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릉이가 두 시간에 2천 원이라서 기뻐요
아, 맞다. 나는 우울할 때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오만함으로 글을 써내리던 사람이었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속마음을 탈탈 털어 거지꼴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위로받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나는 스스로와 소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기간이 길어감에 따라서 인간관계의 폭은 좁아졌지만 함께 그 깊이가 깊어지는 경우는 지극히 적었다. 굴착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아예 드릴날을 뽑아 갖다 팔아버린 이의 이름은 오만.
그렇게 나는 고지식한 인간이 되었다. 겉바속촉한 인간이 되었다. 고지식한 테두리를 두르고 나서 속에는 무르고 무른 내용물을 채웠다.
글이 꼭 내가 광화문 광장 거리에서 질질 흘렸던 선혈처럼 흐르다 넘어 신발을 적셨다. 이런 당혹스러움이 있나!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는 나! 내 가래는 앞으로의 삶에서 점점 더 커질 예정이다!
늘 그랬듯이 시간은 모든 나날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람들을 꿰뚫을 것이다. 물론 그 관통을 육안으로 목격하는 이는 적을 것이고 나 또한 목격자가 아니게 될 확률이 높다.
경험치를 최대한 끌어모아서 오래전 내가 이런 거리를 걸었던 때를, 이런 노면에 자빠져 뺨으로 그 차가움을 느꼈던 때를 떠올려본다.
돌멩이들은 불규칙하게 노면 위에 놓여있지만 노면은 노면이라는 단어로 대충 평평함을 시사하는구나. 그렇기에 지금 내 볼에 뾰족하게 찌르는 이 돌은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 별안간 내가 배를 깔고 드러누운 불특정한 이 공간에서 어쩜 이렇게 딱 맞춰 내 얼굴을 찢어발기는지. 대단한 인연이다. 아니, 석연이다.
우리들의 관계를 두 조각으로 가르는 일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았었나! 몇 년 만에 넘어진 곳에 뾰족한 돌이 내 면상을 갈아버릴 확률이지만 늘상 싸우고 박살나는게 사람사이고 그게 군집하면 사회가 되어버린다.
이 길의 이 돌도 내가 오늘 볼을 갖다 대서 자기가 뽀뽀를 해줄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뽀뽀라기엔 돌멩이는 너무 삐죽거렸다.
기대에 응하지 못하는 일은 견딜 수가 없다. 기대감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매번 달랐다. 언젠가는 내가 뒤집기를, 첫걸음을 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역으로 언젠가 나는 그들에게 팔과 다리를 따로따로 가지고 놀 수 있는 합체 로봇을 사주길 바랐었다.
그렇게 기대를 보내고 기대를 받으며 시간은 흘렀고 때때로 기대의 충족과 미충족은 시간의 텀을 두고 이루어졌다. 나는 나에게 기대했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성장하고 커간다는 것은 기대하는 것들의 성취나 도달에 걸리는 시간이 거듭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말이었다. 아직 결착까지 가장 오래 걸린 기대는 2년 이하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대부분 내가 바라는 것들은 2년 정도 비탈길에서 구르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었다. 혹시 내가 입 밖으로 나의 소망을 말하는 순간 그 소망들은 이루어지기 더 어렵게 변하거나 아니면 망쳐져 버리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상은 때때로 현실이 되었기에 나는 종종 입을 다무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입을 열어 나의 기대감에 대한 대답을 피할 수 없는 때가 있었기에 대번에 또 망쳐버리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 나날들엔 전화기 갤러리에 내 얼굴을 찍은 사진 한 장이 없었다. 20대에 머리를 기른 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머리가 마침내 길었을 때엔 프로필사진으로 해둘 만한 사진 한 장이 없었다.
겨우겨우 찾아낸 사진들도 역병이 만든 새 얼굴들을 쓰고 있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머리가 길었을 때. 모두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됐기에 나는 내 체중이 사라지고 눈빛의 생기가 사라지고 얼굴이 푸석해짐을 모른 체 해도 됐다.
머릿 끝이 상하던, 파마가 반쪽만 풀려서 뒷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변하던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머리는 길 뿐이고 나는 내버려 두면 되었다. 비단 머리만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렴.
두 번째 머리를 길렀을 때. 일상 속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자란 머리에 정말 나 자신의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물레 연습을 찍은 영상 속의 내 머리가 너무 보잘것없고 못생겨서 놀라웠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간 주에 선생님은 기억상에 있는 몇 안 되는 칭찬 중의 한 번을 해주었다. 머리 잘 잘랐네 라며.
