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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르마 27

24.10.06_Reforma 27

by 리리송

위치 : 멕시코시티 (Av. P.º de la Reforma 27, Tabacalera, Cuauhtémoc, 01234, CDMX)

설계 : TAX

준공 : 2011 (설계기간 : 2007-2009)

연면적 : 51,200 sqm

용도 : 공동주택 (아파트)


레포르마 27 전면 (출처 : TAX)

멕시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레포르마 27이다. TAX에서 설계를 하였고, 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건물의 독특한 색감과 미세하게 기울어진 파사드, 고층 건물임에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질감은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기에 일주일간 아파트를 렌트하여 건물을 둘러볼 수 있었다.

레포르마 27 정원 스케치 (출처 : TAX)

레포르마 27은 플라자 데 라 레퍼블리카(Plaza de la República) 역에서 0.8km 떨어져 있기에 10분 정도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 레포르마는 멕시코시티의 가장 중심이 되는 도로이고, 이를 따라 고층빌딩이 줄지어서 있다. 서울의 테헤란로와 같이 수많은 대기업 본사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저층부와 안쪽 블록은 다양한 상점과 맛집이 위치하며 구경거리가 많아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레포르마 거리 (주말 오전에는 자전거도로) / 멀리서 보이는 레포르마27

레포르마 27은 주변에 비해 크지 않지만, 아주 강렬한 색감으로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건물이 지어질 당시에는 주변에서 가장 높았으나, 이후 반대편에 더 높은 고층 건물이 지어졌다) 이제껏 본 적 없는 짙은 주황색의 색감은 그 자체로 독특하였고, 미묘하게 기울어진 각도로 인하여 각 층마다 다르게 형성된 깊이감은 다층적인 레이어를 만들고 있었다.

레포르마 27 전경
레포르마 27 외관 / 저녁에 본 측면뷰

먼저 건물의 외관을 둘러보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나 독특한 색이었다. 건물에 색을 사용하면 유치해지기 마련인데, 레포르마 27은 그 반대였다. 그 이유는 낮은 채도와 명도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보았다. 높은 채도와 명도의 색상은 밝고 활기찬 느낌이지만, 가벼워 보이고 주변과 동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낮은 채도와 명도의 색을 매시브 한 콘크리트에 사용하여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었다. 독특한 색으로 인하여 시선을 사로잡고 있지만, 낮은 채도와 명도를 택하여 주변과 극단적으로 대비되지 않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그다음으로 테라스로 인해 형성되는 깊이감이었다. 건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거대한 삼차원 물체라는 것이다. 삼차원 물체를 만들면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그림자는 건축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핵심 가로에 위치한 건물은 내부 공간만큼이나 가로의 구성 요소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에 파사드 디자인이 중요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레포르마 27은 파사드의 삼차원 깊이감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건물이었다. 약간 기울어진 파사드는 형태적으로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동시에 각 층마다 다른 깊이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를 통해 단순한 형태의 건물에 꽤 다층적인 레이어를 디자인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약 0.9-1.8M 깊이로 파인 테라스가 만들어내는 깊이감은 건축의 본질적인 3차원의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M 정도 튀어나온 테라스가 파사드 디자인의 정점이었다. 반복적인 파사드에 아주 작은 왜곡을 주어 균형을 깨버렸다. 이런 디자인 왜곡은 그가 계획한 고층건물에서 자주 계획되고, 온전히 그의 감각에서 이루어지는 무척 흥미로운 요소였다. 그리고 칼라치는 현재 그 위층에 거주하며,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긴 테라스에 화분을 배치한 작은 공중정원을 소유한 아파트로 활용하고 있다.

건물 입구 01 / 02

건물의 외관을 둘러보고 나서 내부로 이동하였다. 내부 공간은 잘 알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약간의 기대감을 가졌다. 먼저 거대한 사다리꼴 구조를 지나 2M 폭의 전이공간을 통과하고 나서야 로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열주가 입구이자 동시에 내부와 외부를 분명하게 경계 짓고 있었다. 짧은 전이 공간이지만 내부로 진입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후 두꺼운 나무 문을 지나 내부로 들어오니 목재 마감으로 감싸진 로비가 나타났다. 로비에는 리셉션과 라운지가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호텔의 화려한 로비와 달리 레포르마 27의 로비는 상대적으로 수수했다. 그리고 이곳에 사용된 마감재료는 내부 주택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되었다.

전이공간 / 로비_리셉션
로비_라운지 01 / 02 / 1층 코어부 입구

이후 숙소로 들어가기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18층으로 이동하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마주친 코어부 공간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중심코어형으로 계획된 고층건물에서 코어부는 빛이 들어오지 않은, 기능에 충실한 공간으로 계획된다. 하지만 레포르마 27의 코어부는 양 측면으로 파여있어 자연광이 안쪽까지 투과하고, 바깥 풍경은 마치 전망대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독특한 코어 계획에 이어 바깥에는 옥외 피난계단을 설치하여 법규까지 자연스럽게 해결하였다. (외부 계단은 역시나 칼라치의 시그니처 형태이고, 재료만 스테인리스로 디자인되었다.) 물론 아파트 용도이기에 오피스와는 다른 코어부 계획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기능적인 공간으로 이해되는 코어부를 전망대로 탈바꿈하였다는 점에서 칼라치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1층 코어부 / 18층 코어부
코어에서 바깥이 보이는 풍경
코어부 / 옥외 피난계단 (시그니처 디자인) / 숙소 입구

