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을 나도 자주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안 하고 살았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체가 먼저 신호를 보낸다.
언제부턴가 잘 보이지 않아 설명서 읽기가 부담스럽고, 읽던 책도 오래 보기가 어렵게 되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도 눈이 따가워 눈물이 나고, 거기다 뭐 좀 해볼라치면 회원 가입하라는 메시지가 뜨고, 시키는 대로 잘 따라 나가다가도 중간에 한번 막히면 그냥 닫아버리게 된다.
공항이나... 공공장소의 키오스크 앞에 서면 도우미가 먼저 다가와 친절을 베푼다. 버벅거리면서도 스스로 도전해 봐야지 하고 큰 맘먹고 기계 앞에 서면 솔직히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기에 타인의 친절에 고마워하며 의존하게 된다. 요즘 세상과 격차가 더 벌어지는 느낌. 나만 저 뒤로 밀려나는 기분. 소외감........
이래서 나이 들면 우울증이 오는 모양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갖고 싶은 게 뭔지? 내가 뭘 원하는지? 나도 나를 모르게 될 때, 그 틈을 타고 무기력함이 마구 밀려온다.
“엄마. 이 가방 어때 보여?. 한정판이래.”
“이 옷 어때? 괜찮지.”
“이건 꼭 먹어봐야 돼.” 하고 싶은 게 많은 딸이 부럽다.
매사에 열정이 많다는 건 젊다는 반증일 테니까.
어떤 책에서 ‘나이가 들면 뭔가 ~싶은 게 없어진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된다.
막상 눈앞에 있으면 싫지도 않으면서 딱 꼬집어 뭐가 좋은지, 뭘 하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가 분명치 않아 그저 누가 선택해 주면 그게 오히려 편하다.
그러다 보니 매사가 귀찮아지고,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급기야 자신감도 떨어지게 된다.
명품 가방, 명품 옷, 근사한 곳에서의 식사, 호화스러운 여행... 남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비교하고, 따라 하고, 시샘도 하고, 때론 자랑도 하며 사는 게 재미도 있고, 또 어떨 때엔 남들이 부러워 괜히 울적해지기도 했던 그때는 그래도 열정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행복한 인생과 꼭 비례하지는 않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아니, 합리화하면서 체념할 줄 아는 법을 오랜 경험으로 알아버렸기에 어쩌면 더 편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쇼핑하는걸 정말 좋아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집안 꾸미는 것도 좋아했고, 밖에서 먹어본 요리를 집에 와서 흉내 내보는 것도 좋아했고, 사람들과 만나 수다 떨며 노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엄마. 옷 사줄까? 가방 사줄까? 뭐 먹고 싶어?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야.”
혹시라도 제 엄마가 방구석 아지매로 정체될까 봐 고맙게도 이것저것 제안을 한다.
멋 부리고 딱히 나갈 곳이 없는데 어쩌지...
그러던 차에 생일선물로 ‘아이패드’를 받았다.
“엄마. 이거 봐봐. 이 펜으로 이런 그림을 그릴 수도 있어. 붓도 고를 수 있고, 색깔도 맘대로 고르면 돼. 신기하지?” 라며 다른 사람들이 아이패드로 그려놓은 그림을 보여준다.
한번 해보라 길래 펜으로 슥슥 그려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데, 혹시라도 딸아이 것을 고장 내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얼른 덮었었다.
“이제 이거 엄마 거 나까 맘대로 써도 돼.”
“엄마도 색다른 취미를 가져봐.” 아들. 딸이 합동해서 준비했단다.
그렇게 50 중반을 넘긴 나이에 나는 아이패드와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