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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Dec 05. 2021

갑자기 담이 무너졌다

7월 말, 일주일 간 여름휴가 내고 시골집에 왔다. 친구들도 휴가날을 맞춰 시골집에 모였다. 인력동원과 함께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잔뜩 뽑아놨다. 잡초 뽑기, 시멘트 보수, 천장 보강, 화단 정리. 그런데 때 맞춰 연일 비가 억수같이 내린다. 장마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전을 부치고 막걸리를 꺼내와 식탁에 둘러앉았다.


"일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지." 친구가 말했다.

"방금 들었어? 천둥도 친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막걸리는 유난히 달았다. 할 일을 미뤄두고 마시는 막걸리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여름날 낮술! 여름휴가에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 싶었다.


“근데 말이야.. 왜 우리 집에서 밖이 보이지..?”

“뭔 소리야.”


뒷마당에서 앞마당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였다. 분명 주방 식탁에 앉아 있는데   샛길과 회장님  텃밭이 보였다.   간의 버퍼링을 마치고 보니,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다. 아까  소리는 천둥소리가 아니라 담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부랴부랴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돌과 흙으로 쌓아 올린 담장  이상이 무너져 휑하니 뚫려 있었다. 심지어 무너진  사이로   마리가 스스스 지나간다. 이럴 수가.


어느새 우산을 받쳐 쓴 마을 회장님도 곁에 와 계셨다. 아마 나와 친구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소리와 뱀을 보고 꺅꺅거리는 소릴 들고 나오셨을 것이다.

“아이~ 이게 무슨 일 이래.”

“그러니까요. 갑자기 무너졌어요..”

“여태 무너질락 말락 했었는디, 참다가 이쟈 딱 집주인 왔다고 안심허고 무너졌네.”

여태 멀쩡하던 담이, 왜 갑자기 지금 무너졌을까. 밀려오는 짜증에 혼자 씩씩거리던 중이었다.

  

사실 이런 상태의 담장이라면, 언제 무너져도 무너졌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와 있어 해결이 가능한 여름휴가 날,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절호의 타이밍에 무너진 것이다. 회장님 말씀 덕분인지, 갑자기 막걸리의 취기가 올라와서인지 모르겠지만 ‘왜 하필’이  ‘다행스럽게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결국 '비 오는 여름날의 낮술판’은 ‘비 오는 여름날의 공사판’로 바뀌고 말았다.



+) 친구들과 함께 어설픈 손길로 고친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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