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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Nov 28. 2021

땅도 쉬어가는데

가을갈이


마을 길과 담장 사이, 한 뼘이나 될까 싶은 좁은 땅에 대파가 조로록 심겨 있다. 그 옆으로는 콩도 총총 심겼다. 작은 틈에 간신히 뿌리를 내리고서 꼬투리는 주렁주렁 많이도 맺었다. 마을 구석구석 땅이 일구어진 모양을 보면, 어르신들의 땅 활용이 얼마나 살뜰한지 알 수 있다. 손바닥만 한 땅도 절대 놀리는 법이 없다. 


시간도 절대 놀리지 않는다. 봄, 여름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그 자리에 가을에 수확할 작물을 심는다. 가을 작물을 수확하고 나면 또다시 양파와 마늘 같은 월동 작물을 심는다. 그런데 수확을 마친 마을의 밭들이 한참이나 텅 비어있다. 재빨리 다음 작물을 심어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주말에도 텅 빈 그대로다.


“땅도 쉬아야지.”

여름 내 끊임없이 줄기를 내고 열매 맺느라 고생한 땅을 쉬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땅이 아무것도 키워내지 않고 쉬는 동안, 가능하면 흙을 깊이 갈아엎는다. 돌들은 골라내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흙은 포슬포슬 고른다. 그러면서 제 때에 제초하지 못한 잡초도 뽑아낸다. 제초를 하지 않은 채 새 작물을 심으면, 잡초에게 영양분을 모두 빼앗겨 실하게 자라지 못한다. 거름과 비료도 더해준다. 흙의 위아래를 뒤집어 땅의 깊은 곳까지 공기가 통해 숨 쉬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야 다음 작물을 심을 이랑을 두두룩이 만든다. 그래야 다음 작물을 키울 땅의 힘이 생긴다고 한다. 이걸 가을갈이라고 한다. 


아차 싶었다.

“저는 수확한 자리에 비료만 주고 바로 배추랑 무를 심었어요.”

“괜찮여. 한두 해는 괜찮여. 아직까지는 땅심이 있으니깐은. 근디 글키 심고 또 심고 하면은, 난중에는 못 영글지.”  


집에 돌아와 텃밭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농사도 꼭 나 같이 짓고 있었다. 잠시 쉬는 것, 자세히 살피는 것,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는 것.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데, 매번 놓치고 말았던 것처럼. 

어쩌면 어느 날 도망치듯 이 시골마을을 찾아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비료만 훌훌 뿌리곤 새로운 작물을 심듯 매 계절을 보내다 보니- 땅심을 완전히 잃었다. 지쳐 나가떨어질 때쯤 떠나곤 했던 며칠짜리 휴가는 그때뿐이고 결국 무엇을 심어도 건강히 영글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번 주는 수확을 마친 땅에 가을갈이를 하듯 주말을 보냈다. 마냥 비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다음을 위한 준비인 것처럼,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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