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필라레스 라 풀가

24.09.28_Pilares La Pulga

by 리리송

위치 : 멕시코시티 (Chimalpopoca, Cda. Fray Servando esquina, Tránsito, 06820, CDMX)

설계 : TAX

준공 : 2021 (설계기간 : 2019-2020)

연면적 : 1,241 sqm

용도 : 문화센터 (문화 및 집회시설)


필라레스 라 풀가 중앙 홀 (출처 : Archdaily)

회사 작품집을 보다가 무척 인상적인 건물을 발견하였는데, 마침 멕시코시티에 지어진 건물이라 방문하였다.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반원의 반복을 통해 형성된 강력한 공간이미지가 건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필라레스 라 풀가 문화센터는 피노 수아레즈(Pino Suárez) 역에서 0.4km 떨어져 있기에 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중심가와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기에 별생각 없이 이동하였는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스산했다. 주변에 쓰레기도 많고, 주변에 폐허 고층건물도 있으니 긴장한 채로 건물로 이동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위험한 동네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필라레스 라 풀가 가는길 01 / 02
필라레스 라 풀가 가는 길 03 / 입구
필라레스 라 풀가의 첫 조우 (서측면의 반원형 창)

멀리서 필라레스 라 풀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첫인상은 사각형 건물에 엘리베이터 매스가 더해진 일반적인 건물이었다. 도면에서는 반원의 패턴이 입면에도 반복되는데, 실제로는 서측면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담에 가려져서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건물 한 바퀴를 돌면서 먼저 건물보다 오염에 관심이 갔다. 특히 북측면 오염이 심각했는데, 어떤 이유일까 궁금해졌다. 한쪽 면에만 오염이 심한 것을 보면 시공상의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층 입면은 칼라치의 시그니쳐인 세로로 긴 창이 반복적으로 배치되며 희미하게나마 건축가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입면 _ 서측 / 동측
입면 _ 북측 / 남측

건물을 둘러보며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건축의 배치가 양쪽의 도로에 최대한 접한 채로 계획되었다는 점이었다. 도로의 반대편인 동측과 남측으로 꽤 여유 있는 야외공간이 계획되어 있었다. 건물을 통해 도로에서 오는 소음이나 시각을 차단하고 안쪽으로 위요감 있는 공간을 계획한 것 같았다. 답사한 날에는 어떤 활동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텅 비어있었지만, 문화활동이 일어나는 날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는 마당이지 않을까 추측해 보았다.

야외 공간 동측 / 남측

이후 정문을 지나 마당을 통해 건물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다. 타워 41에서도 느꼈듯이, 칼라치의 머릿속에서 도시와 건물 사이에는 여러 레이어가 있다고 느껴졌다. 야외에서 바로 내부로 진입하지 않고, 외부에서 내부로 단계를 거쳐 점차적으로 내부로 진입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마당을 지나면서 건물 입면에 반복된 반원형을 볼 수 있었다.

정문 / 반원형 창이 반복된 입면

정문 진입 후 90도 꺾어 반원형 입구를 지나 건물 내부로 진입하였다. 내부로 카운터를 지나니 작품집에서 보았던, 반원이 여러 레이어로 중첩된 핵심 공간이 나타났다. 반원형태로 뚫린 콘크리트는 구조 역할을 담당하는 동시에 레이어를 통한 깊이감을 주며 독특한 홀 공간을 구성하였다. 이 공간은 칼라치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건물에서 구조는 건물을 지지하는 것을 넘어서 공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 공간은 마치 중세 건물의 아치가 중첩되어 있는 모습과 유사하지만, 콘크리트 재료로 지어졌다는 점에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콘크리트가 보역할을 담당하여 벽돌건물과 달리 그 위쪽으로 천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건물을 지탱하고, 독특한 홀을 만들어내며 평면 분할을 하는 데에도 활용하고 있는 다층적인 구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카운터 뒷모습 / 중앙 홀 01
중앙 홀 02

한동안 중앙 홀에 홀려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주변으로 관심을 돌렸다. 반원이 뚫려있는 벽의 기둥 부분은 공간을 분할하는 파티션이기도 했다. 그리고 각 모듈 공간은 반원 창이 계획되었다. 정문을 통해 들어올 때 보았던, 스치듯 지나친 마당은 내부공간과 연계되어 공간 확장이 가능한 가변적인 외부 공간이었다. 처음 진입하는 과정에서 외부 담이 반원형 입면을 가리고 있어서 아쉽다고 했지만, 내부 공간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며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건축가의 의도대로 각 모듈 공간은 여러 활동이 이루어지는 강의실이었다. 방문할 당시에 그래픽 디자인, 요리 수업과 바느질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평일에는 어린이를 위한 문화활동이 많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독립 기념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들이 만든 종이 접기와 바느질 수업의 창작물이 슬라브와 벽 이곳저곳에 붙어있었다. 건축가가 의도한 대로 유지되는 순수한 공간을 보는 것도 좋지만, 건물이 그 용도에 맞게 잘 활용되고 있는 모습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모듈 공간마다 위치한 반원 창 / 철골계단
2층에서 본 중앙 홀

