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28_La Laguna
위치 : 멕시코시티 (C. Dr. Lucio 181, Doctores, Cuauhtémoc, 06720 Ciudad de México, CDMX)
설계 : Productora
준공 : 2023 (설계기간 : 2019-2021)
연면적 : 7,050 sqm
용도 : 상업시설
오랜만에 라구나에 다녀왔다. 몇 달 전에 이미 내 취향을 간파한 친구가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라고 데려갔다. 그때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짧게 머물렀기에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다시 한번 답사를 다녀왔다. 지금까지 답사한 곳과 달리 일상 속에 스며들어있는 건물이라 더 친근하게 다가왔고, 리노베이션이 보여주는 독특한 풍경은 답사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라구나는 푸쉬킨 정원(Jardin Pushkin) 역에서 0.4km 떨어져 있기에 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 대상지가 위치한 곳은 우리나라 성수동처럼 공업지역이기에 여전히 작은 공장이 많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업지역답게 도로에는 트럭이 많이 지나다니고, 목재나 철재를 옮기며 일을 하시는 분도 많이 계셨다. 하지만 최근 도시가 확장되며 공장이 점차 도시 외곽으로 자리를 옮기고, 공장 건물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이 들어오고 있었다. 라구나는 가장 먼저 리노베이션 된 건물로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건물이자, 이 지역이 변화할 미래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소규모 공장을 지나고, 주변건물과 다르지 않은 건물 정문에 도착하였다. 구글 지도가 알려주었기에 찾을 수 있었지, 외관상 다른 건물과 구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두 번째 와보았기에 멀리서 살짝 보이는 계단탑을 인식할 수 있었다.) 정문은 공장 단지에 맞게 기존 재료와 분위기를 최대한 유지하였고, 작게 표시된 마크를 통해 이곳이 라구나임을 알 수 있었다.
정문을 지나 카운터 인테리어 벽의 올리브색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운터에서 입장 등록을 하고 통로를 지나 내부로 진입하니 올리브 색이 칠해진 건축 요소가 눈에 띄었다. (카운터 벽은 복선이었다) 검은색과 흰색, 유리와 철로 계획된 근대적인 공장단지에서, 건물 곳곳에 칠해진 올리브 색으로 인하여 내부 공간이 활기를 띠며 현대적인 풍경으로 전환되었다. 통로를 따라 우측에 위치한 구역 1을 먼저 둘러보았다. 각각의 실은 작업실로 사용되고 있었고 주말이어서인지 다양한 종류의 창작물만 놓여있고 따로 사람은 없었다. 천창에서 떨어지는 빛을 품은 중정을 중심으로 작업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빛과 함께 계단, 창틀, 문과 간판까지 올리브 색이 칠해져 있었고, 이로 인하여 공간 자체가 통일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때부터 디자인 과정에서 왜 올리브색을 칠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구역 1을 둘러보고 구역 2로 이동하며 마주친 메인 중정에서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메인 중정에는 여러 식재가 계획되어 있었고, 건물 양쪽을 연결할 정도로 풍성한 덩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식재와 함께 보이는 중정은 건축과 조경이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었다. 이 과정에서 건축에 스며든 올리브 색상은 조경과 하나 되는 색상이었다. 건축가는 공장 건물에 조경 계획과 함께 건물 일부에 올리브 색을 칠함으로써 기존 공장의 삭막함에서 탈피하여 친근하고 자연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었다. 또한 건축가는 벽, 기둥, 보와 같은 건축의 핵심 구성요소는 철근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며 기존 공장의 거친 모습을 유지하였고, 창틀, 문, 난간과 같은 부차적인 요소에는 올리브 색을 칠하여 현대적인 감각을 녹여냈다. 이러한 두 가지 시간이 공존하는 모습은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각이었다. 중정은 작은 카페를 중심으로 벤치가 놓여 있어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일 수 있기에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여러 사무소 직원들이 나와서 회의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고, 주말에는 야외 카페로 활용되었다. 내가 답사한 여러 멕시코 건물, 특히 오피스 건물은 공원까지 나가지 않고도 잘 계획된 정원이나 중정을 통해 풍요로운 공간을 향유하고 있었다. 확실히 멕시코인들의 조경 디자인과 공용 공간에 대한 감각은 우리와 무척 다르다고 느껴졌다.
