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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혜정 Nov 01. 2024

희생양에 이런 의미가?

<희생양 메커니즘>과 '희생양'의 이모저모

"OO은 협박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 역시 이 사건 배후 세력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일간지에 실린 뉴스 기사입니다. 정치, 경제,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분란과 갈등을 무마하는 방법으로 희생양 프레임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희생양이란 제물로 바치기 위해 희생되는 양, 즉 속죄양으로 주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피해자를 의미합니다. 희생당한 약자의 입장에서는  강자의 실수나 죄를 일방적으로 덮어쓰게 되는 횡포와 잔인을 가득 물고 있는 용어라고 볼  있지요. 


 영어로 'scapegoat(희생양)'는 'scape(escape:도망치다, 탈출하다)'와 'goat(염소)'가 결합된 합성어로 '도망간 염소'라는 뜻입니다. 뜬금없이  '염소'라는 말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이 염소가 도대체 어디로 '도망갔다'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염소의 한자어 표기는 산양(山羊:뿔이 있는 염소)입니다. 과거에는 염소를 산양이라 불렀다는 것인데요, 야생 산양과 집에서 기르는 염소는 엄밀히 말하면 동종이 아닙니다. 다만, 야생 염소 품종 개량을 거쳐 가축화하였기에 염소와 산양 혼 것이지요. 염소에 이어 털이 풍성한 면양이 인간과 함께 살게 되면서 두 종을 구분하기 위해 염소를 산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따라서 면양이 가축화되기 전 시기에 양이라 부른 것은 염소를 가리켰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산양과 염소의 외형 차이>



레위기 16장: 희생


 염소가 희생 제물(희생양)로 쓰였던 역사적 사실 레위기 16장에서 확인됩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를 자백하 그 죄를 염소에게 전가한 후 죄를 짊어진 염소를 광야로 보내 의식을 치렀습니다. 지었던 죄를 멀리 떨쳐버리고 용서받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 제사였던 것이지요.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레 16:10)


 구약에 나온 이 희생양은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게 될 예수님의 희생을 미리 복선으로 깔고 있는 것이지요. , 강자와 약자,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힘의 논리가 적용되는 현대적 의미의 희생양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희생양의 피를 올려야 했던 구약시대의 속죄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되셨 예수님은 힘과 세력의 변두리에 위치하여 반격이나 복수가 불가한 약자가 아니었습니다. 창조주라는 높은 지위를 내려놓고 스스로 낮아져 자발적으로 희생값을 치셨지요. 가장 약한 대상을 짓밟는 집단적 폭력이라는 요즘의 희생양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인간의 폭력성: 희생양 메커니즘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르네 지라르는 문화의 기원과 발전, 인류의 역사를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설명합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집단을 지키기 위해 약자에게 책임을 전가 가는 폭력성 전이 현상으로, 집단 경쟁과 갈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기제라고 합니다. 중세의 마녀 사냥,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일본의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학살 등과 같은 수많은 잔혹공통적인 사회 유지 방식을 기반하고 있습니다. 압이 차올라 터져 버릴 수도 있는 집단 내의 폭력성을 낮추기 위해 공공의 적, 희생양을 만들어 불평과 불만을 투사하고 심리적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반발할 능력조차 없는 사회적 약자(들) 찾아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을 퍼부음으로써 감정 해소의 출구를 찾고 폭동을 막아 냅니다. 이는 희생양을 발판으로 내부 결속을 다지는 과정이며 독재자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안성맞춤메커니즘입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군중심리입니다. "너 때문이야!" 하며 누군가를 손가락질하며 집단행동으로 연결이 됩니다. 개인이 결집하여 연대하는 힘은 실로 강합니다.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의 과정이 바로 그러하지요. 그러나 군중의 힘이 쏠리는 방향이 잘못되면 자칫 끔찍한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매카시즘(McCarthysm)이란 용어까지 탄생시킨 미국의 공산주의 선동 사냥인데요, 1950년대 미국 공화당 의원 맥카시가 미국 국무부에 200여 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발언을 시작으로 4년간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공산주의자로 오인받아 척결되었습니다. 이후 매카시즘은 인터넷(Internet)을 매개로 한 마녀 사냥, 네카시즘(NetCarthysm)의 뿌리어가 됩니다. 네카시즘이란,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적인 개인 정보 폭로와 비방하는  군중심리를 일컫습니다.



희생은 횡포가 아닌, 일방적 자비


 르네 지라르는 희생양 메커니즘 이론으로 사회 현상들을 들여다보았지만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예수님의 희생양 되심을 마주하게 됩니다. 성경을 들여다보며 그는 놀랍게도 기독교인으로 회심했다고 하지요. 희생양 메커니즘은 폭력으로 폭력을 무마하려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할 수 없는 모순을 가집니다. 잠시 잠깐의 미봉책이 될 수는 있어도 또 다른 반발과 폭력을 유발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요.


  '희생양'의 현대적 의미는 성경에서의 의미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띠지만, '희생'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됩니다. 희생은 나의 욕구 충족을 위한 행위이거나, 혹은 누군가의 대가를 바라고 반대급부를 기다리는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닙니다. 대의를 위해, 상대의 잘됨을 위해 일방향으로 행해지는 자비이지요. 누군가의 희생을 감사해야 하고, 또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 소중한 가치계승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거창하게 인류 역사의 선순환을 논하지 않더라도 부모에게 받은 희생과 사랑을 자식에게 베푸는 내리사랑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사랑과 자비, 즉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삶의 무대 위에 단단하게 서게 됩니다. 인간의 사랑은 물론이거니와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큰 사랑을 받은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희생값으로 내 옆에 서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나를 아끼는 하루, 남을 아끼는 하루가 된다면 희생을 치른 누군가의 자비가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지켜내는 하루, 동참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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