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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헌 Dec 22. 2023

어떤 기억은 색깔이 없다

그런 기억 속 사람들은 얼굴이 없다

한참 늦어 굳어버린 글을 겨우겨우 쥐어 짜냈다.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글들이 수분을 머금고 있었을 때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말라버렸기에 서로 바라보는 나와 글의 시선은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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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1분 1초, 그리고 우리의 대화상에 마가 낀 그 붕 뜬 시간까지도 모두 빈틈없이 행복하다면 나는 그 이를 정신병자라고 부르겠다.


그런 행복은 없다고 믿는 것이 도리어 나의 정신병이라 부른다면 흔쾌히 타인의 모욕을 받아들이겠다. 왜냐면 낭만적이지 않게도 그런 건 진짜 없으니까. 아주 행복한 일이라도 일주일정도만 지나면 짜증 나는 구석을 지닌 어정쩡히 지속가능한 어떤 염증스러운 일로 변하는 것이 으레 있는 보통의 일이었으니까.


애석하게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혼자서 도달할 수 있는 행복의 역치는 이제 가시권 안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몇 가지 되지 않는 그 일들은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다음 단계로 갈 빌미를 줄지만 나를 전혀 고양시키지 않는다.

그나마 남은 고양감과 기쁨도 공중전화처럼 점점 사라지리. 휴대폰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처럼 나는 전화 한 번 하려고 동전을 쥐고 공중전화를 찾아다니는 애처로운 바보가 되어갈 뿐이었다.


1008

쌓인 알람을 보고 다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과한 정보 사이에 숨어있는 내가 알아야 하고 알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것에 드는 에너지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남은 삶도 이럴 것이다. 필요를 찾기 위해 불필요를 들이붓기. 학문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불필요가 아니라 목적에 닿기 위한 투자이자 공부이고 그런 시선에서의 나는 유리한 요령과 필요이상의 효율을 추구하는 젊은이로 보일 것이 저명하다.


조급함은 저기 저 멀리 산 위, 내가 소원을 빌며 돌탑을 세운 곳에 두고 왔으면. 근데 나는 등산을 하지 않는다. 돌탑에 소원을 빌 일도 없거니와 돌 쌓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조바심 내지 않는 차분한 성격, 신중함을 가진 이들을 신비로운 무언가를 가진 생경한 인간타입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결코 닮을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가진 나에게 없는 성품들을 대입해 치환해 보면 되려 나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만 같았다.


궁금했다. 차분하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내가 열망하던 그 어떤 것보다 내가 더 알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이 그 호기심 옆에 착실히 붙어있기에 나는 여전히 차분함에 담긴 가치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바라볼 수 없다. 저 돌탑에는 그 답이 있을까 해서 꺼내본 이야기였다.


1013

이런 날이 오면 정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 진다. 갖은 질문들이 다가오는 날 말이다. 이건 왜 그래? 넌 이건 왜 그래 저건 왜 그래 하는 말들이 무자비하게 다가오면 나는 이내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생각하다가 포기해 버린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말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날이 오면 그냥 뿅 하고 사라지고 싶어 진다. 정말 목덜미 아래가 너무 아파 찡그린 얼굴과 울음을 참을 수 없는 날엔 말이다. 눈을 감아도 떠도 눈앞에는 정말 한 방울만 더해져도 왈칵 넘쳐버릴 것만 같은 잔이 떠다닌다. 잘 되지 않는 학교에서의 프로젝트가 컵과 잔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일까.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좋겠다.


정말 요새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만큼 흔한 질문이 되어버린 MBTI에 대한 질문. 친구는 나에게 너는 더 이상 E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익스트로버트가 진짜 아닐까? 어릴 적과 내면을 둘러보고 나면 확답이 어려워진다.

줄곧 외향적인 성격이 곧 인간 사회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고 인적 네트워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들이라고 믿어왔던 나에게 기점이 되는 일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올해, 이 달, 현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모든 견해와 관점을 동원해서 판단해 본다면 친구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나는 점점 말을 아끼고 마음을 지출하는 것을 꺼리는 인간이 되어가니까.

보통 물가가 상승하면 소비가 위축되어 가지고 있는 재화를 꽁꽁 싸들고 있기 마련인데, 내 마음은 어디로 줄줄 새어나가 버렸나? 나도 마음을 잘 보관해서 정말 쥐꼬리만 한 이자라도 받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만 든다. 차라리 올바른 투자처에라도 갖다 박았더라면 이렇게 늘 마음이 부족해 허덕이지는 않았을 테다.


그렇게 가득 찬 잔을 떠올리면서도 정말 속상한 상태였다는 것을 인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의외로 나는 내가 속상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둔한 사람인 걸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도 브레인워싱 당해서, 뭐랄까? 상남자 호소라던가 주어진 성역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라거나 그런 것들에 생각보다 많이 의탁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로 슬프다는 사실을 마치 숨기고 싶은 어떤 것처럼 철가면을 씌워 변두리의 감옥에 가두어 둔 것은 아닐까?


