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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May 28. 2024

메아리의 시작



부모님은 한 번도 나에게 사랑한다거나 자랑스럽다고 말한 적 없다. 사실은 칭찬받은 기억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은 나를 가장 평범하고 표준적인 모습의 소녀로 키우고 싶어 했기에, 그렇지 않은 나는 종종 내 외모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국에서 평범하단 것은 좋은 것, 아름답다는 것이고 나는 분명히 표준의 범위 안에 속하지는 않았다.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이 되려면 어떤 면에서든 정상적이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정상적이어야 한다는 완벽주의. 이것은 과연 정상적인 것일까, 아니면 완벽한 것일까?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계에서 조금 더 나아가 너무 튀지는 않지만 도드라지는 면이 더해진다면 사회의 찬사를 받을 수 있었다. 평범해야 하지만 특별해야 한단 건 어떤 것일까. 사회에선 나름의 정해진 규칙이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나 스스로 고민하거나 헷갈릴 필요 없었다. 코는 얼마나 얄쌍하고 높아야 하는지, 눈은 얼마나 크고 쌍꺼풀은 있는지, 턱은 갸름하고 이의 배열은 곧은지, 다리의 굵기와 길이는 어떤지. 아니, 이미 이렇게 태어나고 생겨먹은 사람들에게 뭘 더 어떻게 생겨야 한다는 건가. 태어난 생김새를 거부하고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다는 것이 이해는 잘 가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찾기가 꽤 힘들었다.


이따금씩 어머니는 식사를 멈추고 밥을 먹고 있는 내 얼굴을 말없이 빤히 쳐다볼 때가 많았다. 그리고는 눈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 아니면 코를 어떻게 뜯어고쳐야 할까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나의 얼굴에 대해 혼자 고민했다. 내가 좋아하는 옷들은 나를 가난해 보이게 한다고 했고,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는 것은 몸을 파는 여자 같아 보인다고 했다. 이런 이상한 압박과 평가는 가족 내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집 밖을 나서도 일어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들도 만날 때마다 살이 쪘네, 빠졌네, 얼굴이 너무 까맣네, 창백하네, 숙녀가 됐네, 마네 한 마디씩 던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내가 예쁘지 않으면 직업을 구하거나 결혼할 수 없다는 암묵적 압박을 받았고 그것은 즉 내가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열여덟 살쯤이 되었을 때는, 내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이미 외모를 '향상'시키는 수술을 받아 한국의 미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못생긴' 얼굴과 몸매를 꽤 마음에 들어 했으므로 내 신체 부위를 그대로 유지하려 나름의 방어를 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에 대해 나의 의견을 내는 것은 마냥 쉽지 않다. 그냥. 이런 것들은 원래부터 그랬고 계속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 지는 것이었다.


특히 유교 문화에 깊이 뿌리 박힌 한국 사회에서는 부모, 노인, 교사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강력하게 장려된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만 조용히 마음속으로 던져왔다. '잘난 사람이 된다는 규칙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이런 집착은 어떻게 한국에서 시작되고 만연하게 되었는가?'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항상 자기 자신과 가족 구성원들에게 아주 높은 기준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이런 기준이 어머니 어디서 왔는가, 또 어머니의 성장 과정이 이러한 기준을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과의 대화를 살펴보면 딸인 나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그들의 자부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명문 대학에 진학하여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을 얻거나 아니면 외모가 예뻐서 성공적인(돈을 잘 버는) 배우자를 찾는 것을 인생 가장 큰 가치로 여겼다. 나는 이러한 태도가 비단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문화적 규범임을 깨닫게 되었다. 왜 이런 성취 압박과 자기 증명의 필요가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널리 퍼져 있는 걸까?


