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과대추나무
작년 봄. 한 달 가까운 공사를 마치고 쓰러져 가던 시골집이 정다운 나의 집이 되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난 후에도 안팎으로 손 볼 곳이 자꾸 생겼다. 고치고 또 고치며 몇 번의 주말을 보내고 나니, 금세 초여름이 되어있었다. 나는 계절을 놓칠세라 마당 가꾸기에 돌입했다.
마당이 생기면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은 나무 심기였다. 내가 심은 나무가 수십 년 동안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단단히 자라나는 걸 상상하면- 마음이 웅장해졌다. 나는 죽어도 내가 심은 나무는 그 자리에 있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대자연에 남기고 갈 나무 한 그루를 만나기 위해) 근처 묘목농원에 갔다. 묘목농원은 처음이어서 신기했는데, 신기하면서도 꽤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쇼핑몰이랑 비슷했다. 쇼윈도와 행거에 진열된 옷가지처럼, 여러 동의 비닐하우스와 노지에 온갖 묘목들이 들이차 있었다. 새로운 종류의 쇼핑천국이었다.
익숙한 나무 종류도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을 들어도 외지 못할 나무도 있었다. X나무와 Y나무를 접목해서 탄생했다는 최신상 Z나무도 있었는데 (X, Y, Z 나무이름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수많은 나무를 구경하고 결국 나는 대추나무를 골랐다
나무를 차에 싣고 집으로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나무가 너무 말랐다. 사장님은 사과대추나무라고 하셨는데, 내가 보기엔 나무 막대기였다. 배운 대로 뒷마당에 단단히 심었는데, 심고 다시 봐도 흙 위에 꽂힌 마른 막대기 같았다. 말라죽은 나무를 내가 잘못 사 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몇 주 동안이나 했다.
걱정과 달리, 막대기는 여름을 지내며 바로 잎과 가지를 내기 시작했다. 삐쩍 하던 막대기가 갑자기 가지를 뻗고 잎이 하나 둘 달리니 신기했다. 나는 자랑하고픈 마음을 참지 못하고 (수십 년 된 감나무와 호두나무가 마당에 흔하게 있는)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와, 나의 1년 차 대추나무를 당당히 소개하기도 했다.
“할머니, 대추는 몇 월에 열려요?”
“올해는 대추 안 열려. 내년이나 돼야 열리지.”
심은 첫 해에는 대추가 열리지 않고 그다음 해가 되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신기하고 아쉬웠다. 나무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올해. 이제 여름도 끝이구나, 하던 지난 주말에- 대추나무에 조롱조롱 맺힌 열매를 발견했다! ‘언제 열렸지! 왜 몰랐지!’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느 날 ‘톡’ 내어놓은 것 같은 열매들. 그렇지만 변화무쌍한 일기를 안으로 쌓는 여러 날들이 있었다. 이제 그걸 알아서. 나는 대추나무가 참 장하고 기특했다.
지난 주말, 마당에 앉아 대추나무를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잎과 열매가 바람 따라 흔들리며 반짝이는 게- 청량 그 자체였다. 햇빛은 아직 뜨겁지만 바람에 가을이 조금, 섞여있다고 생각했다. 이러다 금방 겨울도 오겠지.
겨울이 되면 나무는 지금의 청량함을 잃고 다시 앙상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가 이 나무를 다시 막대기라 생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나무의 성실한 사계절을 꾸준히 지켜본 목격자이므로. 그 맺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므로.
이렇게 올해의 여름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