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이 끝난 독일의 밤은 길다. 오후 4시면 해가 져서 새벽 6시가 돼도 칠흑 같이 어둡다. 8시까지 등교해야 하는 두 아들 덕에 6시면 알람이 울린다. 제일 먼저 셋째 ‘다운천사’가 일어난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발자국 소리는 내 발밑에서 멈춰 선다. 이불속으로 고사리 같은 손이 쏙 들어온다. 발을 조물조물 간지럼 태운다.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일어난다. 엄마가 일어난 걸 확인한 뒤 두 오빠를 깨우러 총총 사라진다. 사춘기 첫째 오빠는 무거운 돌을 매단 듯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둘째 오빠는 눈을 애써 비비며 동생을 안는다. 마지막으로 ‘드렁드렁’ 코를 고는 아빠의 베개를 끄집어 빼낸다. 고개가 떨궈진 아빠는 비몽사몽 베개를 찾는다.
모두가 일어났는지 재차 확인한다, ‘다운천사’ 덕분에 즐거운 아침을 맞는다. 등교하는 두 오빠를 배웅하고는 꼼지락거리며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한다. 애착 인형을 찾아 끌어안고, 아직 출근 전인 아빠에게 인사를 나눈다. 자동차까지 가는 길에 만난 이웃집 언니, 오빠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든다. 산책 나온 강아지를 쫓아 뛰다가 떨어진 애착 인형을 집어 든다. 자동차에 타서 애착 인형을 앉히며 “가자”라고 말한다. 서서히 움직이는 차 창밖으로 전등이 켜진 큰 트리를 보며 “우와”를 연신 내뱉는다.
유치원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다가 뒤이어 들어온 친구에게 달려간다. 손을 씻으러 친구와 나란히 간다. 손을 비빌수록 몽글몽글 생기는 비누 거품에 깔깔 웃는다. 헹궈진 손을 탁탁 털며 수건에 닦는다. 선생님이 먼저 아는 척을 해주길 기다린다.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면 그제야 선생님 품으로 안긴다. 엄마를 떠밀며 집으로 가라고 손짓한다. 5시간 뒤에 유치원에 데리러 가면 저 멀리서 엄마를 발견하고 뛰어나온다.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산발된 머리카락이 알려준다. 집에 먼저 와 있는 두 오빠에게 와락 안긴다. 키 170센티미터의 첫째 오빠는 높이 비행기를 태워준다. 까르륵 웃는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진다. 둘째 오빠와는 식탁에 오순도순 앉아 간식을 나눠 먹는다.
6년 전 ‘다운증후군’ 딸이 태어났을 때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들만 둘인 집에 귀하게 태어난 딸인데. 그 딸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솜사탕 같은 달달함이 자리 잡았다. 나에게 큰 존재가 된 딸을 눈에 담고 글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