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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 Oct 17. 2023

우리도 보리차 먹으면 안 돼?

차마 '칡차'라 부를 수 없었던 칡뿌리 달인 물


어스름 해 넘어가는 오후 5시. 구수한 둥굴레차 한잔 마신다. 

물만 마시기에 부담스러울 때 티백 하나 넣으면 꼴깍꼴깍 잘 넘어간다. 커피가 기호 식품이 되었다지만, 맛 좋고 향 좋은 차는 여전히 인기다. 먹을 수 있는 건 다 간편한 티백으로 나온다. 

새삼 그 풍요에 고맙지만 한편 염려도 된다. 법정스님의 수필 ‘먹어서 죽는다’를 보며 오늘 저녁 식탁을 돌아보게 된다. 육식 위주의 요란한 식생활 경계 하고 욕심 내지 않기를 당부한다. 

저만치 놓인 음쓰도 다시 보게 된다.  비건까지는 아니지만 육류를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 늘 마음의 고삐 정도는 스스로 쥐고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요즘 거리를 나서면 100m 이내 편의점이 대부분 다 있다. 소량의 작고 다양한 물건들이 경쟁하듯 진열돼 있다. 가장 만만하게 집어 드는 것이 작은 생수병이다. 어딜 가든 물은 살 수 있다. 휴대도 편하고 원하면 살 수 있는 생수는 본래 사 먹는 게 아니었다. 20년 전만 해도 어딜 가든 물은 마실 수 있었다. 




보통 정수기가 있거나 생수 배달로 식수를 해결하지만, 수돗물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식수가 되고 있다. 

물을 끓이는 것이 하루 일과 중 하나 일 때가 있었다.

맹물 끓여 먹기엔 밍밍하니 옥수수 알갱이나 보리를 볶아 차로 마셨다. 보리차는 배탈 났을 때 수분 보충하기에 정말 딱이다. 적당히 잘 볶아진 보리차를 제법 큰 주전자에 한 줌 넣어 끓인다. 팔팔팔 연기를 내며 끓는 주전자 뚜껑을 열고 한 김 내 보낸다. 빨리 식히려 세숫대야 찬물에 주전자를 담가 둔다. 적당히 식은 보리차는 냉장고에 넣어 시원한 음료로 쓴다. 주전자를 담가 뒀던 세숫대야는 따듯한 온수로 세숫물이 되기도 했다. 한여름 타는 냉장고 속 보리차를 꺼내 놓으면 송골송골 땀처럼 금세 물이 맺힌다. 벌컥벌컥 한잔 마시고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산에 벌목 일 거들러 간 아버지는 또 뭔가를 한 자루 들고 왔다.  나무뿌리껍질 같은데 양이 많다.  또 향은 얼마나 좋은지 자루 주변을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흙을 털고 씻은 후 물기 털어 작두에 올렸다. 설에 먹는 떡국 떡을 썰거나 시래기 대를 썰 때 쓰는 작두인데 식재료들을 썰고 다듬는 게 요긴하게 쓰인다. 잘게 잘게 잘린 나무뿌리들은 빛 좋을 때 일광욕을 즐긴다. 꾸들꾸들 말려지면 한 줌 들고 와 큰 주전자에 넣어 끓인다. 말린 칡뿌리였다.




에스프레소는 커피를 곱게 갈아 압축한 원두커피 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 통과시켜 뽑는다. 커피의 쓴 맛과 진한 맛을 경험하기에 손색이 없다. 나 역시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쓴맛으로만 치자면 끓음과 동시에 시커먼 색으로 커피와 견줄 바 없는 칡뿌리 달인 물도 한몫한다. 커피가 고소함과 쓴맛을 동시에 기분 좋은 쓴맛을 낸다면 칡은 그냥 쓰기면 했다. 이게 전부였다.

특히 예닐곱에서 열서넛 된 어린이 입맛에 꼴깍꼴깍 넘어갈 수가 없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진실의 미간이 깊은 골짜기를 만든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가 훅 뱉어내게 된다.

매번 볶는 보리차 편하기도 하다. 말린 칡뿌리 한두 조각이면 금세 물색깔은 짙어진다. 몸에 좋으니 마시라는 말은 밑도 끝도 없이 찾아오는 ‘쓴맛’과 타협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돗물을 그냥 마시기에는 부담이 크다. 


무더운 여름날, 실컷 뛰어놀다 들어와 마시는 물 한잔은 얼마나 청량한가. 칡뿌리 달인 물은 어느새 어린이 기피 대상 음료가 되어 버렸고, 일부러 친구집에 물을 마시러 갔다. 그럼에도 그 시커먼 칡뿌리 달인 물은 진하게 우리 집 냉장고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도 보리차 먹으면 안 돼?”


참다못해 수돗물만 마시던 이 번은 울먹이며 말했다. 살살 달래 놓고 작은 주전자에 보리차 한 숟가락 넣고 이 번 전용 식수를 만들었다. 아버지 불호령 떨어질게 뻔했기 때문에 냉장고에는 넣지 못했다.

어른은 건강에 좋은 것이니 그냥 '코' 잡고 마셔 보라 권한다. 하지만 타협 안 된 그 쓴맛은 '코' 잡고 마실 일이 아니었다.




커피는 쓰고 칡은 더 쓰다.

세월의 흔적만큼 인생의 쓴맛, 커피의 쓴맛, 칡의 쓴맛. 이제는 그 각각의 매력을 알 것도 같다. 커피의 쓴 맛만큼이나 그 강렬함에서 오는 칡의 쓴 매력을 먼저 느꼈다면 어땠을까? 많이 마신 만큼 건강 체질이 돼 있을까?


특이성과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건 어쩌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선입견 갖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같은 쓴 맛이지만, 이건 좋고 저건 나쁜 것이 아니라 이건 이런 것이고, 저건 저런 것이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극단적으로 나쁠게 별로 없다. 


요즘은 칡차도 간편한 티백이나 과립으로 시중에 판다. 그래도 둥굴레차나 옥수수수염차만큼은 인기가 없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니까… 칡차 한잔 하기 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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