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 팔로워 최대한 확보
- 게시물은 최소화
-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소통
- 본 계정 외 별도의 서브 계정을 운영
SNS를 사용하는 청소년들의 공통점이다.
우리가 그 옛날 ‘미니홈피’를 정성스레 꾸리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수시로 SNS에 들락거리면서 왜 게시물 사진은 없는 거냐 딸에게 물었더니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그냥. 다들 그래.”
그렇다. 그들은 매사에 쉽고 간단하다.
'꼭 그렇게 매사를 심각하게 계획하고 고민하며 살아야 해?'라고 말한다.
단순히 내 아이의 성향일 수 있지만 요즘 MZ 세대들의 트렌드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면 '성공', '성실', '근면'의 자기 계발서들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더 이상 보이지 않은 지도 한참 된 것 같다. 내 살 깎아가며 노력해 목표한 바에 이르면 좋겠지만 앞 선 세대를 보니, 그것도 아닌가 봐 하고 깨달아서일까.
도전해서 안되면 다른 길로 가고, 장담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기보다 순간의 행복을 챙겨가며 사는 게 이 시대 젊은이들의 주된 가치관 같기도 하다. 나의 만족, 즐거움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가지는 데 있어서도 주저함이 없다.
지난여름 방학의 일이다.
딸의 친구가 새 남친과 사귄 지 한 달 된 기념으로 함께 놀이공원을 가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몹시 부러운 기색이었다. '같은 학교 학생'인 거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
“고등학생 오빠래.”
“고등학생.....?”
고등학생이라니... 학원 오빠? 아님 그 흔한 친구 오빠나 교회 오빠?
어떻게 알게 된 사이냐고 물었더니,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고 다이렉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사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몇 주 후 있을 만남이 첫 대면이라고 했다.
뜨악한 나와는 달리 친구의 랜선 남친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이의 태도는 실로 태연해 보였다.
겁도 없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만나는 거냐는 내 말에, 사진도 보았고 어느 학교 다니는 누군지 아는데 나쁜 사람이겠냐는 식이었다.
온라인에서 낯선 이를 만났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의 모든 예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나가선 안된다 전하라며 침 튀겨가며 설교했다. 내 말을 듣던 아이는 별 대꾸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찝찝한 마음에 덧붙여 물었다.
“혹시, 친구 엄마는 알고 있을까?”
“글쎄... 전에 사귄 남친은 엄마도 안다고 했었는데, 지금 남친은.. 모르겠어.”
외국생활을 오래 한 친구의 가정은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 엄마가 친구 엄마에게 살짝 귀띔해주면 어떨까?”
예상대로 딸은 안된다며 펄쩍 뛰었다. 조바심이 났지만 만남의 디데이까지는 아직 시일이 있어 일단 입을 다물고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다른 소식 없이 며칠이 지나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의심 많은 아줌마의 오지랖으로 비추어지더라도 알게 된 이상 모른 척하는 건 어른스럽지 않은 일 같았다.
학교에서 딸이 돌아오자 자리에 앉히고, 얘기를 꺼냈다.
“있잖아, 너 그 친구 말이야... ”
“어? 누구?”
“그 랜선 남친 만나기로 했다는 B.”
“아, B? 헤어졌어.”
“헤어져?”
“응 헤어졌대. 며칠 전에.”
“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다고 난리라 그랬잖아.”
“어, 그랬지. 근데 얘기해보니 재미없고 자기 스타일이 아니더래. 그러게 나는 오빠들은 영 별로래두.... ”
친구의 결별 소식을 전하는 딸은 ‘남친은 동갑이 좋지.’라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지난번 그 예의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이야기지만 랜선 남친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요즘 십대들에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랜선 연애는 실제 교제보다 쉽고 빠르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짧은 게 당연했다. 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생판 모르는 사이에 만남과 결별엔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시작과 끝엔 뜬소문이나 뒷담의 부담이 없고 주변 이들과 껄끄러운 부작용이 남지 않는다.
이주일, 일주일. 더 짧게는 24시간.
유효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다행스럽고도 슬픈 이유는 아이들의 바쁜 스케줄 때문이다.
빼곡히 짜여 있는 학원 스케줄 때문에 아이들은 멀리 있는 랜선 남친을 실제로 만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관계는 애초에 진지한 감정을 기대할 수 없다.
그저 가상의 공간 낯선 누군가와 잠시나마 특별한 관계를 맺음이 지친 일상에 스쳐가는 위로와 즐거움이 되어주는 것일 뿐.
관계나 감정조차 점점 빨라지는 세상.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가장 짧고 막히지 않는 길을 찾아 주는 내비게이션처럼, 내가 가장 선호하고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알고리즘에 우리는 점점 익숙해질 것이고 다음 세대들은 더 기막힌 방법으로 군더더기 없는 최적의 선택과 결과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들의 속전속결과 감정의 여운조차 남기지 않는 쿨함이 십 대들 만의 특성이 아니라, 어쩌면 지금 세상에 살아가기에 최적화되어가고 있는 후세대의 생존본능이라면 너무 거창할까?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이 인간에게 더 신속한 적응을 요구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눈뜨면 새로운 정보를, 달라진 시스템을 익혀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니까.
어쩌면 미래에는 스피드한 순발력과 민감한 정보 습득력, 유연한 적응 능력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변화에 한 템포 더딘 나 같은 느림보형 인간이 현시점에 태어나지 않은 게 새삼 다행스러운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