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열고 들어와서 쓰는 글
* 2020년, 주말귀촌 첫 해 일기 중에서.
토요일 밤, 침대에 누웠는데 전화가 왔다. 햇감자를 캤으니 몇 개 가져다 먹으라는 앞집 할머니의 전화였다. 내일 일찍 갈게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잊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도 한 잔 하고 여유로운 오전을 한참 보낸 후에야 번뜩 생각났다! 쏜살같이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설마’ 기다리실까 하면서도, ‘혹시’하는 마음이 들어서.
할머니 집 대문은 얼른 들어오란 듯이 활짝 열려있었다. 시골에서 대문을 열어둔다는 것은 '여기 사람 있소.’라는 의미이면서 ‘출입허가’라는 의미다. 마당은 넓은데 초인종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생긴 문화일까, 생각했다. 처음 시골살이를 시작했을 때, 나는 이게 영 불편했다. 그래서 대문이 열린 집에 들어갈 때도 매번 “계세요?”를 목청껏 외치며 들어가곤 했다.
내가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경우도 편치 않았지만, 누군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 경우는 더 불편했다. 나는 도어락과 현관 비밀번호가 익숙한 사람이다. 또 대문을 열어둔다고 ‘마음껏 들어오세요.’라는 의미는 아니었으니, 우리 집 마당이나 텃밭에서 예고 없이 찾아온 이웃을 만나는 게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처음 몇 번 겪고 나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자꾸 신경이 쓰여서 대문을 닫아두는 날이 많아졌다. 대문을 나서지 않아도 너른 마당이 있으니 답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는 외출하려고 나서는데 옆 집 어르신이 부리나케 달려오셨다. “아이, 대문 열리기만 기다렸네.” 하시며 반찬거리를 툭 안기신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엔 대문 앞에 옥수수가 몇 개 놓여있었고, 또 한 날은 담장 틈에 가지가 끼워져 있었다. 마을에 마트나 슈퍼가 없다 보니 전에 몇 번 이웃으로 채소를 얻으러 간 적이 있다. 그게 생각나서 오셨다가 대문이 잠겨 있어 그냥 두고 가신 모양이다. 가끔 저 필요할 때만 열리는 우리 집 문 앞에.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부랴부랴 할머니 집에 들어섰다. 아침보다는 점심에 더 가까운 시간이다. ‘혹시’는 ‘역시’였다. 할머니는 감자를 한 냄비 가득 찌고, 큰 접시에 토마토까지 잔뜩 잘라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같이 먹으려고 일찍부터 기다리셨다고 했다. 죄송한 마음에 실없는 소리를 하며 감자를 집어 들었다. 분이 잘 난 하지감자는 포슬포슬 달기도, 짭짤하기도 했다.
할머니표 네버엔딩 감자(요술처럼 냄비에서 끊임없이 감자가 나왔다!)를 잔뜩 먹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휘, 둘러보았다. 열린 문 사이로 집집마다 사람 소리, 살림하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사람이 살지 않아 비어있는 집을 빼고는 문이 닫혀 있는 집이 없다. 누가 봐도 새로 칠한 티가 나는 진초록색 대문, 우리 집만 빼고.
집에 들어오는 길, 돌 하나를 괴어 나도 대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저도 여기에 살고 있어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