번외로, 애착을 가장 강하게 가져야 될 대상에게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를 찾기 이전에 심히 속상한 일이다. 정말 슬픈 일이다. 왜 그렇게 됐는지를 추적해 찾아가 봐도 용의자는 없고 모두의 잘못인 하나의 현상으로 밝혀져버린다. 누굴 징벌하겠나, 나 자신조차 귀책사유가 있는 관련자로 살아가는데.


아무리 숨기고 고립시키고 외면해도 현실과 현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들은 새 시대의 새 숙제이며 나는 그런 피할 수 없는 과업을 좋아하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다.


1015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


유리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면 유리로 만든 물건처럼 사용해야 한다. 돌을 다루듯 다루면 그것을 유리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길지 않을 테다. 마대자루에 담긴 것은 이제 나와 같은 장소에 있기에는 어렵다는 뜻이 되는 거니까.


보지 말아야  , 보지 않아도  . 알지 않아도  , 알지 않아야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절망한 것은 익지 않았을 컵라면을 괜히 열어 젓가락으로 뒤적이는  정도의 궁금증이  일상을 망치는 가장 구매력 좋은 고객이란 점이다.


내가 몰랐더라면 더 행복했을까? 평행세계의 모르는 나를 만나보기 전엔 비교조차 어려운 일일 거다.


햇수로는 3년에서 4년 정도 됐으려나, 아예 연고도 인연도 없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털어내는 일. 학교의 서비스가 꽤나 좋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1시간 남짓한 보따리가 풀어졌다.

상담사는 내가 도식화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간추려 한 문장쯤으로 정리해 주었다. 치안이 망가지면 자연히 자경단이 생기는 원리와 비슷하다. 궁핍으로부터의 탈출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었고 나는 적어도 나의 어떤 것을 지켜줄 곳, 것, 사람이 필요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희망을 닫고 스스로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를 열었다.


차라리 한 번쯤 더 겸손하고 질문했더라면. 과신을 닫을 때가 됐음을 느끼기에 뉘우치는 회고이다.


1016

하루종일 얼굴을 확인하지 않는다. 아침에 씻으면서. 그리고 집에 들어와 잠들기 전 전화기 카메라에 얼굴을 비춰본다. 야망은 어디 가고 초라하고 수척한 청년이 눈에 보인다.


그런 불안이 뇌 깊숙이 새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 뭔가를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는 작은 아이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분명하다. 양손에 뭔가를 꽉 쥔 채로는 새것을 손 뻗어 잡을 수 없다는 간단한 원리는 어떤 문화권에든 있는 기본적인 지혜의 가르침이다. 어디에나 있고 기본적이라는 설명의 뒤엔 매우 지키기 어려운 원리라는 사실이 숨어있다.

당장은 병 속의 사탕을 놓고 손을 빼는 정도의 이야기이지만 실상은 접힌 손가락을 하나 펴기도 어려운 이들이 수두룩하다. 나라고 다를 리 없고.


오히려 거울을 보지 않는 나는 손을 꽉 쥔 사람일 테다. 각오를 잃을까 추레한 모습을 가면삼아 하루를 지낸다. 가당치도 않은 것들에 의미를 놓는 나를 볼 때면 작은 아이도 코웃음을 친다. 그 아이가 쥔 것이 내가 가리려고 괜스레 잡고 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원대하게 보인다.


1018

3만 원에 무를 수 있는 실수라 좋다. 어쩌면 다행이다. 이런 실수들이 나의 하루와 기분을 망쳐버리지만 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자비나 자애로운 성품이 개인의 삶의 어떤 지점을 비춘다. 나도 누군가의 너그러움으로 놓인 다리를 밟고 어떤 물길들을 건너왔으리라 당연하게 생각한다. 원각수 은각석, 나는 돌이랑 거리가 먼 건지 돌탑부터 시작해서 무성의한 기억력과 정성을 가지고 살았음이 송구스럽다.


스스로에게 너그럽다는 말이 마치 이기심의 정수를 담은 말처럼 보이지만 스스로의 실수를 스스로가 무마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일이 나에게는 큰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오늘만은 그 말을 써보기로 했다.


집으로 배송된 조립식 철제선반을 아침에 겨우겨우 잡은 택시에 꾸역꾸역 실어서 가는 등굣길. 3만 원에 무를 수 있는 실수라 좋다. 정말로 다행이다. 이런 실수들이 있더라도 나는 나에게 적당히 속상해하고 무를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으니까.


1027

기만은 하는 사람 입장에선 즐거운 행위이다. 마치 용서처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채로 할 수 있는 것이 기만과 용서가 아닌가.


무의식에서 나오는 기만을 나는 우위라고 부르겠다. 손자가 생각한 최상의 병법인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말에 기만 전술이 포함이 되는지 생각해 본다. 말도 하기 전에 이미 상대가 기만당했다고 느낀다면 승리가 따라오는 것은 확실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차라리 기만이라는 개념이 나에게 없었더라면 좀 더 담백하게 상대의 장점과 강점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쿨한척하면서 억지 섞인 인정을 해주는 것 말고, 진짜 존중과 존경을 담은 삶은 계란 같은 그런 인정의 태도말이다.


