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어느 날 새벽에 화장실 가려다 어지러워서 주저앉았다. 천장이 빙빙 도는 느낌에 눈을 꾹 감았다. 조용히 한참을 있어도 어지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날이 밝자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디디며 차에 탔다. 남편이 운전해서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내 머리를 잡고 사정없이 흔들었다. 눈에 빛을 비추며 동공을 살폈다. “이석증입니다. 머리 흔드는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 라며 운동 방법이 적힌 카탈로그를 주었다. 조금만 흔들어도 세상이 빙빙 도는데 열심히 흔들으라니. 머리를 흔들 때마다 토할 것 같았다.
이석증이 나아지고 며칠 지나 왼쪽 갈비뼈 있는 부분이 심하게 욱신거리며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너무 아파서 부여잡고는 쪼그려 앉았다. 주말이라 문 연 병원이 없었다. 응급실로 향했다. 코로나 기간이라 남편과 함께 들어갈 수 없었다. 지탱해 줄 남편이 없으니 혼자서 거의 기어가다시피 응급실로 들어갔다. 들숨 날숨 거친 숨을 내쉬며 접수대에 섰다. 간신이 접수를 마치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30분이 지나도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밀려오는 고통에 ‘악’ 소리가 나올 것 같았다. 속으로 꾸역꾸역 삼켰다. 1시간이 지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는 단번에 “대상포진입니다. 수포도 생길 수 있습니다. 처방해 주는 약 먹고 바르세요.”라며 진료실을 나갔다. 차까지 걸어가는 길이 천리만리였다. 그렇게 며칠을 고생했었다.
대상포진이 나아지며 살만했다. 삼 남매 키우며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는데 한포진이 생겼다. 피부과, 가정의학과를 여러 차례 돌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처방받은 연고는 순간 가려우며 올라오는 수포를 가라앉혀 줄 뿐 치료는 아니었다. 숙면하지 못해서 피곤한 날에는 더 심했다. 뭐에 홀린 듯 긁다 보면 짝짝 갈라지며 피가 났다. 물에 닿으면 상처부위가 쓰라려 발을 동동 구른다는 걸 알면서도 가려움을 참지 못했다. 막내딸을 씻기려면 면장갑 위에 라텍스 장갑을 꼈다. 샤워 겔, 샴푸가 손에 닿으면 가려움은 극대화된다.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딸의 여린 피부에 라텍스 장갑이 닿지 않게 하려고 긴 샤워 브러시를 썼다.
요리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라텍스 장갑은 필수였다. 식재료 당근, 피망. 양파 등을 맨손으로 잡으면 수포가 올라왔다. 맨손으로 행주 짜기도 힘들었다. 밤새 손을 쓰지 않다가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려 잡은 머그잔에도 자극이 되어 가려웠다. 스트로이제가 들은 연고를 자주 쓰지 않으려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았다. 자주 닦아야 하는 손이기에 독일에서 좋다는 유기농 비누를 찾기 시작했다. 향이 진하지 않고, 자극이 없는 비누를 10개쯤 샀을 때 비로소 나에게 맞는 걸 찾을 수 있었다. 가려움을 완화해 줄 연고와, 보습을 위한 핸드크림 또한 사서 모았다. 모아진 연고와, 핸드크림이 15개였다.
한포진으로 잠자기 전에 듬뿍듬뿍 연고를 바르는 습관이 생겼다. 아프고 쓰라림을 참아내며 고군 분투해 준 손에 연고를 바르다 보면 울컥한다. 상처투성이로 투박해진 손이 가엽다. 언제쯤이면 한포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