아우라를 느끼며 나는 주문한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고 아우라의 그녀는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왠지 아우라녀가 아우라를 뿜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몰려들었고 난 슬그머니 그녀 쪽을 바라봤다.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이건 뭐지. 저 여자 설마.. 나한테 반했나? 그럼 안되는데 난 가정이 있는 여잔데. 이.. 이걸 어쩌지. 


“제.. 제게 할 말이라도?”

“어머 죄송해요! 제가 너무 빤히 쳐다봤죠! 그런데 혹시.. 포비님 아니신가요?”

“어머나. 제 얼굴에 포비라고 쓰여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포비인건 어찌..?”

“맞군요! 저 포비님 블로그 애독자예요! 반가워요! 저희 동네 사시는 것 같긴 했는데 여기서 다 만나게 되네요!”

“오 제 블로그를 알고 계시다니! 이거 참 부끄러우면서도 반가웁네요! 여기 사시나 봐요. 브끌”

“네네 저 여기 왕비싸 놀이학교에 아이 보내고 싶어서 네이버 리뷰 찾아보다가 포비님 블로그를 알게 됐어요. 포스팅이 너무 재밌어서 고민하다가 제 아이도 얼마 전부터 왕비싸에 보내기 시작했어요!”

“오 제 아이랑 같은 놀이학교시네요! 더더욱 반가워요!”


이쁘니는 얼마 전에 이 동네로 이사 왔다고 했다. 아이 유치원을 찾아보다가 나를 알게 되었다며 포뇽이와 동갑인 딸을 양육 중이라고 했다. 반가움 가득한 그녀의 눈빛도 맑고 밝아보였고 탄력 있는 몸매와 사근사근한 말투까지 예쁜 여자라면 그냥 좋아하는 내겐 더 큰 호감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곧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난 뭔가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것 같아 설렘을 느꼈다.      


이쁘니와는 그 후로 종종 만남을 가졌다. 그녀는 밝은 모습과는 다르게 고민이 많은 여자였다. 증권회사에 다닌다는 남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연봉은 높지만 결혼생활 내내 이쁘니를 무시하는 폭언으로 인해 그녀는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했다. 아이는 친정엄마와 함께 양육하고 있었는데 엄마와의 관계도 좋지 않아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고 아이도 천성이 예민한 성향을 타고나서 이쁘니를 힘들게 하는 날이 많았다. 난 예쁘기도 한데 마음씨도 착한 그녀에게 애정이 갔고 쉽게 말 꺼내기 어려울 수 있는 자기 개인사정들을 내게 믿고 털어놔주는 것 또한 고맙게 느껴졌다. 나 역시 개인적인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고 우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녀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책 보는 것도 좋아한다 했고 엄마들과의 단체 모임보단 소규모 만남을 지향했고 저녁엔 나처럼 꼭 맥주를 들이켜고 잔다고 했다. 역시 이쁜 애들은 맥주를 좋아한다며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쁘니 모녀를 집으로 종종 초대해서 맥주 한잔을 하며 시간을 갖곤 했다. 이쁘니는 공감력이 좋았다. 내 말들에 호응을 잘해줬고 남편의 영향 때문인지 타인의 감정이나 기분에 자신을 맞추는 편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녀와 맥주 한잔을 할 때면 술을 좀 많이 들이켜게 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많이 웃고 많이 공감해주곤 했지만 술은 많이 마시진 않았었다. 그저 내게 많이 따라주는 편이었고 건배를 많이 외치는 스타일이었다. 난 자고로 건배를 한 후엔 목 열고 마셔서 그 잔을 비워줘야 하는 게 참된 주도라고 생각해 와서 그런지 건배 후엔 언제나 목을 열어줬고 이쁘니는 그런 나를 이쁘게 웃으며 쳐다보곤 했다. 


“전 포비언니를 알게 돼서 너~~무 좋아요! 이렇게 누군가와 마음 터놓고 얘기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는데 언니 덕분에 제가 요즘엔 고민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눈웃음 눈웃음”

이쁜게 말도 이쁘게 하네. 난 원래 이쁜 여자한테는 방어막이 풀리는 아주 가벼운 스타일이라 그녀의 칭찬에 더 입이 벌어진 채 헤죽거리며 그녀와의 술자리를 즐기곤 했다.      


이쁘니와 이쁜 술자리를 가진 후 며칠이 지나 아이 하원 때 그녀를 우연히 마주쳤다.

“어머 포비언니! 포뇽이 데리러 오셨구나! 저번엔 언니집에서 너무 잘 놀고 잘 먹고 왔어요. 눈웃음 눈웃음”

“응응. 다음에 우리 또 한잔하장. 헤벌쭉”


그렇게 포뇽이를 찾아 눈을 돌리던 찰나 뭔가가 눈에 거슬렸다. 아니 거슬린 게 아니라 눈에 익은 무언가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쁘니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 었다. 이쁘니가 하고 있던 목걸이는 내가 남편을 만나기 전 전남친에게 받았던 태파니 목걸이와 모양이 똑같았다. 태파니 목걸이 디자인은 워낙 흔해서 똑같거나 비슷한 게 많긴 하지만 그 목걸이는 태파니에서도 별로 대중적이지 않은 하트 2개가 서로 누운 채 연결돼있는 사슬모양의 목걸이로 지금껏 한 번도 똑같은 목걸이를 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왠지 그 목걸이는 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이쁘니 목걸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는지 이쁘니가 밝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언니! 왜 그러세용? 뭐 하실 말씀이라도? 눈웃음 눈웃음”

“응?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아니다. 다음에 또 보자.”