그리고 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계단이었다. 이는 설계를 담당한 직원의 이야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건물에서 계단을 관철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고 말해주었다. 높이 3m가 넘는 계단에 참을 만들지 않기 위하여 허가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높이 3m 이상인 계단에 1.2m 폭의 참을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고, 멕시코는 2.7m마다 참을 만들어야 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건축가는 2층짜리 건물에 참이 있는 계단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꽤 힘든 허가과정을 보냈다고 한다. 디자인적인 관점에서 참이 없는 것이 큰 변화일까라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작은 요소의 디자인까지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은 무척 인상 깊었다. 그리고 건축가의 의도에 따라 법규가 유동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도 꽤나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

참 없이 계획된 철골 계단 / 2층의 모듈 공간

2층에 올라가니 전벽돌로 이루어진 원형 벽이 눈에 띄었다. 건물 내부공간은 모두 열려있는 오픈 평면이다 보니 화장실이나 창고 같이 닫힌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원형으로 벽돌을 쌓아 기계 및 전기실, 화장실, 창고 등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중앙 홀에서 보았을 때 전벽돌과 철골 계단 및 레일이 유사한 색으로 통일감이 느껴졌다. 검은색과 회색 콘크리트의 대비를 통해 보조공간(Servant Space)과 주공간(Served Space)의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다만 반사가 일어나지 않는 매트한 벽돌로 디자인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다.

원형 화장실 / 원형 기계실 입구

그리고 바스콘셀로스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필라레스 라 풀가는 천창으로 인하여 낮에는 천장조명이 필요 없었다. (계획된 조명은 해가 지고 나서 사용한다) 중앙과 양쪽에 길게 뚫려있는 천창으로 인해 내부 공간이 밝았다. 건물을 관리하시는 분은 해가질 때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장관이라고 하며 천창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관리자분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노을 진 빛은 반원 공간을 한층 더 부각하고, 공간 전체를 노을에 물들게 만들어주었다.

중앙 천창 / 양쪽 천창
2층에서 본 중앙 홀

건물의 전체적인 요소를 어느 정도 살펴보고 나서, 건물 곳곳에 흩어져있는 칼라치의 시그니쳐 요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철골 계단, 레일, 천장 마감, 2층의 세로로 긴 창은 다른 여러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요소였다. 건축가가 설계하는 과정에서 핵심요소는 그 특수성을 고려하여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하지만 건물의 모든 요소를 전부 새롭게 만드는 것은 비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그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칼라치는 핵심요소에 새로운 디자인과 디테일을 적용하지만 그 이외 요소는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디자인과 경제성 혹은 정체성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칼라치가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천장 디자인 01 / 02 (특히 반원이 핵심 디자인 요소인 이 건물에 잘 어울림)

그렇게 1층과 2층을 돌아보고, 외부 계단을 따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정원이 계획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과 달리 텅 빈 공간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은 천창이 계획되어 있는 부분이 꽤 높이 디자인되어 가드레일 및 파라펫 역할도 담당하고 있었다. 역시나 건축 요소의 디자인이 개별적으로 고려되지 않고 통합되어 다층적인 디자인을 제안하는 상상력이 칼라치의 가장 독창적인 면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바깥쪽은 건물 외벽을 따라 수직으로 서있지만, 안쪽은 사선 형태로 디자인되어서인지 물때가 아주 많이 껴있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처리해야 했는지 궁금해지는 지점이었다. 이후 특별한 점이 없어서 간단하게 옥상을 돌아보고 다시 1층으로 이동하였다.

외부 계단 / 시그니처 캐노피
파라펫이자 천장 디자인
천창의 유리블록 확대 / 중앙 천창부
옥상 배수구 / 경계부 벽돌 쌓기 디테일

마지막으로 1층 입구 옆에 문을 열고 나가면 반원형 평면의 정원이 계획되어 있다. 문화센터에서 수업을 듣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 나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문을 닫으면 벽으로 둘러싸여 식물과 하늘만 마주하는 공간이다. 칼라치의 건물에서 옥상 정원이 없다 보니 의구심이 들었는데, 이곳에 작게나마 정원을 만들어놓았다. 역시나 그에게 건축과 조경(정원)은 뗄 수 없는 요소인 것 같았다.

정원 입구 / 정원 내부
정원에서 건물을 본 모습 01 / 02

이렇게 건물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콘셉트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공부하며 이해한 콘셉트는 ‘(형이상학적인) 논리적 체계나 질서를 통한 이야기 구성’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멕시코에서 콘셉트는 ‘건축 전반에 나타나는 통일된 요소’라는 확장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루이스 바라간은 색을 활용하여 건물 전체의 통일감을 부여하고, 칼라치는 형태적 요소(반원)를 통해 평면, 입면, 단면을 통일감 있게 디자인하였다. 다만 '통일감'으로 콘셉트를 이해한다면 결과물로서 건물을 이해할 수 있지만, 건축을 구성하는 방법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여전히 콘셉트라는 단어는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의미를 반추하고 확장했다는 측면에서 뜻깊은 답사였다.



<참고 도면 및 자료들>

평면도 / 입면도 / 단면도 (출처 : Archdaily)



#세줄요약

- 다층적인 구조의 역할

- 핵심 디자인과 시그니처 디자인의 균형

- 주공간과 보조공간의 시각적 분리

keyword
이전 13화타워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