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BJ Jun 06. 2021

50대 취미요? 아이패드 드로잉입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부러웠다.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지만 따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요즘이야 미술학원도 많지만 나 어릴 적엔, 더군다나 시골이라 학원이라는 개념 자체도 몰랐으니까.

학교 때는 전공할 거 아니라면 굳이 따로 그림을 배우는 사람이 드물었다.

중학교 시절 교내 사생대회날에 그림을 잘 그려내고 싶은 욕심에 두 시간이 넘도록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다 결국 밑그림도 채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제출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딸이 ‘프로 크리에이트’라는 앱을 설치해줬다.

돈을 주고 그런 걸 왜 사냐며 볼멘소리를 했던 내가 되려 미안해질 만큼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


처음엔 사용방법을 몰라서, 사실 최신 기기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과 부담감으로 겨우 꽃그림 정도, 아니면 어렸을 때 만화책에 나온 여자 주인공 따라 그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끄적거리는 정도였는데, 유튜브에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를 알려주는 채널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쩜 그렇게도 친절하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던지. 정말 감사하다.


처음엔 라인드로잉을 배웠다. 사진을 불러와서 그 위에 선으로 형태를 따라 그리는 단순한 작업인데 완성해 놓고 보니 내 눈엔 제법 그럴싸해 보여서 가족들에게 자랑했다.

“정말로 엄마가 그린 거 맞아?”

내게 다 들킬 정도로 심하게 오버를 하며 엄지 척! 을 해 주는 바람에 어린아이 마냥 우쭐해서 가족사진은 물론이고 남편, 아들, 딸, 조카, 주변 사람들까지도 내 그림 속의 모델이 되었다.

나중에 보니 선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 비뚤비뚤 딱 유치원생 그림 수준인걸... 가족들의 착한 거짓말(?)과 응원에 힘입어 유튜브를 보며 프로 크리에이트 활용법을 배웠다.


처음 그려본 라인드로잉


노트에 적어가며 공부도 하고, 따라 그려보기를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그림이 그림다워지는 게 보였다.

앨범을 뒤져 배경이 예쁘고 그리기가 좀 수월하겠다 싶은 사진을 스케치하고 색을 채워 나갔다.

창의적으로 내 그림을 그리는 건 어려운데 그나마 사진을 보며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었다.


‘내가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던가?’


나 자신도 의아할 만큼 아이패드를 잡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몇 시간이 지나도록 화면만 보다가 일어서면 눈앞의 사물이 침침해질 정도로 몰입을 하게 된다.

처음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시작할 때엔 <사진 불러오기>도 어려워 유튜브 화면을 멈추고 다시 보기를 반복해야 했다.

나름대로 똑같이 따라 하느라 했는데 내 화면은 자꾸 다른 게 나오고, 갑자기 펜이 사라져 버리고, 팔레트가 다 보였다가 뭘 건드렸는지도 모르는데 없어지고... 여러 번 낭패를 겪었다.

한 번은 혼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애플 펜슬이 작동되지 않았다. 화면을 바꾸고 다시 그려 봐도 아예 그려지지 않고 먹통이었다. ‘ 아, 결국 또 내가 고장 냈구나.’ (우리 집에서 내가 뭘 만지기만 하면 고장이 잘 난다고 종종 놀림을 받곤 한다)  당황스러워 유튜브 채널을 여기저기 찾아봐도 정보들은 너무 많은데 내가 꼭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지 못해 결국 딸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펜슬 충천하면 돼.”

“그렇게 간단한 거였다고? 그래도 고장 아닌 게 다행이다.”

딸은 애플 펜슬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필요할 때마다 내 것을 가져다 쓴다.

자신의 아이패드에 펜슬을 끼워 충전하는 걸 본 적이 있기에 때마침 내 아이패드는 충전 중이라 딸아이 방에 가서 딸 아이패드를 슬쩍 빌려 애플 펜슬 뒤꽁무니를 끼웠다.

몇 분만 충전해도 된다는 얘길 들었던 터라 빨리 그리고 싶은 마음에 금방 가져와서 써보니 ‘어라! 왜 안되지?’ 보물 찾기에서 한 개도 못 찾은 아이처럼 허탈함이 몰려왔다.

조금만 더 색칠하면 완성인데... 아이들이 올 때까지 가다리는 수밖에... 집에 돌아온 딸한테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무래도 펜슬이 망가졌나 봐. 충전을 했는데도 안돼.”

“어? 충전되는데!”

“왜 난 안됐지?”  

“아무 데나 무조건 끼우면 되는 게 아냐. 이렇게 아이패드를 켜고 충전해야 해.”


그날 이후로 나는 늘 딸아이 아이패드에다 펜슬을 충전하곤 했다.

매번 딸 방에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그 정도의 불편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어차피 내 것은 오랜 시간 그리다 보니 배터리가 빨리 닳아 아예 선을 꽂은 상태로 사용한다.

그보다는 사실, 딸 아이패드로만 펜슬 충전이 되는 줄 알았다.

애초 구입할 때 그렇게 설정되어 있겠거니 짐작했었고 물어봐야지 했는데 그 순간이 아니면 까먹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펜슬 충전하려고 보니 딸 아이패드가 없었다.

‘회사에 가지고 갔나? 진즉 충전해둘걸.’ 너무 아쉬워 속상하기까지 했다.

꼭 그리고 싶은 그림이 머릿속에 맴돌아 도저히 딸이 퇴근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유튜브 여기저기 찾다 보니 <펜슬 없이 손가락으로 그리기>라는 채널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궁하면 통한다더니’ 그게 뭐라고 기쁘기까지 했다.

손가락으로 그리는 건 펜보다 디테일한 부분이 잘 안되긴 했지만 새로운 경험이라 나름 재미있었다.

자초지종 얘기를 듣고는 딸이 깔깔대며 웃었다.

그 덕분에 이제는 충전하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기본, 그랬다. 그 당연한 기본을 나는 정말 몰랐다.

요즘 세대들한테는 너무 당연해서 가르침을 받을 필요도 없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

“우리 나이가 그래~ 그저 웃어야지ㅋㅋㅋ”


이렇게 해서 아이패드 드로잉은 내 취미가 되었고 그 덕분에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회에서 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나?

갑자기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채워 가야 할지?

취미생활로 뭘 해 볼까? 고민하고 있는 50 대님들께 꼭 추천해 드리고 싶다.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기>

소소한 일상들을 사진에 담고, 그 사진을 그림에 담다 보면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몰입의 재미를 느끼며, 심심한 일상에 맛깔난 양념을 더해 우리 모두의 남은 삶이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 봄에 그린 벚꽃과 그림자




이전 01화 55세 생일선물로 '아이패드'를 받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