한국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일치성과 정상성을 유지하는 것에 큰 중점을 둔다. 이 주류 문화적 가치는 종종 '올바른(틀리지 않은)' 삶의 방식으로 취급되며, 다른 방식들은 일탈적이거나 잘못된 것으로 쉽게 여겨진다. 이상적인 외모, 경제적 지위, 직업은 매우 중요하며, 사람들은 이를 정상적인 삶의 목표로 설정한다. 그렇기에 이 가치를 따르는 모범 시민과 다른 개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은 낙인을 받는다. 낙인을 받은 사람들은 사람들의 특정한 시선, 다수 집단의 압력, 심지어는 위협에 까지 시달리기도 한다. 이로 인해 그들은 극심한 외로움과 우울증을 경험한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사회적 압박이 너무 심해서 사람들이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 극단적인 예는 지배적인 '올바른' 삶의 방식, 문화적 가치를 준수하고 따르는 것이 어려움을 보여준다.



한국은 지난 60년 동안 놀라운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단순히 열심히 일한 결과가 아니라 식민 지배와 폭력의 역사에 깊이 뿌리 박힌 문화적 가치에 의해 형성되었다. 식민지 시대(1910-1945) 동안 한국인들은 억압적인 조치에 직면해야 했고,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가혹한 폭행이나 심지어 죽음에 이를 수 있었다. 여성들은 특히 취약했으며, 많은 이들이 일본 군인에 의해 성적 노예로 강제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인들은 식민 지배와 폭력의 역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올바른' 삶의 방식을 준수해야 했다.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써야 했고, 눈에 튀지 않아야 했으며 안전한 삶의 방식, 먹고사는데 모든 신경을 곤두서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다가 일본 식민 지배가 끝난 후에는 한국 전쟁(1950-1953)이 발발했다. 한국 전쟁도 한국인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안겼으며, 지속적인 이동과 불확실성에 직면해야 했다. 이 불안정과 불확실성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었으며 우리 몸과 정신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현대 한국의 정체성과 사회가 식민 지배, 한국 전쟁, 그 후의 경제 위기라는 집단적 트라우마에 의해 형성되었다. 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가 한국 전쟁 이후 새롭게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고 원치 않는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제안한다. 이러한 통제 욕구는 이전 세대로부터 유전되었고, 현대 세대에서도 여전히 만연해 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되고 만연한 고통을 의미하며, 이러한 압박은 그들의 삶과 후세대를 키우는 방식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한국의 식민 지배, 전쟁, 경제 불안정의 역사가 세대 간 두려움, 결핍, 불안을 어떻게 형성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개인의 행동 기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적어 내려가보려 한다. 또한, 위험 감소와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 달성에 대한 현대의 집착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탐구한다.


특히 나의 정체성은 한국 사회에서 주류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인 목소리에 의해 무시된 한 사람의 관점에서 묵살된 당혹감과 간과된 취약성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자문화기술지는 이러한 맥락에서 매우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역사 속에서 주관적, 감정적인 개인 경험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일본 식민 지배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노령화로 인해 사라져 가는 시점에서 역사적 트라우마가 개인과 가족에게 미친 영향을 기록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교육자 아리안느 즈와르츠는 자문화기술지가 전통적으로 무시되거나 침묵되거나 간과된 사람들에게 더 복잡한 대화를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문화기술지는 객관적인 목소리와 중립성의 가식을 거부하고, 육체의 기쁨, 당혹감, 실망을 동반한 신체적 경험을 포함시킨다.


앞으로 쓸 글들은 이 사회 속 개인들의 트라우마, 두려움, 취약성에 관한 에피소드를 포함할 예정이다. 첫 번째 장에서는 한국 대학 입학시험과 실패와 관련된 나의 개인적이고 창피한 일화를 공유하려 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나의 어머니가 경험한 트라우마와 그것이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려 한다. 또한, 어머니가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전략이 딸인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탐구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나의 할머니의 남한 역사 속에서의 경험한 두려움과 불안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 그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한 방식을 살펴보려 한다. 나는 이런 형식의 자문화기술지가 역사적 트라우마가 세대 간 개인 정체성에 미친 영향을 독특하게 조명할 수 있는 동시에 또 한국 사회의 문화적 규범 및 기대가 어떻게 한국의 복잡한 역사적 뿌리에 어떻게 뿌리를 두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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