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내려와도 최고 인기를 자랑하며 성경에도 등장해 신비로움까지 입었다.
요즘은 껍질 얇고 당도 높은 스테비아 사과부터 계절에 상관없이 척척 등장하는 통에 신비주의를 많이 벗었다.
껍질에 영양분 많다는 사실에 깨끗이 씻어 그대로 먹기도 하지만 나는 사과 껍질을 잘 먹지 못한다. 제법 단단한 빵게껍질도 우적우적 씹어 먹지만 유독 사과는 껍질째 먹고 나면 잘 체한다. 소화제 먹고 등을 두드려도 쉬이 내려가지 않아 고생을 한다.
먹을 버릇하지 않아 그렇다는 어른들 말씀이 딱 맞다. 사과는 꼭 껍질 깎아 먹어야 해서 그런가 보다.
대구에서는 제일 큰 장은 단연 ‘서문시장’이다. 영천, 하양, 포항 등 대구 근교 사람들은 장날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포목, 그릇, 어물, 육고기 등 지붕 없는 마트로 원스텝 쇼핑이 가능한 종합 시장이었다. 다양한 물건이 싸게 거래되기에 늘 이 큰 장에서 장을 봤다.
한 더위 가신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묵직한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 뒤에 꽁꽁 싸매인 종이 포대 하나가 평상에 올려졌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종이사료 포대였다. 입구는 빨강끈으로 꽁꽁 묶여 있었고 포대 아래 각진 모서리는 헐어서 곧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부엌에 가서 작은 칼이랑 소쿠리 가져오너라.”
작은 과도와 소쿠리를 들고 평상에 가니 입구 봉인 해제된 사료포대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꺼내 든 첫 번째 사과 한 알부터 시커멓게 상한 부분이 보인다. 과도를 들고 꺼먼 상처 가장자리를 푹 찌른다. 칼 끝이 성한 부분에 닿았다 싶어지면 사과를 살살살 돌려 도려내기 시작한다.
성한 부분이 반이상은 남아 있었지만 사과는 여기저기 난 상처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종종 벌레 한 마리씩 기어 나온 걸 본 이후, 이번과 삼번은 사과를 먹으려 하지 않았다. 마침 대문 밖 아이들이 왁자지껄 지나갔다.
"나가 놀다 와. 얼른."
썩은 부분을 도려낸 사과는 진정 못난이 사과가 되어 있었다. 껍질을 깎아 내고 최대한 도려낸 부분을 피해 이등변삼각형 모양이 나오도록 깎아 낸다. 마지막 남는 부분은 주로 정삼각형이 되어 한입에 쏙 들어가 먹기에 좋다. 흙구덩이 속 놀다 온 때꼬장 손의 이번, 삼번을 수돗가로 쫒는다. 이등변삼각형 사과는 먹기 좋은 간식거리가 되어 씹을 때마다 싱그러운 소리를 내놓는다.
사각사각 아사삭 거리는 소리에 씹을 때마다 과즙이 배어 나온다. 버린 부분이 아쉬워인지, 본디 작은 사과였는지 하얀 속살 사과는 참으로 헤프다.
“누나야, 더 줘.”
먹돌이 삼번이 쩝쩝 입맛 다시며 작고 통통한 손을 내민다.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부분을 아주 얇게 다시 도려낸다. 살을 너무 많이 도려내어 껍질이라도 최대한 얇게 깎아야 먹을 게 있다.
왼쪽 손끝에 힘을 주고 단단히 잡는다. 오른손 엄지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 칼이 지날 때마다 살살 밀어가며 껍질을 깎아 낸다. 이등변삼각형의 도형감각을 발휘할 때다. 척척 접시 위를 채우는 사과를 보며 먹돌이 삼번은 싱긋싱긋 웃었다. 평상 아래로 늘어트린 다리를 흔들어 댄다. 한 자리 앉아 네댓 개 더 먹고서야 뒤집어진 슬리퍼를 발가락으로 집어 신고 또 대문 밖을 나선다.
사과 한 포대를 먹어 치우는데 채 보름이 걸리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상한 부분을 도려내고 더 썩어 들어가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한다. 물에 담가 뽀득뽀득 씻을 수 없었던 못난이 사과였기에 나에게 사과는 꼭 깎아 먹어야 하는 과일이 되었다.
화창한 주말이 다시 돌아왔다. 모처럼 시장 구경에 따라 나서 여기저기 기웃댔다. 양은 대접에 국수 한 뭉터기 척 넣고 미지근한 멸치 육수 부어주는 물국수도 한 그릇 얻어먹었다. 가장 마지막에 들른 곳이 청과상이었다. 나무궤짝에는 어여쁜 사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본 못난이 사과들은 분명히 아니었다. 궤짝을 쌓아 두는 과일상 한편에 기역자로 허리 굽은 할머니가 말했다.
“거기 비료포대 하나 들고 오고. 양껏 담아서 3천원.”
어지럽게 널린 비료포대 중 찢어지지 않은 것을 고르는 것부터가 우리 사과를 데려오는 첫 여정이었다. 제일 쓸만한 포대를 골라 한데 부어진 사과더미로 간다. 허연 곰팡이가 든 썩은 사과를 허리 굽은 할머니가 연신 건져 냈다. 내 작은 손이 작은 흠 먹은 사과를 골라내는데 보태졌다. 곧 간질간질하다 까칠하게 손등을 타고 오르는 벌레를 보곤 기겁을 했다. 놀라서 떨어트린 사과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허리 펴고 선 할머니가 호통을 쳤다.
“흠다리 사과라고 막 던져도 된다드나. 먹는 걸 누가 이리 한다든!”
“벌거지 보고 놀래 그렇지요.”
어른이 본 시선에 어른답게 대답했고 가늘게 뜬 할머니 눈은 다시 사과에게로 돌아갔다.
묵직한 종이포대 속 사과들은 아버지 자전거에 실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내 손으로 건져낸 금사과. 여태껏 한 포대 담기 위해 애쓴 그 정성을 우리가 먹고 있었다.
모양이 울퉁불퉁한 사과를 '못난이 사과'라고들 한다. 썩어 흠있는 사과는 팔지도 않는다. 그나마 안 썩혀 버리면 다행일만큼 뭐든 대량으로 판다. 올여름엔 아오리사과를 양껏 먹었다. 깨끗이 껍질째 먹는 사과라고 했지만 난 내 기술적 힘을 빌려 최대한 얇게 깎아 낸 껍질 속 사과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