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서구문화 사대주의적 시선
요즘 방송에는 다양한 외국인과 이민자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고, 전반적인 인식도 조금씩 변화하는 듯하다. 하지만 경제적·교육적 격차는 여전히 존재하고,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사람들은 이런 무대에 오를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결국 ‘인기 = 돈’으로 이어지는 예능시장에서는 유색인종이 백인보다 더 탁월한 결과를 보여주지 않는 한, 자연스럽게 노출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체감하게 된다.
몇 년 전 한국에 들어왔을 때, 캐리비안 베이의 모든 놀이기구 안내판에 백인 남녀 모델만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의아함이 들었다. 한국이라는 나라, 한국인 이용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안내 이미지에는 한국인을 찾기 어려웠다. 단순히 “어디를 잡아야 한다”, “어떻게 앉아야 한다”는 기본 안내일 뿐인데 말이다. 이후 다른 안내판들도 유심히 살펴보니 거의 모두 백인 모델이었다.
물론 캐리비안 베이가 외국 콘셉트의 테마파크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국’이 꼭 금발의 백인만을 의미해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캐리비안이라는 지역의 인구 구성을 보면 백인(코케이시안)보다는 아프로계, 라틴계 주민들이 훨씬 많다. 건강한 브라운 톤의 피부, 검은 머리, 다양한 얼굴형을 가진 사람들이 실제 그 지역을 이루고 있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잭 스패로우 같은 백인 해적들은 사실상 서유럽 출신 인물들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카리브 해’라는 이름을 빌려온 공간에, 그 지역과는 무관한 백인 모델들만을 반복적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서구문화 사대주의적 시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느껴졌다.
한국 밖 세계에서는 인종 다양성과 포용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문화 기관뿐 아니라 대기업에서도 이런 가치가 상업적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유럽의 브랜드들은 다양한 체형, 다양한 인종의 모델을 기용하려는 노력을 하고, 이민자가 많은 도시일수록 실제 인구 구성을 반영하는 이미지 사용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백인 모델을 사용하면 더 세련되고, 더 고급스럽고, 더 ‘외국 같은’ 이미지를 준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그 차이를 볼 때마다 한국 사회가 어떤 시각에 기반해 외국을 상상하고 있는지 선명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