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자의 불안
완벽하게 평범해야 한다는 사회 압력은 집이라는 개인적 공간뿐만 아니라 학교나 사회라는 공적 영역까지도 만연하게 퍼져있다. 특히 중, 고등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얻을수록 안주하지 말고 더욱더 경계하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무거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미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떻게 더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걸까.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하는 큰 성과이다. 이 시기의 성과에 따라 앞으로의 누군가의 경제적 및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대학을 입학하려는 아이들이라면 어쩔 수 없이 거의 모두가 이 압력을 받게 된다. 매년 약 70만 명(2011년 기준)의 학생들이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데, 이 중 1.5% 정도가 소위 말해 아주 좋다 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객관적 문제와 오선지의 답. 숫자와 그래프. 누구나 다 잘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닌 상대적인 순위로 판단된 다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잠재성을 무시하고 마치 이들을 정육점에서 진열된 고기를 보는 듯했다. 1등급으로 분류되는 친구들, 9등급인 친구들. 수학능력평가시험이라는 시험은 곡선 등급제로 평가되기 때문에 모두가 잘할수록 모두가 최상품의 품질이 될 수 없다. 동시에 98.5%의 인구가 같은 ‘최상품’ 품질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등급 시스템은 나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옆 책상에서 공부를 함께 열심히 하는 친구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듯이 계속 쫓기고 쫓는 이 상황에서 친구를 동지보다는 잠재적 경쟁자로 보이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끼리 나는 공부 별로 못 했어라는 말을 흘리거나 성적을 잘 받았어도 기뻐하기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별로 안 나왔네 하며 약간 실망한 눈치를 보여야 점수를 더 낮게 받은 친구 앞에서 민망하지 않았다. 그런 친구들을 주시하며 나 자신은 몇 등급의 고기 덩어리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더 높은 등급의 고기 덩어리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존재 가치에 매 시험마다 회의감을 품게 된다.
우리는 이런 객관적인 사회 평가 시스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하루 최대 16시간씩 끊임없이 공부하는 많은 한국 고등학생들이 공유하는 감정은 불안과 외로움일 것이다. 청소년의 극도의 압력과 기대는 곧 성인이 된 이들에게 다른 형식의 압박과 집착으로 작용한다. 이는 2003년부터 현재까지 OECD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한 한국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대략 3분의 1의 수험생이 시험 결과에 실망하고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다음 해의 시험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다니며 더 공부하는 대신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는 집안 재정적 여유가 있는 경우 한국의 대학 시스템에서 벗어나 유학을 가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는 수업 시간에 종이의 구석에 낙서를 자주 하곤 했다. 종이에 연필의 사각거림. 흰색 배경에 퍼져가는 검정색 잉크. 수업 시간 유일하게 나를 잠에들지 않게 해줄 수 있는 활동. 무척 재미있었다. 이 낙서들을 제대로 된 그림으로 발전시켜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미술 대학을 가는 것을 꿈꾸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미술 대학에 갈 수 있지? 미술 대학에 입학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림도 잘 그려야 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란 무엇일까? 예술은 수학과 같이 정답이 있는 학문이 아니다. 예술은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평가잣대에 따라 어떤 작품이 좋은가, 나쁜가 결정된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도 혹자는 이 정도는 나도 그리겠네라고 코웃음을 치고 지나갈 것이다. 어떤 사람은 피카소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는 이유나 배경, 그의 역사를 둘러대며 대단한 그림이라고 할 것이다. 후자의 경우가 더 올바른 평가인가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다. 전자나 후자나 어떤 사람의 평가일 뿐, 피카소의 그림은 좋다, 나쁘다 또는 이가 모든 예술의 정답이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이야기와 표현의 독창성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현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질문들과 답을 외워 골라야 하는 수학대학능력시험과는 아주 반대에 있는 학문이지 않을까? 어떻게 그림을 그려야 할지 고민을 해야 할 단계라고 생각했지만 곧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 학원에서는 대학 입학시험에서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이미 다 정해져 있었다.
