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투명하고 푸르스름한 눈동자 빛나는 금빛 머리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칠흑같이 까만 눈동자에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 이 마을에서 나의 혀와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이 외지의 딸에 홀로 살고 있는 이방인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지닌 피부, 눈동자, 머리카락 색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따듯한 포옹을 해주고 자기 의견을 솔직하고 용감하게 말하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이곳까지 날아와 살고 있다. 하지만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요즘에는 단지 나와 닮은 까만 눈동자, 까만 머리, 같은 소리를 내는 어떤 존재가 그래도 나는 여기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는 적어도 같이 혼자라고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국의 땅에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노력이 필요하다. 슈퍼마켓에 가서 성인이 되어 배운 언어로 장을 보고 따듯하고 촉촉한 쌀밥과 국대신 몸에 익숙하지 않은 차가운 요거트나 빵을 먹거나 집 앞 편의점을 가는 대신 국경을 넘어 배달 오는 한식 재료를 일주일 내내 기다리는 일. 매일 먹던 음식을 몇 달 안에 다시 먹기는 힘들 거라고 포기하는 일. 공감할 사람이 없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모두 묻어두는 일.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일. 나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사회에 적응하는 일. 내가 부족한 사람인 건지, 그냥 언어가 부족한 사람인 건지 혼란스럽다.
가끔 아침에 눈을 뜨면 공허함과 불안함이 동시에 가슴팍에 붙어 있기도 한다. 헛헛하다. 나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까?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커피도 마시며 일상을 보내면 잠깐 털어낼 수 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여김 없이 다시 나를 찾아온다. 그 공허함과 불안함은 원래 그 자리가 맞다는 듯이 되돌아오며 나를 놀린다. 과연 내가 이곳에 사는 것이 맞을까?
비주류가 되기 싫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속에 살겠다며 한국을 떠나왔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시 이방인으로서 소수자, 비주류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가 그들과 다른 점이 더 도드라진다. 오래 해외생활을 할수록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점 더 강해진다.
칠흑이라는 말은 옻칠처럼 검고 광택이 있다는 뜻이다. 옻칠은 흔히 할머니댁에 가면 볼 수 있는 자개장이나 나전칠기 같은 보석함에 쓰이는 옻나무의 수액을 나무 표면 위에 매끈하게 검은색으로 바르는 칠을 말한다. 옻나무에는 독이 있어 함부로 만지면 큰일 나지만 옻칠을 한 목재가구는 벌레에 먹히지도 않고 내수성과 내열에 강해 오랜 보존이 가능하다. 옻칠은 꽤 한국인 같다. 까맣게 반짝반짝 빛나는 독창적인 옻칠. 칠흑같이 까만 눈동자와 머리카락을 지닌 사람들. 나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까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