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하는 엄마
엄마는 오빠의 여자친구가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진지하게 사귀는 것을 반대했다. 내가 왜냐고 묻자, 엄마는 기왕이면 평범한 집, 평범한 장인·장모 있는 집이 좋지 않겠냐라고 답했다. 나중에 장모를 모셔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덧붙였다.
엄마의 “기왕이면”이라는 기준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자식들이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나기를 바라는 건 부모 마음이라지만, 엄마에겐 그 바람이 너무나 당연한 전제로 깔려 있다. 이 문제로 엄마와 다툰 오빠는 그럼 동생(나)이 백인이 아니라 흑인 남자친구를 만나면 반대할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단 일초도 고민조차 하지 않고
“나는 흑인은 싫어”라고 답했다.
엄마가 인종차별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니 또 그게 내 남자친구에 반영된다니 충격은 또 달랐다. 내가 관계에서 누리고 있는 행복이 피부색 하나로 가족에게서 거부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왜 싫어? 구체적으로 말해줘.”
엄마는 “그냥 싫어”라고 했다가, 곧바로 “아기 낳으면 까맣잖아. 내 딸이 ‘깜둥이’를 낳는 건 싫어”라고 말했다.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집요하게 다시 물었다. 왜 까만 아이를 낳는 게 싫은 건지.
엄마는 “까만 아이는 튀고, 놀림당하고…” 그러면서 “그래서 너 한국 와서 살라고 하는 거 아니야. 평범하게 한국 남자 만나고 한국 직장 다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멈췄다.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의 나의 관계도 그때부터 멈춰있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동안 멍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 가족은 내가 노란피부를 지니고 있다고 해서, 또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차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반대로 한국 가족들은, 내가 누구와 함께하는지보다 남들이 어떻게 볼지 더 걱정하는 듯 했다.
“엄마,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는 건 아니야. 누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지, 어떤 피부색으로 태어났는지는 그 사람의 선택이 아니잖아.”
그러자 엄마는 “부모라면 자식이 조금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래. 그런 생각 들 수 있어. 근데 제발, 그걸 말로 꺼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나에게 “너무 예민하다”고 말했다.
숨이 막힌다. 한국에서는 내가 예민하고 특이, 아니 이상한 딸이 된다. 한국 가족들은 나를 뜯어 고쳐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한국 밖에선 오히려 내가 정상이고,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면 나는 한국에선 살 수 없어.
어쩌면, 이 두 세계 사이에서 나를 지키는 일이 앞으로 오랫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