지금이 5월 말쯤이니까 지금부터 기른다면 겨울이 온전히 지나야지 거지 같은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그리워하던 그런 길이가 되지 않을까? 머리는 달에 1cm 정도 자란다고 하니까 아마도.
나에게 긴 머리는 어떤 의미 었냐면, 어쩌면 자기파괴적인 일의 일환이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머리를 감는 것도, 말리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리고. 거추장스러운 것을 스스로 만들고 방치하는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쓰는 파일철을 세워 가림판으로 썼었다. 전혀 가림판스럽지 않은 가림막. 하늘색, 일반 갈색 봉투색. 나는 그게 서류를 꽂는 용도라는 걸 고학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겁쟁이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것은 겁쟁이-경계심 많은 사람이 종국에 살아남게 해 주었고 경계심이라는 특성은 유전자에 남아 전달되었다. 일생을 겁쟁이로 살다 보니 양 눈 옆에 가림막을 달고 싶은 마음이다.
땅만 보며 걷고 싶다. 그것은 방해물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겠다는 뜻이었다. 도시에서 땅만 보고 걷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까.
오랜만에 글이 흘림 없이 담백하다. 퇴고 없이 쓰인 날 것의 글의 읽힘이 오랜만이다. 그 정도로 격정 없는 나날들이었다. 아무리 버둥대봐도 내가 늪 속에 있는 이상 더 깊게 빠져들 뿐이었기에 그간은 격정은 커녕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조차 사치였다.
중랑천변의 농구코트 옆 수풀에서 눈물콧물을 한 바가지 정도 쏟고 나서는 난 괜찮다고 스스로 되뇌었지만 그럴 리가. 나는 내 감정의 양파가 벗겨지고 벗겨져 그 심지가 나오게 되었을 때 추하디 추한 모습일 것이 두려워 눈물 흘릴 일과 미디어를 조심한다. 미디어엔 언제나 감정 철거반이 있으니까 말이다. 신파, 로코 뭐 그런 거.
하지만 오랜만에 내 비강에 있던 콧물은 아주 시원하게 세상 공기와 맞닿았다. 드러워죽겠지만 재밌는 표현이다. 나는 정말로 수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속에 있던 말들을 토했다.
그것은 비단 따릉이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날리던 눈물 방울뿐만이 아니라 갑자기 사라져 버린 이태원에서의 작업에, 쓸쓸한 논현역의 환승에. 땀이 삐질삐질 나는 코엑스의 불편함. 자칫 잘못하면 도로 위에서 하루에 네 시간을 넘게 보내야 하는 나날들. 늘 지불하는 것에 비해 풍성한 꽃을 꾸려주시는 꽃집의 사장님에 대한 고마움, 네가 필요한 것들을 생각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르던 마트와 다이소. 갑자기 입원한 병원의 건조함, 몇 달째 아침저녁으로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의 번거로움. 관악의 어색함을 깨주려던 너의 노력. 그리고 긴장감과 부슬비가 내렸던 공예에 대한 내 생각을 적던 날. 그리고 정수리에 부담을 얹고 들어섰던 벽면이 하얀 면접실. 그리고 오해와 미움으로 칠해진 금요일의 통화들이 보내는, 도착한 둑의 댐을 허물어 여지껏 잘 담겨있던 것들을 모조리 쏟아낸 결과물이었다.
친히 내 손에 잡힌 밧줄이 늪에서 꺼내주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내가 얼마나 깊이 잠겨있는지 밧줄로 가늠하려는 행위 었다는 사실에 나는 절망스러웠다. 원래도 깊었던 가라앉음의 시간적 길이를 확인함으로 더 깊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 잘 지내자. 느리고 적셔진 가사들을 사용한 노래들을 듣다가 겨우 바꾼 플레이리스트에선 붐뱁이 나왔다. 나는 정말 공허하게 떠 있을 다가올 2주간의 시간을 두려워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치 주문처럼. 미신 가득한 광신도의 집착처럼 행해지던 개인의 마술적 구절을 중얼거리며.
나는 내일도 더 강해지고
나는 내일도 더 높은 곳으로 간다.
그 말은 반대로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보다 약하고 내일의 나보다 못났다는 뜻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괴로워 몸부림치는 시간. 손과 발, 사지 중 아무 데도 닿을 곳 없이 추락하는. 혹 잠깐이지만 떠 있는 시간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오는데.
하릴없이 하루를 밀어내고 눈이 벌게져서 잠에 들면 어제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으니 나는 내일을 믿고 내일의 나에게 읍소할 뿐. 고마워요 내일모레도 잘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