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obi미경 Oct 04. 2024

이쁘니가 건네는 독이 든 성배


난 이쁘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가 서지 않았다. 냉정하게 보면 이쁘니가 내 물건을 훔쳐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전에 어떻게 살았든 새로운 곳으로 이사까지 한 상황에서 그녀가 또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녀는 그냥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내게 언제나 긍정적인 좋은 동생일 뿐이었다. 내가 너무 오버해서 생각하는 건 아닐지 이쁘니의 순수한 마음을 내가 혼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게 아닐까 고민스러웠다. 우선 조금 객관적으로 너무 좋게 보지도, 그렇다고 무조건 나쁘게 보지도 않고 그녀를 대해 보기로 했다.    

  

“포비언니! 저희 오늘 차 한잔 해요!”

그녀는 여전히 밝게 아이 등원 후 연락을 해왔고 난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를 만났다. 먼저 와서 이쁘니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이쁘니가 쇼핑백을 하나 들고 나타났다. 

“언니! 먼저 와계셨네요. 눈웃음 눈웃음”

“응. 아이는 잘 등원했지?”

“네 언니. 그리고 저 이거...”

“이게 뭐양?”

“아 제가 요리를 잘 하진 못하는데 저번에 언니가 포뇽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갈비찜이라고 하신 게 생각나서 주말에 시간이 난 김에 갈비찜을 좀 만들어봤어요. 하는 김에 언니 술안주 하시라고 오징어채도 같이 했어요. 눈웃음 눈웃음”

“어머, 이걸 다 직접 만든 거야? 웬일이야. 이쁘니 가족끼리 맛있게 먹지 나한테까지 이 귀한 음식을 나눠주고 그래~ 너무 고마워~!”

“헤헤헤. 잘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남편이 제 갈비찜은 맛있다고 종종 말해주곤 해서 언니도 한번 맛보셨으면 싶었어요. 입맛에 맞지 않아도 맛있게 드셔주세요!”


이쁘니가 해온 갈비찜은 정성이 가득했다. 색깔을 잘 맞춘 채소에 먹음직스럽게 양념된 갈비찜은 촤르르르 윤기가 돌았고 함께 해온 오징어채도 고추장 빛깔을 빛내며 깨소금이 솔솔 뿌려진 채 날 보고 방긋 웃고 있었다. 엄마가 아닌 누군가에게 이런 정성 가득한 음식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난 이쁘니가 멋쩍게 웃으며 내미는 음식선물에 큰 감동을 했다. 이쁘니에 대한 의심의 마음은 입에서 녹아내리는 갈비찜과 함께 사르르 녹아내렸고 오징어채의 매콤 달콤한 맛에 홀린 채 그날 저녁 편안해진 마음으로 맥주를 마구 들이켤 수 있었다.     


이쁘니는 그 이후로도 여전히 해맑고 친절했다. 남편과의 안 좋은 사이 때문에 여전히 고민이 많았고 가끔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쁜 여자들은 울 때도 눈물 한 방울만 또르르 흐른다는 걸 그때 알았고 난 그녀의 아픈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같이 마음이 아파지곤 했다. 경계심은 점차 풀려갔고 난 다시금 그녀와 절친이 되어있었다.      


얼마 후 우리의 골수녀에게 연락이 왔다.

“포비언니! 요즘도 그 이쁜애랑 자주 만나요?”

“아 저번에 내가 괜히 이상한 거 물어봤었지? 그거 신경 쓰지 마~ 내가 괜히 오해한 게 있어서 너한테까지 괜한 말을 했던 것 같아”

“에휴 언니 그래도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좀 멀리하는 게 낫지 않아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내가 그때는 좀 맘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랬던 거니까 너도 괜히 이쁜이 오해하고 그러지 마. 괜한 말도 하지 말고~”

“언니가 괜찮다면 뭐 상관없긴 한데 전 좀 찜찜하던데. 아무튼 알았어요. 저도 좀 더 알아보던가 할게요!”

“아냐 아냐 뭘 알아봐~ 괜히 이것저것 묻고 그러지 마. 이쁘니 멀쩡해 멀쩡해. 걱정하지 마!”     

걱정을 해주는 사람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들을 틈이 없었다. 이쁘니가 또다시 내게 속삭이며 다가왔다.


“언니! 저 이거.. 언니 쓰세요 눈웃음눈웃음”

“이건 카드지갑이잖아? 그것도 푸라다꺼를 왜 내가?”

“아 이거 남편이 저번에 출장 갔다가 사 온 건데 글쎄 저한테 있는 걸 또 사 온 거 있죠. 에휴 그러면 그렇죠. 저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뭘 사준지도 모르나 봐요. 저는 있는 거라 필요도 없고 바꾸기도 애매하고 그러니까 언니 쓰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 그래도 이건 너무 비싼 건데..”

“에이 어때요. 제 남편 돈 잘 벌잖아요. 자기가 사주고 뭘 사준지도 모르는 사람이라 상관없어요! 전 언니가 쓰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눈웃음눈웃음”


그래도 너무 비싼 건데. 너무 좋은 건데. 그래서 자꾸 갖고 싶어 지네? 내 카드지갑 오백 년 돼서 실밥 다 터져 나와있는데. 그래서 지금 이게 나한테 딱 필요하네? 나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으네? 난 갖고 싶은 마음을 마구 억누른 채 입술을 떨며 계속 거절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이쁘니의 간곡한 부탁 아닌 부탁에 어쩔 수 없이(정말이다) 아주 어쩔 수 없이 카드지갑을 받게 되었다. 어찌나 신이나던지! 명품에 눈먼 여자 아닌데 명품이 공짜로 생기니까 눈이 흰자만 남고 막 돌아가선 뜻하지 않은 행운에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난 이날 이후로 이쁘니에 대한 의심은 눈곱만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천사다. 내게 갑자기 나타나 푸라다 지갑을 하늘에서 뿌려주는 그녀는 날개 잃은 천사. ‘천사를 찾아 샤바 샵샤바 천사를 찾아 샤바 샵샤바~’ 엉덩이를 치며 즐거워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정신을 차리라고 했지만 내 정신은 이미 안드로메다 푸라다섬에 도착해 있었다. 푸라다섬에서 헤엄치고 있는 내겐 섬 너머의 다른 사람들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그냥 이 섬이 좋았고 천사와 함께 쭈욱 헤엄치고 싶을 뿐이었다.      


우리 천사는 아픔이 있는 천사였다. 그녀는 그 이쁜 얼굴을 하고도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자주 우울해했고 슬퍼했다. 나는 착하고 요리도 잘하고 마음 씀씀이도 바다 같은 그녀의 아픔이 잘 해결되길 바랐고 도움이 되고 싶었다. 사라졌던 목걸이와 운동복 따위는 이미 기억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고 그저 그녀가 슬프지 않기를 바랐다.

그랬던 나에게 어느 날 그녀가 작은 부탁을 해왔다. 아주 작은 부탁이었다. 그때 난 눈만 돌아간 게 아니라 귀도 멀어져 있었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마음껏 주무르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