기만에 대한 생각들이 툭툭 튀어나오지만 난 이것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어떤 것이고 이렇게 다루면 좋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잘난이들이 하는 것인 기만을 해보기 위해서 노력하는 내 모습이 어쩌면 비참해 보였을지도 모르고.

나조차도 그런 몸부림이 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 위에서 내려다보겠다는 일념으로 흐린 눈을 한 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


1102

내 불우함이 누군가에게는 풍족함이라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입을 떼기가 힘들어져버렸다. 나의 풍족함도 누군가에게는 불우함이겠거니 생각하면 기운이 빠졌다. 내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인 가재, 붕어, 개구리가 마주 선 거울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한 배, 위험한 비행기. 하늘도 바다도 모두 위험한 공간. 내가 매번 뒷문을 찾듯이 위험을 가르고 리스크를 정수리에 이고 가는 일에는 늘 플랜 비가 있다.

그런 운송수단에는 구명정이 있다. 배가 침몰하고 비행기가 추락하더라도 누군가는 살 것이고 결국 수단이 망가지고, 완전히 산산조각 나더라도 나를 살릴 구명정은 있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 어딘가에 ATM처럼 자리를 잡고 급박한 순간의 인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배에 타서 흔들리는 바다에 뜨고 비행기에 타서 허공으로 날아올랐으면 추락하고 침몰할 각오를 가볍게라도 해야 하지 않는가. 의외로 나는 싫은 것들을 부정하면서도 최소한의 탈피나 변태조차 거부하고 안주한 시간들이 많았다는 현실을 마주한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 위기를 나는 위,라고 불러도 손색없겠다. 기회 없는 그저 위.


늘 슬픈 사람이라고 쓰기엔 기쁜 순간이 많고 행복한 사람이라기엔 비관의 시간이 길다.


1104

고유한 특성이라고 인정하기에는 치명적인 부분들이 많다고 느낀다. 비문을 가득 섞은 글을 내놓는 것도 어느 순간엔 부끄러운 일이 되어있었지 않나. 방식을 바꾸고 양식을 바꾼 후에야 나는 치명상을 지우고 다시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엮어 더러운 천 위에라도 수놓을 수 있었다.


지속함, 꾸준함 이런 것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젠 꾸준한 행위가 아닌 꾸준했던 행위이고 밥은 매일 꾸준히 먹고 있으며 1년짜리 회원권은 갱신할 때 확인해 보면 120번 정도의 출석이 찍혀있었다.

근면과 끈기가 현저히 낮으나 꾸준함을 가지고 있다니. 참 웃긴다. 나는 그것들을 간헐적 끈기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이름 붙인 그것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옆 가게에서 꾸준함과 성실함을 반죽해 구워내는 사람이었다. 오븐에서 나온 결과는 비아냥대기가 중요한 삶의 스킬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보기에도 심히 군침 도는 빛깔을 가졌다.


결과나 성과를 바라고 한 일들이 아닌 일도 시간이 켜켜이 쌓이면 어떠한 문장이나 형태로서 일의 연혁을 드러낸다. 투자대비 효율이 나지 않는 상품이 내가 될지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으니, 지금의 내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남들이 다 가진 재료로 특별함을 벼려내는 것은 내가 마술사나 연금술사로 전직하지 않는 이상 이번 생에는 심히 어렵다는 전망의 내용의 광고를 내 마음속 커다란 전광판에다가 냈다.


이제는 더 잘 안다. 아니 원래도 알았다. 도금일지라도 사람들과 멀리, 화면 속에 있다면 진짜 금처럼 보인다는 것을.


1105

나는 진짜 강아지 키우는 게 꿈이다. 인간의 언어로 소통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어떤 느낌일까. 내가 배우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성품 중 하나인 유대감을 깊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볼 뿐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하고 받지 않아야 할 공감을 받고 나면 돌아오는 길의 바닥은 불쾌함으로 만든 보도블록이 깔려있다. 흑역사는 고화질로 저장된다는 우스운 농담처럼 이 길이 왜 이렇게 매끄럽게 깔려있는지.


소통은 이제는 길이 아니라 선이 되어. 만리장성의 끝엔 해변이 있더라고, 해변가 바다를 유유히 걸어서 넘어오려나. 아니면 삼엄한 선의 경비에 모두 적발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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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를 놓친 것들이 거리에만 나가봐도 많다. 봄이 되면 월동용품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공터에 널려있다던지, 소파를 들어내 청소를 해보면 계절감이 없는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던지.

뜻이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들이 그렇게 버려진다. 기민하게 움직인 이들은 이룬다. 내가 생각보다 닫힌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또다시 투영으로 느낀다.

이 글들은 추위가 기별을 보낼 즈음에 쓰이기 시작했으나 득세가 강렬할 때 완성이 됐다. 시기착오적이고 감정은 코스터 위 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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