색과 더불어 계단실은 리모델링 과정의 핵심 디자인 요소였다. 공장이라는 건물은 기능에 충실하고 경제적으로 설계되기에 조형적인 관점을 놓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건축가는 상업시설의 용도에 필요한 계단실을 설계하여 새로운 기능에 필요한 수직 통로를 계획하는 동시에 중정을 조형적으로 인상적인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계단실은 구조체와 비구조체의 디자인 언어를 유지하며 계획되었고, 상부를 V자로 디자인하여 아이코닉한 타워가 되었다. 벤치에 앉아 중정을 감상하며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건축가가 자신의 감각을 최대한 절제하였다는 점이었다. 그는 계단실 상부를 제외하고 다른 건축 요소에서 기존 건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화려한 디자인을 자제하였다. 설계하는 과정에서 설계안이 밋밋하다고 느껴질 때, 불필요한 디자인을 추가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건축가는 이를 최대한 자제하고, 자신의 디자인 감각을 계단탑에서만 드러낸 점이 라구나를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메인 중정과 계단실을 둘러보고 나서 건물 내부를 돌아보았다. 건물 좌측에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고, 우측에는 다양한 디자인 사무소가 있었다. 그중 라구나를 설계한 Productora 건축사사무소가 이곳에 있었고, 회사에서 설계한 주요 건물의 모형과 랜더링을 구경할 수 있었다. 자신이 설계한 건물에서 일을 하는 것은 건축가가 향유할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인데 이를 향유하고 있어서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건축가가 내부 인테리어까지 진행하지 않았기에 사무소와 카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테리어 디자인이 되어있었다. 내부 복도나 기능 공간에도 올리브 색이 유지될까 하는 점이 궁금했는데 외부와 달리 내부에는 대부분 하얀색 페인트로 마감하여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를 통해 올리브 색감이 중정 조경과 깊이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내부를 살펴보고 2층의 외부 통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기존 건물에는 없었던 동선이었지만, 공장에서 상업 및 오피스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며 새롭게 계획되었다. 외부 통로를 걸으며 다시 한번 다른 시점에서 중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중정을 구경하며 걸어 전면부 건물로 이동하였다. 건물은 후면부와 달리 구조만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가구 판매점이 위치하여 여러 가구가 나열되어 있고, 사람들이 구매를 할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일부 칸에는 건축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멕시코에 지어진 주택에 관한 전시여서 잠시 살펴보고 마지막 옥상층으로 이동하였다.
계단실을 통해 옥상층으로 이동하였다. 옥상에는 딱히 특별한 것은 없었고,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어서 사람들이 조용히 휴식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있었다. 처음 계획안을 살펴보면 옥상층에 여러 모듈형 건물이 놓이며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는 것 같았지만 어떠한 이유인지 구현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어쩌면 Phase 2로 나중에 구현될 수도 있겠다) 옥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서 라구나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개인적으로 실무에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적이 있었다. (아쉽게 허가도서까지만 작성하고 지어지지 못했다.)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신축 건물보다 훨씬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는 측면에서 인상적이었다. 핵심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기존 건물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분석과 이해가 선행된다는 것이다. 이른 관점에서 라구나 프로젝트는 기존 건물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며 새로운 건물로 탈바꿈하였다. 용도의 전환을 통해 필요로 하는 동선을 새롭게 제안하였고, 새로운 계단실을 통해 공장건물에 새로운 조형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건축 요소에 올리브 색을 칠함으로써 건물 전체를 생동감 있고, 통일감 있게 만들어주었다. 색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방식은 루이스 바라간의 카사 길라르디와 무척 닮아있었다. 건축가는 정원에 심는 식재와의 연관성을 토대로 색상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조경과 건축의 관계를 이끌어내고, 삭막한 공장을 활기 넘치는 정원으로 변경시켰다. 지금도 라구나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가끔씩 라구나에 들러 건물을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