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의 여행은 좀 즉흥적인 편이다. 마음에 한줄기 바람이 훅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예약한다. 심지어 가족들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저러고 돌아오면 한동안은 상태가 괜찮을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나섰다. 작게 꾸린 가방 하나만 둘러매고 혼자서 길을 나서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장장 5시간의 여정이지만 약간의 긴장과 커다란 설렘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동대구에서 하양역으로 가는 기차를 한 번 갈아타고도 또 은해사로 들어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그런데 기사님의 운전이 꽤 과격하시다. 내 앞에 앉은 할머니가 복도로 튕겨져 나가실까봐 조마조마했다. 혹시나 그런 상황이 된다면 할머니가 메고 계시는 배낭의 손잡이라도 잡아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보니 배낭이 가득, 손에도 뭘 잔뜩 들고 계신다. 버스좌석에라도 내려 놓으시면 좋을텐데, 행여 굴러갈까 싶은지 몸에서 떼 놓지 않으신다.
무엇이 저리도 많이 들어 있을까? 필시 가족을 위한 '거리'가 들어 있겠지. 오늘 더운 불 앞에서도 바글바글 끓일 국거리,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다시 기운을 차릴 먹을거리들.
어째서 삶과 관련된 것들은 저리도 묵직한 걸까. 검은 비닐봉지가 짓누르고 있는 할머니의 거친 손목이 애처롭다. 내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이 새삼 호화롭게 느껴진다.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온 하루를 귀하게 써야겠다.
버스에서 내려 얼마 걷지 않는데도 평소 운동하지 않는 몸이 무겁다. 가까운 거리도 차타고 다니는 몸뚱이가 가벼울리가. 헐떡이는 숨으로 드디어 은해사 도착이다. 몸도 마음도 게으름뱅이인지라 휴식형을 신청했더니 모든 활동에 강제성이 없다. 공양시간만 맞추어 잘 먹으면 된다니, 이렇게 황송할 수가. 평일이라서 6인실 큰 방을 혼자서 쓰게 됐다. 가능하다면 혼자서 사용하고 싶다고 직원분께 부탁을 드려놓은 터였다. 이번에는 절을 체험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보려고 떠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코로나를 거치며 약을 먹기 시작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불안'이라고 했다. 겁이 많은 나는 팬데믹이 무서웠다. 영화에서만 보던 전염, 격리, 확진자 등의 단어가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유치원에 못 가게 된 2호기는 왠지 한 달에 한 번 날짜를 맞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아니었는데도 달거리 하듯 날짜까지 꼭 맞추어 열이 났다. 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이 엄마로서 아이들을 챙기고 매달 열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 시간이 2년 가까이 되자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천식인가 싶어서 여러 병원을 다니며 검사를 받았지만 호흡기 진료를 받기 쉽지 않은 상황에 그저 일반적인 기침, 천식약을 처방 받아 오래 먹었다. 그래도 증상은 심해져서 아무리 숨을 들이쉬어도 시원하지 않아 가슴을 움켜쥐었다. 친구의 권유로 간 병원에서 불안으로 처방을 받아 약을 먹고는 증상이 점점 나아졌고, 마침 코로나의 기세도 수그러들었다.
나는 그제서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예민하고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끔은 내 안에서 전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대충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 참고 사는 거야.' 였다면, 이제는 내 안에서 '뭔가 불편해!'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어주기로 했다. 이번 템플스테이는 그렇게 내 안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므로 일인실을 쓰길 원했다는 이유를 이렇게나 길게 주절거려본다.
땀을 식히려 바닥에 벌렁 누웠다.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려 숨쉬기조차 조심스럽다. 내가 원하던 완벽한 적막이다. 땡땡이 친 예불시간에는 멀리서 목탁소리만 은은하다. 방에는 그저 내 키보드 소리만 타닥타닥. 지금 집에서는 평소에 엄마를 찾는 만큼 대신 아빠를 찾는 아이들 소리가 가득일 것이다. 무거워지려는 마음을 시원한 방바닥에 누워 기지개를 켜면서 날려버린다.
저녁을 먹으러 공양간에 갔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얼마 전부터 먹고 싶어 생각이 나던 반가운 콩잎이 반찬으로 나와 있다. 경상도 음식이라서 내가 사는 곳에서는 구하기도 힘들고 계절도 맞지 않는데, 어디서 보석처럼 묵혀져 있다가 내 눈앞에 나타난 걸까 감탄하며 욕심껏 내 그릇에 옮겨 담았다. 자리를 잡고 신나게 한 입 넣었는데 예상보다 좀 짜다. 밥의 양이 줄어들수록 이걸 다 먹을 수 있으려나 걱정스럽다. 생각 같아서는 작은 봉지에 싸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남길 수도 없으니 이것 참 큰일이다.
남은 밥을 알갱이 단위로 나누어 그 많은 콩잎을 꾸역꾸역 먹고 있으려니 온몸이 콩잎의 짠 기운으로 꽉 찬 느낌이다. 과유불급이라 했는데. 들뜬 마음으로 섣불리 행동하다가 후회했던 최근의 몇 가지 일들이 필름처럼 지나쳐간다. 종교와는 관련 없이 그저 하루 쉬기 위해 온 무지한 중생에게도 가르침을 주시는 걸까? 어려운 것은 어차피 못 알아들을 것 같으니 가여운 중생아, 콩잎에라도 깨달아 보거라 하시는 것 같다.
방에서도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묵언해야 하니 만 하루 동안 입에서 나온 말이 얼마 안 된다. 대신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고 나 자신과 대화하듯 그 상념들을 다듬었다. 내 주변의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이렇게 나를 보듬고 내 안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내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 또한 균형일 터. 조금씩 내가 편안해지는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깊게 숨을 내쉬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