“네네 언니 곧 연락드릴께용!! 눈웃음 눈웃음”     


집으로 오는 내내 뭔가 찜찜하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이 요상한 기분은 뭔지. 집에 가서 우선 확인해보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액세서리가 들어있는 서랍을 열었고 거기에 태파니 목걸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목걸이는커녕 태파니 목걸이가 들어있던 케이스까지 통째로 사라져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목걸이는 남편이 준 것도 아니기도 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액세서리도 안 하게 되면서 관심에서 잊힌 목걸이 었다. 버리기도 애매하고 막상 하기도 그래서 이사 때마다 가지고 다니기만 했던 것이라 특별한 애착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 심장이 두근거린 건 이쁘니가 하고 있는 목걸이가 분명 내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자신의 물건은 알아보는 게 본능이다. 그렇다면 이쁘니가 목걸이를 후.. 훔쳐갔다는 것인데.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저 멀쩡하게 생긴, 게다가 이쁘게 생긴 여자가 도둑뇬이었다니. 이쁜 도둑은 전지현말곤 없는 줄 알았는데 이쁘니가 전지현처럼 줄 타고 들어와서 가져갔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며칠 전 집에서 술을 마실 때 가져갔다는 것인데 도대체 왜?? 어째서?? 와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설마 이쁘니가 도둑뇬일 리가 없잖아. 내가 목걸이를 어디 다른데 두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오랫동안 하지도 않았고 이 서랍에 원래 없었을지도 몰라. 이사하다가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난 멘붕에 빠졌다. 설마 아주 혹시나 이쁘니가 가져갔다고 해도 가져간 다음날 내 앞에서 당당히 목걸이를 하고 나온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쁘니는 이사 온 지도 얼마 안 된 여자였기에 주변에 이쁘니에 대해서 물어볼만한 사람도 없었고 놀이학교에서도 나말고는 특별히 친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아무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이쁘니에게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 목걸이 내꺼 맞지!! 이기지배야 당장 푸르지 못해!!!라고 갑자기 어떻게 물어본단 말인가.     


그녀는 돈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 매일 요가를 한다는 그녀는 대부분의 옷차림이 운동복이었기 때문에 옷차림새로는 판단이 잘되진 않았지만 시내 중심에 있는 브랜드 아파트로 이사를 왔었고 아이도 왕비싸 놀이학교에 보내고 있었고 남편 또한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고 했다. 당연히 경제적으로 부족함이 없을 그녀가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건 앞뒤가 전혀 맞지가 않았다. 뭐라고 물어볼 말은 정하지 못했지만 혹시나 그녀가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오해를 했을 수도 있으니 아무 선입견을 갖지 않고 그녀와 자리를 갖고 싶었다.     


“이쁘나! 오늘 저녁에 시간 되면 우리 집에서 맥주 한잔 할까?”

“네 언니! 저야 좋죠! 이따 저녁에 들리도록 할게요!”     

술을 좀 먹여보고 싶었다. 그럼 서로 솔직한 얘기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뭔가 사정이 있다면 들어볼 생각이었다. 오후 늦게 그녀가 도착했고 난 정신을 바짝 차린 채 맥주를 적당히 들이키며 그녀에게 술을 권하고 또 권했다. 이쁘니는 점차 혀가 꼬여갔고 난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쁘나. 저기 있잖아..”

“네 언니! 눈웃음 눈웃음”

“저번에 너 왔을 때 말이야. 그 모..목..”

“언니! 저 너무 더워서 그런데 세수 좀 해도 될까요?”

“세수? 아 그래. 언능 하고와~”

그녀는 갑자기 세수를 하고 싶다 했고 깔끔히 씻고 나온 그녀는 예쁜 피부를 빛내며 내 화장대 앞에 다가갔다. 

“어머나 언니! 언니 좋은 화장품 너무너무 많네요~ 저 스킨로션 좀 발라도 되용?”

“그래 언능 뭐든 바르고 일루 다시 와보렴”

그녀는 흥얼거리며 화장품을 바르더니 그중 내가 가장 아끼는 챠넬 크림을 손에 들더니 뚫어져라 쳐다봤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대차게 화장품 뚜껑을 연 그녀는 나는 콩알만치 바르던 그 크림을 두 손가락을 푹푹 넣어서 마치 마사지 크림 바르듯이 얼굴에 쳐발쳐발하기 시작했다. 

“음~ 언니 이 크림 향이 너무 좋네용~ 으음~”

그.. 그건 안되느..는....데에에.......

“언니, 저 너무 취해서 남편한테 데리러 오라고했어용. 그때까지 크림 좀 더 바르고 있을께용”

뭘 더 발라.... 다 처발랐구먼......


얼굴에 챠넬크림 한통을 쏟아부은 그녀는 곧 남편이 데리러 왔고 듣던 말과는 다르게 남편은 무척이나 정중했고 사람이 좋아 보였다. 이쁘니를 부축하는 손길도 다정했고 내게도 사과의 말을 하며 이쁘니를 조심스레 끌고 갔다. 그녀가 끌려 나간 우리 집엔 빈 맥주병들과 빈 챠넬크림통이 굴러다녔고 난 허망하게 챠넬크림 뚜껑에 조금 남은 크림을 얼굴에 문질문질하며 저 이쁘니가 보통여자가 아님을 실감했다. 난 이날 정신을 더 바짝 차렸어야 했다. 그리고 내 옷장에도 자물쇠를 걸어놨어야 했다는 걸 다음날이 돼서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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