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듬직이가 4살 그리고 둘째 테디베어가 백일 때 이 집으로 이사 왔다. 그사이 셋째가 태어났다. 다섯 식구가 살기에는 작은 집. 아이들이 커갈수록 짐도 함께 늘어났다. 옷가지로 가득 찬 서랍은 메롱 하며 입을 벌렸다. 책꽂이에는 책들이 두 줄로 마주 봤다. 부족한 수납공간으로 아이들 학용품은 어질러졌다. 가위를 쓰려고 보면 어디에 있는지 보물 찾기를 했다. 침대 밑, 책상 밑, 마지막으로 소파 밑을 보니 저 깊숙한 곳에 있었다. 장난감은 종류대로 정리해도 금방 뒤섞였다. 지나가다 밟은 레고 조각에 ‘악’ 소리를 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책가방은 항상 현관 앞에 줄지어 있었다.
쓰지 않는 그릇 들로 부엌 수납장은 부서질 것 같았다. 커피 머신, 믹서기, 토스트기, 에어프라이로 싱크대 위는 점령당했다. 필요에 의해 존재하던 가전제품은 나를 짓눌렀다. 짐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미니멀 라이프의 삶은 어떨까? 아이 셋을 데리고 가능할까?’ 머리와 다르게 내면에서는 짐에 눌린다며 아우성치고 있었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들 장난감부터 정리했다. 이삿짐 박스로 6개가 나왔다. 자선단체에 나눔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내 욕심으로 가득 채웠던 아이들 동화책을 끄집어 내렸다. 한국어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바람들은 하나, 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덜너덜 찢어진 책은 종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하루에 하나씩을 정해 정리했다.
둘째가 입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 때문에 첫째가 입고 작아진 옷을 버리지 못했다. 둘째 성향에 맞는 옷을 추려냈다. 옷 부피는 반으로 줄었다. 둘째가 입고 작아진 옷은 지인에게 나눴다. 셋째 딸이 입고 작아진 옷은 조카에게 물려줬다. 독일에 살며 앤티크한 그릇을 벼룩시장에 다니며 사 모았었다. 애정하는 그릇을 정리하기란 쉽지 않았다. 집어 들었다 내려놓다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시간만 허비됐다. 결국 정리되어 몇 개 남지 않은 그릇은 산뜻했다. 싱크대 위도 말끔히 정리됐다. 하루 중 제일 많이 서 있는 곳의 빈 공간이 좋았다.
아이들 또한 비워진 공간을 좋아했다. 이제는 가위가 어디에 있는지 찾지 않아도 됐다. 꼭 읽어야 할 책 들만 책꽂이에 있다. 간소해진 장난감은 제자리를 찾았다. 아늑한 곳에 책가방 자리도 생겼다. 서랍은 깔끔하게 닫혔다. 겨우 몇 군데 짐 다이어트를 했을 뿐인데 묵은 때를 벗겨낸 듯 개운했다.이고 지고 살았던 고단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완전한 미니멀라이프가 되려면 갈 길이 멀었지만. 다섯 식구도 단출하게 살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세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