좋은 미술 시험 성적을 얻으려면 그 문제풀이 방법처럼 정해진 규칙과 형식을 따라야 했다. 예를 들면, 주제는 크게 그리고, 책의 채도는 아주 높아서 평가단의 눈에 잘 뜨일 수 있게 빨강, 노랑등을 많이 써야 한다. 배경은 그라데이션으로 연하게 어떤 붓으로. 한 면을 무조건 많이 갈라놓아서 완성도가 높아 보이게 , 흰색은 어떨 때 쓰고 검은색은 어떤 때 쓴다, 등등.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미술에 대한 기본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려 해도 예술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창의적이게 되는 방법을 배우거나, 그 잠재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시험이 아닌 반복적으로 또 기술적인 부분만 보는 시험이란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내 주변에는 이런 질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이유는 우리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커서 뭐가 되고 싶나 라는 질문을 할 마음의 여유나 시간도 주어지지 않는 정도였다. 그렇게 몇 년째 같은 형식의 암기 그림을 그리면서 학교에서 책 구석에 그림을 그리는 순수함 즐거움을 잊어갔고 어떤 것이 내 그림 스타일이었는지도 잊게 되었다.
사실 나는 입시미술에 재능이 없어서 대학이 요구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다. 학원의 선생님들은 내가 그린 그림이 완벽하지 않을 때마다 때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림을 못 그려서 그 자체가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사랑으로 더 나아지라고 때리는 건지. 키가 장정같이 큰 성인 남자 선생님의 분노는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는 우리의 '나아짐'을 위해 두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면 온 힘을 다해 골프를 치는 것처럼 몸을 휘둘러 우리의 엉덩이를 때렸다. 건설 현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길이 1미터의 나무 조각이나 야구 배트였다. 얼마나 열심히 했나 와는 상관없이 어떤 학생들은 항상 맞았다. 학원의 학생들은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까며 서로의 상처와 멍을 비교했다. 누구의 멍의 크기에 따라 가장 큰 동정심을 받을 수 있기에 멍의 크기에 관해 작은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신체적인 폭력이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재능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굴욕을 당하는 정신적 고통도 수반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인생의 나머지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인생 사건이기에 나의 부모님마저 학원에서 선생님들이 체벌을 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여 묵인했다. 따라서 나의 가족과 선생님들에 말에 따르면 '그들'은 '나'의 미래를 위해 '나'를 향한 모든 신체적 학대를 용인했다.
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을 결과가 두려워 체벌을 거부하거나 불평하지 못했다. 학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인생을 잘 살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6년간의 컨베이어 벨트 같은 그림 작업 끝에 나는 초등학교 때 종이의 구석에 낙서를 할 때 느꼈던 즐거움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하얀 종이를 보면 습관적으로 그리는 그림들. 나는 반복적으로 같은 것을 생산해야 하는 공장형 기계처럼 느껴졌다.
이 순간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약간 멍해진다. 이 당시 이야기를 외국 친구에게 하면 그게 사실이냐며 경악을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을 진정 시키려 미소를 이으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회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취업을 해서 일을 할 때마다 너무 심각하게 성취지향적이거나 목표가 높거나, 실패를 극심히 두려워한다거나 하는 등의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도 혼자서 압박감을 느꼈다. 나중에는 청소년기의 체벌이 나의 정신적 발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음을 깨달았다. 연구자 Kristel Alla에 따르면, 체벌이 아동의 인지적, 행동적, 사회적, 감정적 발달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해로움에는 정신 건강 및 감정 문제, 낮은 인지 능력, 낮은 자존감, 증가된 공격성, 증가된 반사회적 행동, 부모와의 부정적인 관계가 포함될 수 있다.
'불합격하셨습니다.'
