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걸 다 빌려주는 도서관
요즘 미국 공공도서관들에 "Library of Things"라는 게 유행입니다. 도서관에서 책과 CD, DVD를 넘어 일상에 필요한 물품들을 빌려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저도 열심히 서비스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우선 부정적인 의견을 먼저 얘기하고요. (그건 짧아서요) 그러고 나서 제가 팬데믹 동안 시작한 Library of Things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얼마 전 한 공공도서관에서 수영장 공사를 한다는 페북 포스팅을 보고 도서관 관장과 진지하게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도서관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장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었죠. 도서관이 단순히 책과 영화를 빌려주는 장소의 역할뿐 아니라 이제는 커뮤니티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경계가 없을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 도서관 사용자들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보람된 일이지만 그렇다고 도서관이 슈퍼히어로처럼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또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에요. 서비스가 확장되는 것을 왜 경계하냐고요? 요즘 사서들이 자신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자뻑에 취해 계도적 태도를 취하는 위험한 상황을 주변에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팬데믹을 지나면서 Black Lives Matter와 같은 사회적 메세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다 못해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우월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서들로 인해 가치중립적이어야 하는 사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이 무너지고 있다는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서 도대체 이제는 수영장까지 만들어야 하나?라며 탄식을 했지만 나중에 알고 봤더니 결국 만우절 농담으로 밝혀졌어요. 사실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용자들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그래도 책과 영화 이상의 대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요즘 도서관의 유행입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집에 인터넷이 없는 사용자들을 위해 Hotspot (와이파이 에그 같은 거예요)를 대여하는 서비스는 팬데믹 전에도 했었어요. 팬데믹 기간에 도서관은 문을 닫아도 도서관 파킹장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서비스도 했답니다.
저는 팬데믹 기간 동안 Early Literacy Bag이라는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고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오늘은 이 서비스에 대해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저희 도서관에는 장난감과 퍼즐이 많이 있었어요. 아기들을 데리고 오면 책보다 장난감이 있는 코너로 먼저 갈 만큼 인기가 많았어요. 팬데믹이 시작되고 도서관의 제일 큰 변화는 여럿이서 만져서 세균을 옮길 수 있는 퍼즐과 장난감을 모두 없애는 것이었어요. 제 사무실에 쌓여있던 이 장난감들을 대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런데 장난감만 대여하지 말고 아예 사서가 고른 책들과 장난감을 세트로 대여하도록 한 것이 Early Literay Bag이었습니다.
속이 보이는 두꺼운 비닐로 된 백팩을 빨간색과 파란색 두 종류로 샀고요. 가방 안에 들어가는 책과 장난감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활용했습니다. 빨간색 가방은 유아용이고 파란색 가방은 3-5세 아이들을 위한 가방입니다.
빨간색 가방에는 보드북으로 알파벳 책 한 권, 숫자 혹은 칼라나 모양에 대한 책 한 권을 넣고 장난감을 하나 넣었어요. 각 가방마다 다른 장난감이 들어있어요. 처음엔 10개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인기가 많아져서 10개를 더 만들었거든요. 총 20개의 다양한 책과 장난감을 빌려 갈 수 있습니다. 팬데믹 초반에는 Zoom으로 스토리 타임을 했어요. 그래서 가방에 스카프와 쉐이커를 같이 넣어주어서 스토리 타임 때 비록 화면에서지만 같이 사용했어요.
3-5세들을 위한 파란 백팩에는 유아용 책들보다는 조금 글밥이 많은 그림책으로 세 권을 넣었어요. 알파벳 책 한 권, 숫자 책 한 권 그리고 칼라나 모양에 대한 책 한 권 이렇게 세 권입니다. 장난감도 촉감놀이용이 아니라 좀 더 알파벳 공부를 할 수 있는 학습용 장난감을 주로 넣었습니다. Preschool 아이들은 스토리 타임에 책을 읽고 책의 주제와 관련한 만들기 활동을 하거든요. 그때 필요한 재료 한 달 치를 가방에 넣어주었어요.
빌렸다가 리턴된 가방은 모두 깨끗이 닦고 3일간 쿼런틴을 한 후 다음 사람에게 대여했습니다. 심지어 가방 닦을 때도 저는 클로락스가 든 세제로 닦지 않고 올개닉 세제로 닦아요. 제가 이런 면에선 너무 편집증적인 성격이라 주변에서 too much라고 하는 편인데 그래도 이럴 땐 투 머치가 나은 거 같아요.
도서관이 오픈을 하지 않고 curbside pickup 서비스만 하던 때에 Early Literacy Bag은 엄청난 호응을 일으켰습니다. 학부모님들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요. 현재도 40개의 가방이 계속 대여가 되는 중이에요. 여전히 닦느라 엄청 바쁘죠. 말 그대로 몸이 힘든데 그래도 보람 있는 서비스입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도서관의 대여 통계에도 효자 노릇을 했고요.
너무 인기가 많아서 장난감 대여 비즈니스를 하면 대박 나겠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한국에 있는 동생이 한국은 이미 그런 서비스가 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일 년 대여료가 만원이라고...ㅠㅠ; 역시 한국이 최고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