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목걸이는 그 이후로 종종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쭈욱 이쁘니 목에 걸려있었던 것처럼 나를 만날 때도 이쁘니는 아주 자연스럽게 목걸이를 하고 나오곤 했다. 볼 때마다 시선이 갔고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설마 진짜 훔친 물건이라면 당사자 앞에서 저렇게 당당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심증만 가득하고 물증은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 같은 동네 같은 놀이학교에 보내면서 괜히 내가 이쁘니를 의심하는 말을 꺼냈다간 그 말이 오히려 독이 돼서 내게 돌아올까 겁이 나기도 했다. 목걸이 사건 이후론 난 그녀를 전처럼 편하게 대하진 못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내게 친절했고 이뻤고 다정했다. 난 이쁜 여자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여자이지 괜히 질투하고 시샘하는 여자가 아니건만 착하고 맑아만 보이는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 내가 오히려 어딘가 비꼬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얼마 후 동네 엄마들과 이쁘니도 함께 모임을 갖게 되었다. 엄마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옷차림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곤 했다. 꾸안꾸 스타일로 나갈지 이 언니 신경 썼네?라는 느낌이 물씬 들게끔 나갈지 요리조리 옷을 헤집다가 결국 위아래가 따로 노는 것 같은 스타일이 된 채 어깨에만 힘을 팍 준채 모임에 나갔다. 곱게 화장한 엄마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이쁘니도 저 멀리서 힘차게 들어오고 있었다. 실루엣만 봐도 이쁜 이쁜이는 그날도 위아래로 몸에 잘 맞는 레깅스 스타일의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어머 다들 일찍 모여계셨네요! 포비언니 저 왔어요! 저 운동하고 오느라 조금 늦었어요 눈웃음 눈웃음”
엄마들은 이쁘니의 탄탄한 몸매를 칭찬했고 이쁘니는 부끄럽다는 듯 미소를 띤 채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저 여자 몸에 찰싹 들러붙은 채 빛을 내고 있는 저 운동복은.. 내 건데?? 나도 운동하는 여자가 되보겠다며 결심하고 사놨다가 몸에 낑겨 잘 입지도 못했던 내 운동복 세트가 그 여자 몸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쁘니는 목에는 내 목걸이를 한 채 몸에는 내 운동복을 두른 채 아무렇지 않게 나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이런 씨알. 저런 또라이같은 여자를 봤나. 나는 순간 넋이 나간채 그 또라이를 쳐다봤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엄마들과 내게 인사를 한 후 커피를 홀짝였다. 사람이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힐 때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옷장문을 열어젖힌 채 내 조막만 한 운동복을 찾아댔고 역시나 그 운동복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 증거가 없었다. 운동복에 내 이름이 박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 앞에서 입은 적도 없었던 옷이라 그 옷이 내 옷이었다고 저 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알아줄 사람이 없었다.
맥주를 목 열고 들이키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면서 그 또라이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 여자는 이상하리만큼 내게 친절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는 이미 내 블로그를 통해 나에 대해 다 알고 있었고 내 취향에 모든 걸 맞췄다. 나처럼 책을 좋아한다곤 했으나 그녀는 똑같은 단 한 권의 책만 매일 들고 다녔고 맥주 역시 나와 마실 때 말고는 술을 입에 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집에 놀러 올 때면 내가 바르는 걸 발랐고 내가 입던 옷을 걸쳤고 내가 먹는 걸 같이 먹었다. 그리고 술에 취할 때면 언제나 나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전 언니가 조옹말~ 좋아용~”라며 내게 기대곤 했다. 얼마 전엔 퇴근한 남편에게 술에 취한 채 “우리언니 좀 좌알 부탁해용~ 제가 진짜 좋아하는 언니예용~”라는 소리를 해대 남편이 저 여자가 왜 널 부탁하냐며 좀 이상한 여자 아니냐고도 했었다. 스산한 느낌이 올라왔다. 그 여자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과거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번뜩이며 골수녀가 떠올랐다. SNS 대마왕인 그녀는 발이 무척이나 넓었다. 분명 저 이쁜 또라이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골수녀에게 연락했다.
“골수녀야, 여전히 (골수 빨며) 잘 지내지?”
“네 언니! 저야 여전히 (골수 빨며) 잘 지내죠!”
“그래그래 난 어제도 이쁘니가 놀러 와서 같이 한잔하고 갔어”
“이쁘니 언니요? 그 언니 나한텐 연락도 잘 안 하면서 언니 하고는 엄청 친하네요!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그 언니 남편이랑 이혼소송 중이라던데 언니도 알죠?”
골수녀는 역시 미끼하나만 던져주면 술술 불어대는 아주 유용한 여자였다.
“남편이랑 사이는 안 좋다곤 나도 듣긴 했어. 그런데 이쁘니는 전에 어디 살다 온 건지 혹시 알아? 예전 얘기를 영 안 해서 궁금하기는 한데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예전 얘기를 안 해요? 어머 왜 그럴까? 제가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좀 있는데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호호호. 내일 연락드릴게요!”
골수녀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다음날 역시 곧바로 연락이 왔다. 골수녀는 침을 튀기며 그녀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려줬다.
“포비언니! 그 언니 좀 독특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에요! 이쁘니 언니가 친하게 지냈던 어떤 엄마가 있었다는데 그 엄마를 그렇게 따라다녔대요. 그 엄마랑 똑같은 옷을 입고 나오기도 하고 친해지면서 점점 더 그 엄마한테 집착 같은 걸 했나 봐요. 더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는데 그래서 문제가 좀 생겨서 갑자기 이쪽으로 이사온 거라고 하던데요? 혹시 그 이쁘니 언니 포비언니한테도 집착하는 건 아니에요? 어머나~! 어떡해요? 언니 딱 걸린 것 같은데요! 호호호호”
이 기지배는 말을 해도 꼭 저렇게 골수 튕겨나가게 열받게 하고 있어. 뭐야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해 보면 그 이쁜 또라이는 한 명을 콕 집어서 죽도록 사랑한다는 거네? 아니 그럼 내 목걸이나 옷은 뭐야 사랑의 증표로 가져간 거야? 나 기분 많이 스산해지는데 골수녀 말대로 이쁜 또라이한테 간택당한 거야?
머리가 사정없이 복잡해졌다. 난 좀 단순한 이유일 거라 생각했었다. 여자들은 생리 전 호르몬 변화 때문에 도벽이 생긴다고도 들은 적이 있었기에 심해봤자 생리 전 도벽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차라리 그 이유라면 더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웬일. 이쁘니의 이상한 행동은 도무지 뭐라고 설명이 되지 않았다. 골수녀의 전화를 받고 나자 이쁘니에게 왜 그랬냐며 묻고 싶은 생각이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 내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굳이 이해해 보기 위해서 이유를 물으면서까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진 않았다. 멀리하는 것만이 답이었다. 나 불의를 당하고도 모른 척 넘어가는 그런 여자 아닌데 이 또라이 여자를 상대했다가는 나도 같이 흙탕물범벅이 될 것 같았다. 무조건 멀리하자라는 다짐을 하는 순간 카톡이 울렸다.
‘카톡! 포비언니! 어제 저희 너무 짧게 만난 게 너무 아쉬운데 오늘 저녁에 놀러 가도 될까용? 눈웃음 눈웃음’
이쁜 또라이였다. 그녀가 또 내게 한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