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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로컬 교회 방문기

마음의 소리가 하늘에 닿다

by 위혜정

인도네시아는 무려 1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세계에서 섬이 가장 많은 국가이며 각각의 섬마다 종교적 색채도 다르다. 섬으로 고립되어 있다 보니 섬 전체에 하나의 종교가 지배적으로 퍼져있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택시 기사들과 대화하면서 알아낸 사실을 토대로 구글링 해보니 자카르타가 있는 자바섬은 이슬람교, 발리는 힌두교, 티모르는 기독교 인구가 90% 이상이라고 한다. 섬마다 빛깔이 다른 개성과 독특성은 한국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신비로움을 더한다.


흩어져있는 조그마한 섬에서는 생계를 위해 벌어먹을 일이 없어서 발리로 건너와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발리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택시 기사를 비롯하여 호텔, 요식, 해양 스포츠, 관광 산업 등 외국인을 상대하는 업종들이 꽃을 피우고 있는 곳이다. 내가 만난 택시 기사들은 대부분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즐기고 좋아하여 직업 만족도가 꽤 높 보였다. 한국어에 대한, 아니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역시 높았다. 이들 모두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는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제주도 크기의 세 배 정도 크기에 힌두교가 지배적인 발리. 호텔 근처에 교회가 있으면 예배 한번 드려보는 것은 어떨까 막연히 마음속에 그렸다. 한국에서는 뭘 모르고 품은 소원이었다. 발리에 와보니 어딜 가나 힌두교 사원과 신들의 석상, 차낭사리로 가득한 분위기에 오자마자 기대를 접었다. 이곳에서 교회를 찾는 일은 넓디넓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현지 개신교인을 만났다. 뭐, 밀도 있는 대화가 가능한 상대는 역시 택시 기사. 꾸따 해변 근처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작은 섬 출신이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다. 힌두교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에서, 주일을 앞둔 토요일 오전, 기막힌 타이밍에 지역 교인을 만나다니.


지나가는 말로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오전 8시 40분, 호텔 로비까지 우릴 데리러 왔다(9시 예배). 발리에서 현지 교회 방문이라니. 그것도 호텔과 멀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색적인 문화 체험과 더불어, 기독교 입장에서 척박할 수 있는 발리라는 땅에서 어떻게 믿음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고 있는지도 궁금 졌다.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관광지와 호텔을 벗어나 한적한 발리 현지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초대되었다. 시골길의 정취를 풍기는, 진정한 로컬 정서가 묻어난다.

발리 현지인의 거주지역

현지화된 듯 그 분위기에 도취되어 걷다가 어느덧 수많은 오토바이가 주차된 건물 앞에 도달했다. 예배를 드리러 모여든 성도들의 수만큼 가득 차있어서 예배당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외국인이라 신기해하면서도 환한 미소로 우릴 맞이해 준다. 새 신자를 우대하듯 맨 앞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예배 전, 악기팀 3명과 찬양대 3명이 찬양으로 예배를 준비한다. 현지어 찬양이 흘러나오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도 발리에서도 동일하게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느낀다.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은 마음속 작은 소망까지 듣고 응답하시는 분, 이곳 현지 교회로까지 우릴 옮겨 놓으신 이끄심에 눈물이 핑 돌았다.


곧이어 목사님의 설교는 창세기 "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 말씀이다. 성경책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말씀을 읽는 성도들의 풍경이 한국과 비슷하다. 설교 말씀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지만 'Tuhan'이라는 단어 하나를 배웠다. 하도 반복해서 들리길래 찾아봤더니 'God'라는 뜻이다. 예배당 중앙에 걸려있는 현수막의 'Lebih dalam dengan Tuhan'은 번역기를 돌려보니 '하나님과 더 깊게'라는 뜻이다. 먼 이국땅, 그것도 힌두교도의 틈바구니에서 꿋꿋하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현장이 놀랍고도 놀랍다.


몸을 배배 꼬며 지루함에 힘겨워하는 아들을 달래며 설교 말씀이 끝날 무렵, 목사님의 눈길이 우리에게 머문다. 광고 시간, 일어나서 새 신자 소개를 원하시는 것 같다.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 서자 옆에 영어를 잘하는 인도네시아 현지 교인을 통역으로 붙여주신다. 어디서 왔고, 어떻게 오게 되었으며, 오기 전에 마음에 품었던 소원과, 이곳에서 오기까지의 놀라움 등을 말했다.


"한국에서도 발리에서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모두를 축복합니다."


마지막 말은 통역을 하지 않았는데도 모두가 알아들은 듯 환하게 웃으며 뜨거운 박수를 쳐준다.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 만국 공통어가 통하는 순간이었다.

현지 목사님(가운데)과 택시기사(오른쪽)

실로암 교회. 교회 이름이다. 목사님은 18년 전에 사모님과 단둘이서 예배를 드리며 이곳을 개척하셨다고 한다. 이제 안정적으로 50여 명이 넘는 성도들과 매주 일요일 9시, 이른 아침에 예배를 드리는 정도의 규모가 되었다. 아담한 예배당, 실시간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한 예배의 녹화, 한국과 유사한 찬양-설교-광고의 형식 등이 언어만 다를 뿐 익숙한 동질감을 주었다. 이래서 주안에 형제자매라고 하는가 보다. 예배가 끝나고 너도나도 말은 통하지 않지만 악수를 청하러 와주신다. 그들도 얼마나 신기했을까. 말도 못 알아듣는 외국인이 함께 예배시간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 주다니. 지루함의 극치를 예배 시간 온몸으로 표현했던 아들이 말한다.


"엄마, 다음에 또 발리 오면 이 교회 올래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당일까지 택시 기사는 우리의 친절한 발이 되어주었다. 다음번에 오면 어디 어디를 데려가 주겠다며 다시 만날 약속까지 한다. 마지막 날, 여행을 마치고 함께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왓츠앱으로 보내준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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