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충청남도 금산. 서울에서 200km 거리의 나의 시골집에는, 엄청난 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충청권 시간당 100mm 물폭탄”
“금산, 호우주의보 → 호우경보 격상”
날씨앱은 성실하게 시골집의 상황을 업데이트해주었다. 반면 나는 강남 한복판의 사무실에서 날씨 뉴스를 새로고침 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CCTV 앱을 다시 열어봤지만, 여전히 먹통이다. 여태 잘만 되던 게, 하필 이럴 때.
옆집에 어르신들께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연결된 전화 속 목소리들이 분주했다. 마을 앞 하천이 범람해서 저지대가 잠겼다고 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삼거리는 통제 중이라 들고 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앞집 할머니는 높은 곳에 있는 다른 집으로 대피 준비를 하다 전화를 받으셨다. “아이고, 근데 이 장독들을 어떻게 해얄란가.”
잠깐 휴가를 내고 시골집에 가야 할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삼거리를 이제는 지날 수 있는지, 혹시 다른 도로가 물에 잠겼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괜히 비 오는 도로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간다고 쏟아붓는 비가 그칠 리도 없었다. 그래, 뭐 집까지 떠 내려가겠어?
그리고 금요일 밤. 드디어 시골집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마당 풍경 나를 맞아주었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구나 가슴을 쓸어내리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근데 거기서 진짜배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방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흙탕물 바다!
순간 웃음이 픽 터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 와중에 소망이는 얼른 자기부터 내려달라며 야옹거렸다. 한쪽 방에 소망이를 내려주고 상황 파악을 하는 잠깐 사이- 어느새 주방으로 달려온 소망이가 흙탕물 속을 깡총깡총 뛰어다닌다. 으악.
내가 상상한 시골살이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였는데 현실은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흙탕물을 퍼내야 한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비가 내려서 집 주변으로 모여든 빗물이 제대로 배수되지 못했다. 나중에 먹통이 되었던 CCTV를 살려서 돌려보고 안 사실이지만, 뒷마당 수돗가가 한참 동안 물속으로 잠겨 있었다. 원래는 그 물들이 수돗가의 배관을 통과해 마을 우수관으로 흘러 나가야 한다. 그런데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물들이 쏟아지다 보니 순식간에 물길이 막혀버렸고- 그 물들이 다시 배관을 타고 우리집 주방으로 역류한 것이다.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 날이 개었다. 할머니집에 건너가 보았다. 할머니집 마당에는 물에 젖은 온갖 살림살이가 줄지어 나와 있었다. “그 집은 어뗘!” 할머니가 우리집 안부를 묻는다. 나는 새벽까지 흙탕물을 퍼내느라 죽을 뻔했다며 앓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할머니는 이 마을로 시집온 지 60년이 넘었는데, 이런 비는 그간 몇 번 없었다고 하셨다. 기억하기로 최근 2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고. 나는 왜 하필 내가 살러 온 첫 해에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할머니는 물에 젖은 살림살이를 뒤집어 널며 말씀하셨다.
“이 비를 겪었으니 앞으로는 다 웬간할겨.”
할머니 말이 맞았다. 그 후로 나는 정말 웬간하게, 살고 있다. 마음의 잔근육이 생겼달까.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자꾸 겪다 보면, 그런 일들은 더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다. 그냥 쪼오-끔 더 단단한 마음으로 그 갑작스러움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수 있다. 결국 비는 그치기 마련이니까.
아, 그리고 할머니의 장독들은 빠짐없이 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