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2년 넘게 일상을 침범한 코로나19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면서이다. 한편 걱정이 되면서도 참 고마운 일상으로의 복귀이다.
자취생들의 끼니 해결에 최고 간편식은 단연 ‘라면’이다. 라면은 언제 새로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종류도 엄청 많다. 사골 국물을 우려낸 곰탕라면부터 매운맛의 끝판을 보여주는 붉닭볶음면도 있다. 라면의 다양한 진화는 전 세계 우리나라가 유일무이할 듯하다. 먹거리로 선택된 음식은 모두 응용해 버리는 대단한 창의력이다.
미카는 집에 오면 김치 한 종지 놓고 먹더라도 무조건 집밥을 사수한다. 코로나19에 학식다운 학식 한번 못 먹고 졸업하게 됐다. 한정된 종류의 편의점 음식 중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고사하고 흔히 먹는 밑반찬도 매번 사수하기 어려웠단다. 그런 이유에인지 미카는 집에 오면 밥부터 찾는다. 엄마의 고단함 꼬집는 제 아빠 그레고리의 다소 귀여운 핀잔에 미카는 말한다. "이건... 생존 본능으로 봐주셔야 해요."
반면, 라파는 라면 물부터 올린다. 흔치 않은 '완전 기숙형 학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삼시 세 끼가 모두 밥이다. 가끔 잔치국수나 스파게티도 나오지만 영양과 건강을 고려해 균형 잡힌 밥끼니를 반드시 먹인다. 나로선 실로 감사할 뿐이다. 맛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식 끼니를 책임지는 위대한 분들이다. 온 마음 다해 재료 다듬고 조리하는 분들께 감사하게 된다.
집에 오는 날이면 라파는 먹고 싶던 봉지라면을 꼭 사 온다. 편의점에서도 먹을 수 있는 컵라면과 팔팔 물 끓여 먹는 봉지라면은 완전 다르단다. 2년 묵은 내 집표 김장 김치는 상시 대기 필수템이 되었다. 언제 대군들이 들어설지 모르니 라면은 늘 사놓는다. 집에는 서너 종류의 라면이 있다. 식성이 다양해 종류별로 사다 놓는다. 그날 기분에 따라 골라 먹는다. 신김치 한 종지 곁들이면 세상 최고의 음식이라 너스레 떨곤 한다.
일찍 시작한 직장생활에 살짝 익숙해져 갈 때였다. 90년대 말이니 지금처럼 주 52시간은 꿈꾸지 못할 때였다. 토요일은 월 2회 격주휴무를 했다. 2시간 시외버스 거리의 직장에서 매주 금요일이면 버스를 탔다.
처음엔 격주건 아니건 무조건 집에 갔다. 낯선 생활 속 그땐 무조건 엄마가 보고 싶었다. 배냇짓할 때부터 18살까지 떨어져 산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엄마 못 보고 산다는 생각은 한적 없었다. 방학이라 할매 계신 촌에 있을 때도 사나흘 지나면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촌에서는 돌아갈 기약이 있었고 언제든 내가 가고 싶으면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근근이 참았지만 사회생활은 차원이 달랐다.
한 주의 그리움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일상 속늘 걸려 있었다. 오후 6시 근무 마치고 버스를 탄다. 경유지 서너 곳 들러 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시내버스 갈아타고 우리 동네까지 가면 이미 어둑어둑하다. 버스정류장에 딱 내리면 익숙한 고동색 슬리퍼가 보일 때가 있다. 장사에서 일찍 돌아온 아버지는 늦은 귀향을 반기며 무심히 서있었다. 처음엔 여자 혼자 멀리 못 보낸다며 극구 반대했지만 타지에서 돌아오는 딸을 버스정류장 허수아비로 반겨 주었다.
대문 소리가 나면 드르륵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단 한 번 찡그림 없이 반겨 주는 우리 식구들. 제일 먼저 이 번이 벌떡 일어나 마당을 나왔다. 집에 들어서고 나면 그제야 배가 고프다. 씻느라 대야에 물을 받는 동안 이 번은 슬그머니 부엌으로 들어간다. 내가 곤로에 불을 켜던 그 부엌이다. 여드름 남은 얼굴을 비누로 뽀득뽀득 씻고 발 담가 수건으로 얼굴을 두드릴 즈음 라면 냄새가 풍겨온다.
부엌문 사이로 한번, 두 번 얼굴을 내민다. 다 씻었나 말았나를 보면서 계란 하나를 톡 깨 넣는다. 김치란 김치는 한 젓가락씩 다 꺼낸다. 물김치도 국물 없이 한 종지, 정구지김치도 국물 없이 한 종지, 깍두기도 한 종지. 라면 한 그릇에 김치 종지 세 개 얹어 상차림으로 내온다. 깨끗하게 발까지 닦고 나무 마루에 앉는다.
비로소, 기똥차게 맛있는 금요일 밤 라면 열기에 빠져 들었다.
"맛있어. 맛있어. 정말 맛있어!" 를 연발하면 이 번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 수줍은 미소, 20년 넘은 지금까지도 라면 먹을 때마다 떠오른다.
코로나19 오기 전 어느 추석 연휴. 시집 장가 다 간 삼남매가 모처럼 한자리 모여 앉았다. 다들 기름진 명절 음식 먹은 뒤라 끼니 이을 생각들이 없었다.
“얼큰한 라면 한 그릇 먹고 싶다.”
이 번 한마디에 물을 올렸다.
콩나물 한주먹을 데치고, 미나리 반 단 이파리 부분 따로 떼어 놓고 데친다. 당근과 양파를 가늘게 채 썰어 역시 살짝 데쳐 건져 둔다. 물이 팔팔 끓으면 라면수프와 건더기수프까지 넣고 계란 2개를 먼저 깨 넣는다.
노른자터트리지 않고 약불에 서서히 끓여 형태 그대로 익으면 건더기를 싹 건져낸다.
면을 넣고 젓가락으로 면발 집어 올려 공기와 만나도록 못살게 굴어준다. 꼬들꼬들 익은 면을 넓은 대접에 건져 담고 데친 야채를 고명처럼 얹어준다.
국물이 팔팔 끓으면 건져둔 계란을 얹고 국물을 부어낸다.
비주얼만으로는 여느 고급 요리 못지않다.
다행히 이 번은 라면 본연의 맛을 잃을랑 말랑 하는 이 '종합 야채라면'을 맛있게도 먹었다.
종류별로 꺼내 놓은 김치 먹으며 배시시 웃는다.
그 어여쁜 미소를 볼 수 있어서, 그 뜨거웠던 금요일 밤 라면 열기에 다시금 마음이 후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