밝은 코어를 지나 드디어 숙소로 진입하였다. 외부 파사드에서 나타나듯이 건물의 구조는 모듈화 되어있기에 내부 평면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었다. 장방형 모듈 2-6개가 다양하게 조합되며 총 10가지 유형의 집이 계획되었는데, 내가 예약한 숙소는 두 모듈 규모에 계획된 집이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내부 인테리어는 단순했다. 중앙 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공용공간 (부엌, 식사공간, 거실), 오른쪽에는 사적공간 (침실, 옷장, 화장실) 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테리어에 사용된 재료는 목재와 트래버틴이 대부분이었고, 전체가 흰색 벽지로 마감되었다. 또한 주황색 파사드 색상이 어디에서 마무리되는지가 궁금했는데, 외부에 접하는 면까지만 색이 칠해며 내외부의 경계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내부를 보고 나서 건물 전체 구조까지 이해할 수 있었다. 파사드와 연결하여 생각해 보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된 전후면의 콘크리트 기둥(수직 파사드)과 각 층의 슬라브(수평 파사드)가 모듈화 된 파사드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심) 코어의 내력벽과 기둥 사이를 연결하는 철골보로 인하여 장스펜의 내부 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즉, 라멘구조로 인하여 자유로운 평면구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3차원 격자 구조(라멘 구조)가 파사드에 나타나며 힘의 이동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늘 그렇듯 칼라치가 설계한 건물에서 구조는 지지하는 역할과 동시에 디자인의 핵심 요소였던 것이다.

공용 공간 모듈 _ 식사 공간 및 거실 / 부엌 / 테라스
사적 공간 모듈 _ 침실 / 거실 / 화장실

숙소를 둘러보고, 배치도와 단면도에서 인상 깊었던 후정으로 이동하였다. 1층 리셉션 뒤쪽 통로를 따라가니 후정에 도착하였다. 커다란 데크에 테이블이 있어 거주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데크 뒤쪽으로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었다. 정원은 마치 숲처럼 밀도 높게 계획되었다. 길을 따라 배치된 관목과 교목을 구경하며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도면에서는 경사가 심해 보였는데, 막상 걸으니 크게 경사졌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중간에 독립기념탑을 조망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을 보며 그 섬세한 설계과정을 느낄 수 있었고, 경사진 후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공간을 서비스 공간으로 활용하는 점도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후정 가는 길
후정 데크 / 후정
모서리에서 보이는 독립기념탑 / 파사드
후정에서 보는 레포르마 27

건물의 프로그램은 로비(리셉션, 라운지), 집, 후정과 옥상 어매니티로 구성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옥상을 구경하였다. 옥상에 도착하니 기준층의 코어와 달리 주황색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외부에서 보았던 독특한 색감이 천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만나 다시금 레포르마 27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코어부를 지나 건물 전면부 옥상으로 진입하니 수영장이 계획되었다. 정말 이곳은 너무나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푸른 수영장, 주황색을 머금은 공간, 섬세하게 계획된 식재, 열주처럼 배치된 기둥과 천창을 통해 만들어지는 빛의 패턴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밖으로 보이는 멕시코 시티의 전경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지만, 미관을 해치는 건축 형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레포르마 27을 답사하며 아파트가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아파트에서 종교시설이나 박물관에서나 느낄법한 공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는데, 옥상의 풍경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옥상 코어부
전면부 옥상 / 후면부 옥상
전면부 옥상
옥상 천창
전면부 옥상

그렇게 옥상을 마지막으로 건물 전체를 자세히 돌아보고 나서 멕시코와 한국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건축, 조경, 인테리어의 우선순위를 생각해 볼 때, 한국은 인테리어가 우선하고, 멕시코는 건축이나 조경이 우선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의 도시는 삭막하다고 표현될 때가 있는데 이는 비슷한 아파트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형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기 인테리어를 통해 내부에서는 동일한 모습으로 비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인스타그래머블 한 카페 인테리어는 그 감각을 보여주는 예시이다. 하지만 레포르마 27의 인테리어는 예상보다 훨씬 간단하였고, 오히려 조경이나 건축을 디자인하는데 집중한 것 같았다. 그리고 칼라치가 디자인한 많은 건물에서 인테리어는 꽤 단순하다. 이 모습을 보며 무엇을 우선하는가가 도시 풍경에 반영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은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지만) 한국에서도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조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지금보다 다양한 도시 풍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레포르마 27은 멕시코 건축 특징인 색상이 도시적 관점에서 새롭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루이스 바라간은 색을 통해 공간의 위계를 결정하고, 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었다. 색과 공간이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레포르마 27의 옥상공간에서 재현되었다고 느껴졌다. 주황색이 천창에서 들어오는 빛과 만나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색상이 건물 전체 입면에도 적용되며 도시적 측면에서 건물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독특한 색상의 파사드는 그 자체로 건물을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색이 공간과 파사드 모두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일견 단순해 보이는 형태의 건물이 색을 통해 가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파사드가 되었다. 이렇게 전통적인 요소를 새로운 현실에서 재해석하여 디자인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무척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레포르마 27 건축 모형



<참고 도면 및 자료들>

1층 / 기준층/ 옥상층 평면도 (출처 : Archdaily)


정면도 / 단면도 (출처 : Archdaily)



#세줄요약 + 1

- 독특한 색의 내외부 효과

- 구조를 통해 결정되는 파사드, 평면

- 건축, 조경, 인테리어에 대한 우선순위

- 아파트에 대한 새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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