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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Dec 11. 2021

읍내에서 번개를 했습니다

그럴 수 있지

날짜가 2와 7로 끝나는 날은 읍내에서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장날에는 딱히 살 게 없어도 읍내로 향하게 된다. 시장에 가면 이상하게 기운이 난다. 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운참과 훈훈함이 있다.


가판마다 이름 모를 나물들이 가득하다. ‘사장님, 이 나물은 뭐예요?’ 하고 물으면, ‘참비름나물이여. 간장하고 참기름 넣고 무치면 맛있지! 된장 한 숟갈 넣고 무쳐도 맛있고!’ 하고 조리법까지 세트로 되돌아온다. 어릴 때 동네에 일주일에 한 번씩 오던 과자 트럭에서 팔던 생과자랑 캔디 가판도 꼭 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내 일상에서 뜸해진 물건들도 당당히 한 자릴 차지하고 있다. 카세트, 좀약, 절구 같은 물건들 말이다.


빽빽이 들어선 가판 사이사이를 누비는 것이 바로 장날의 묘미다. 나는 텃밭에 미처 심지 못한 채소도 사고, 해 먹기 어려운 반찬도 여러 개 산다. 화원 앞에서는 마당에 심고 싶은 나무 묘목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느라 한참을 보내기도 한다.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다. 방금 막 기름에서 건져낸 튀김이랑 설탕에 또르르 굴린 도넛, 막 튀긴 어묵은 한 봉지씩 무조건 사야 한다.


양 손 무겁게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문득 할머니 생각이 스친다. 혹시 할머니도 읍에 나와 계시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대문을 나설 때 할머니 댁 대문도 닫혀있었던 것 같다. 혹시나 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으이!" 오늘도 할머니는 '여보세요'나 '응'이란 말 대신 으이! 하고 기합을 넣듯 전화를 받으신다.

"할머니, 앞집이에요. 저 장에 왔는데요. 혹시 읍에 계세요?"

"여 읍에 나왔지. 3시 버스 기다리는 중이여."

"아직 3시 되려면 한참 있어야 하잖아요. 저랑 만나서 같이 들어가요!"


버스정류장으로 할머니를 모시러 가기로 했다. 정류장이 보이자 슬슬 속도를 줄이며 다가섰다. 3시 버스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동그란 파마머리와 분홍빛 옷, 의자에 앉은 모습까지- 할머니들은 신기할 정도로 스타일이 비슷했다. 그래도 금세 익숙한 할머니 얼굴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할머니이!"

“아이고, 시상 반가워라!” 할머니는 손뼉을 치며 일어서신다. 그리고는 담소를 나누던 친구분께 내 소갤 하신다.  

"우리 앞집 사는 아가씨여. 같이 들어가자고 여까지 왔네. 아이고~ 수고스렵게~ "


여유로이 시골길을 차로 달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이렇게 읍내에서 만나니 얼마나 더 반가운지, 오늘 무얼 샀는지- 아직 거기까지 밖에 이야길 못했는데 어느새 집 앞이다. 80대의 할머니와 30대의 나 사이에는 비슷함을 찾기가 어렵다. 살아온 환경은 물론 관심사도 다르다. 그런데도 우리의 대화는 매번 빈틈없이, 단단하게 이어진다.


'니가 잘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지인들은 말했다. 그런가, 해보지만 사실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싹싹하고 사교성 넘치는 타입은 아니다. 먼저 살갑게 다가서지도 못한다. 오히려 쭈뼛거리는 편에 가깝다. 무엇보다 일방적으로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관계에는 금방 지치는, 참을성 없는 성격이다.


공통점 하나 없는 할머니와의 대화가 즐거운 이유는, 서로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9남매를 키워내며 평생 이 마을에서 살아온 팔순의 할머니와 어느 날 도망치듯 시골로 숨어든 삼십 대의 나. 우리가 다른 것은 당연했다. 빤히 같은 걸 보고 들으며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에는 항상 물음표가 많다. 서로의 다름을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며 던지는 물음표이다.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든 맞고 틀린 게 없다. 그땐 그랬고, 지금은 이렇고, 할머니는 그랬고, 나는 이렇다. 그뿐이다. 


그런데도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이런 생각을 잘 못한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말을 여전히 달고 산다. 어떤 날은 나와 다른 어떤 이 때문에 속에 불기둥이 치솟기도 한다. 그럴 땐 멈추고 시골집을 떠올린다. 할머니와의 대화를 더듬어본다. 자연스럽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이어지곤 한다. 모든 일이, 관계가 편해지는 마법 같은 문장이다. 나라는 사람이 나 하나 듯 나 같이 생각하는 것도 오직 나 뿐이다. 어쩌면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상대가 앞집 할머니든 옆 자리에 앉은 동료든 말이다.


차에서 내린 할머니는 대문 앞에 서서 계속 손을 흔드신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선 서로 얼른 들어가라는 손짓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내일 또 만날 건데 먼 길을 떠나보내듯 인사를 하는 할머니. 그 인생에 얼마나 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을까. 나는 가늠도 못하겠지, 하며 결국 내가 먼저 돌아서 대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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