나는 시험 결과를 확인한 모니터 앞에서 얼어 붙어 있었다. 6년의 그림 연습 끝에도 결국 내 그림 실력은 여전히 좋은 대학에 들어갈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불합격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 소식을 듣고 바닥에 앉아 짐승처럼 매우 크게 울부짖었다. 그는 동네가 창피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냐며 친척들과 동료들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지 걱정했다. 나는 모니터 앞 의자에서 일어날 수도, 가족에게 수치심을 준 실패자가 된 죄책감 때문에 울 수도 없었다.
어머니의 울부짖음은 정말로 나의 미래를 걱정함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단순한 자식 농사의 자랑거리뿐이었을까? 실패 소식에 나 자신이 울지 못할 정도로 얼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어쩌면 딸인 나는 그냥 자기 자신의 젊은 시절의 미완성된 야망과 집착의 반영일까? 이 혼란을 겪으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찌되었든 나는 한국 사회의 기대에 맞추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맞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마치 둥근 구멍에 맞지 않는 네모난 쐐기처럼. 아무리 동그란 모양의 쐐기가 되려 나 자신을 아무리 깎아 맞추려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불가능 한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나는 가족 내에서 점점 투명해졌다.
공부를 잘하던 내 사촌들은 의대에 가거나 또는 좋은 집안 사정으로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이들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매번 설날과 추석 때마다 잘 나가는 친척 동생들에 대해서 자랑스레 떠들었다. 반면 나의 부모님은 딸의 보여줄 성과가 없었기 때문에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때부터 나 자신이 사회에서 불충분하고 자랑스럽지 않은 사람으로 낙인찍혔다고 느꼈다. 어떤 사회적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별로 대단하지 않다는 낙인이 나를 따라다니 는 것 같았다. 취업을 하거나 새로운 사회 그룹에 가입하거나 심지어 연애를 시도할 때도,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어느 대학 출신인지 묻곤 했다. 내가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의 이름을 주저하며 말할 때, 나는 곧바로 실패자로 보일까, 상대의 반응이 두려웠다. 나의 대학 출신을 들은 이들은 보통 아-.. 하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반응이었다. 반대로 더 잘 알려진 대학에 다녔던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은 아주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모교 이름을 밝히곤 했다. 그 주변 사람들은 눈과 목소리가 한껏 커지며 그들의 지성을 칭찬하고 존경을 표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는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명문 대학 출신 학생들이 종종 더 높은 연봉의 직업과 좋은 환경의 직장에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실 때문에 더욱 격차가 벌어졌다. 그에 반해 나는 종종 그런 직장에 지원할 자격조차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 엘리트주의가 개인의 직업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다. 순위가 낮은 사람들은 이용 가능한 기회와 선택권 범위가 아주 적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낮은 임금의 직위와 열악한 근무 조건뿐이었다. 그렇기에 나와 동기 친구들은 어떤 회사를 가더라도 사회적 괴롭힘이나 성희롱으로부터 보호 덜 받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낮은 사회적 지위 때문에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을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만약 시스템을 비판하려고 하면, 나는 이미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나의 비판은 종종 자신의 성과에 대한 변명으로 치부되거나 무시되기 아주 쉬웠다. 그대로 몇 년 간 이 사회에서 살아가며 지금 난 슬픈 건지, 화가 난 지, 아니면 단지 무력한 것인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모든 감정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도망치듯 한국을 떠났다. 도저히 실패자라는 낙인을 가지고 서는 이 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토록 싫어하던 그 경쟁 시스템 안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지금, 나의 실패에 관련된 몇 년을 되돌아본다. 나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사회구조와 가치였을까? 나는 개인의 집착, 압박감, 불안 그리고 우울감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지, 사회 속 특정한 가치는 어떻게 생기는지에 관한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을 한국 현대사로 출발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라는 것은 대개 다수의 그리고 주류의 역사 해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또 몇 년도, 어디서 일어난 어떤 사건은 이런 이유에서 시작되고 누가 이겼다는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학문으로 치부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비주류의 사람들의 소외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지식들은 쉽게 배제된다. 실패자가 된 개인들의 이야기 속 느낀 수치감, 분노, 불안, 우울함은 쉽게 역사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나같은 사람의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