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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치 Jun 30. 2024

모국

네덜란드에 살기로 결정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가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 내가 지금 있고 싶은 곳은 분명히 한국이다. 정확히는 친구네 집 방바닥에서 도퍼를 깔고 누워서 핸드폰 하면서 낄낄거리는 그 자리. 아침에 일어나면 근처 잘하는 김치찌개/청국장 백반집에 가서 계란프라이 하나 추가 시키고 혼자 야무지게 먹고 집에 돌아오는 하루. 친구네 집 문 열고 들어가면 친구가 눈부비고 일어나서 또 뭐 먹고 왔냐고 묻는 것. 그리고 저녁에는 다른 친구 만나서 이런저런 속 깊은 얘기 하고선 개천을 따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일.


애초에 내가 네덜란드를 포함한 다른 외국 나라에 살고 싶었던 이유는 크게는 일의 질과 환경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좋았고, 원한다면야 어디에든 살 수 있다는 자유로움, 그 자체도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에서라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나도 그동안의 시간만큼 전문성이 쌓여서 언제나 장소에 국한되지 않은 일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젠 여행으로 새로운 사람을 매달 만나는 것보다는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게 더 즐겁기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욕망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다.


올해 초부터 생각하게 된 것은, 이제는 네덜란드에 있어도 딱히 그렇다 할 장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날씨가 안 좋거나, 유럽 사람들 속에 나만 아시안 사람이어서 불편하다던가 (내가 다수에 어느 정도 맞춰야 한다던가), 뭐 먹을지 생각해도 기대감이 드는 음식이 하나도 없다던가, 나를 설레게 하는 소품, 디자인을 찾아볼 수 없다는 단점들만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가면 이런 거 있을 텐데, 이 친구를 만날 수 있을 텐데, 여기에 갔을 텐데, 여기서 이거 샀을 텐데. 매일 한식을 먹고, 깻잎을 키우고, 집에 한국 전통 소품들을 일부러 내어 놓고 한국 책을 읽는다. 일은 네덜란드 일을 하지만 어차피 원격으로 하는 일이라 굳이 네덜란드에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네덜란드에서도 한국에서 사는 것을 꿈꾸며 살게 된 것 같았다.


올해 초 남편이 친구와 일본여행을 3주 정도동안 왔는데 1주일이 지나자마자, 이젠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요즘엔 1년에 중 11개월을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여행자로 사는 느낌이다.


그러다 오늘, 남편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약간의 언쟁 아닌 언쟁을 했다. 내가 갑자기 나의 '고향'인 한국에 5주 동안 '놀러 가느라' 남편 어머니 생일파티에 빠지는 것과, 또 앞으로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디서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남편, 나, 부모님 네 명이서 테이블에 둘러앉아 모두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결국에는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고 믿는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집으로 와서도 계속 마음에 밟히는 점이 있었다.


내 의지로 이곳에서 살고 있긴 하다만, 네덜란드에서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당연시된다는 사실이. 올해는 네덜란드에서 살겠다는 다짐은 평생을 이곳에서 살겠다는 다짐과는 다르다. 그리고 어찌 저지 해서 여기서 산 지난 8년, 이제는 됐다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지금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바로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내 몸 혼자라면 그냥 바로 집 팔고 한국으로 가서 일 다시 찾고 할 텐데, 우리는 둘이라는 가족이니까 현실적으로는 집도 묶여있고, 남편의 직장도 있으니 나 혼자 결정을 하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네덜란드에 계속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은 나의 존재, 기본 배경값 네덜란드가 되는 것인데 그 뜻은 내가 아주 한국에 가고 싶든 말든, 네덜란드에 있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것이다. 내가 장을 보던, 음식을 해 먹던, 티브이쇼를 보던 이 공간의 밖은 네덜란드라서 슈퍼에 가면 네덜란드어를 해야 하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불편함과 긴장감이 함께 하고 또 나의 친한 친구들을 언제라도 만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없어지는 상태가 기본값이라는 거다. 


행복해도 네덜란드. 슬퍼도 네덜란드.

그럴 바엔 그냥 

행복해도 한국, 슬퍼도 한국인 게 

나를 더 기쁘게 할 텐데.


남편 부모님과 한 언쟁 중에서 내가 임신/출산을 하면 당연히 네덜란드에서 하고 육아를 하고 계속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 갑자기 서운했다. 나는 이민자로서 네덜란드어도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영어로 네덜란드 사람같이 일도 잘해서 월급도 잘 타고, 이곳에 더 적응하고 싶다는 이유로 대학원도 다니고 했는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외우지 못하는(외우려고 노력하지도 않는) 남편 부모님에게 속상해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어서 갑자기 네덜란드어 공부를 집어치울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아직 이민자라서 네덜란드에 있는 게 엄청난 에너지가 쓰고 불편하다는 게 이제는 너무 당연해진 걸까?


영어로 가장이라는 말을 뜻하는 단어 중에 breadwinner라는 단어가 있는데, 예를 들어 나의 할머니는 가장이셨다.라는 말을 영어로 하려면 breadwinner라는 말을 쓰게 된다. 근데 우리 할머니는 빵을 안 좋아한다. 빵을 직접 사본 적도, 만들어 본 적도 없다. ricewinner라면 모를까. ricewinner라는 말을 대신 쓴다 한다 해도 가장이라는 한국어를 대체해 쌀 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영어로 써줬으니 한국인 입장에선 한번 봐준 거랄까. 내가 이곳에서 배우는 지식도 영어로 학습되는 것이니 정보와 언어가 이미 서양화된 것이다. 그 서양화된 언어와 문화로 배움을 하는 비서양인은 점점 알게 모르게 서양인화 되어간다. 꿉꿉하다, 침침하다, 배알 꼴린다, 느글거린다, 구소하다, 시원찮다, 슴슴하다, 짭조름하다. 모국어가 주는 특유의 느낌을 외국 단어를 찾고 찾아 대체시킨다 해도 나의 마음은 얼마나 전달될까? 아 화나,라는 말 대신에 upset이나 boos라는 말을 쓰는 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성적인 회로를 지나 입으로 내뱉을 때 나의 감정은 과연 얼마만큼 남았을까? 가끔은 벙어리가 된 것만 같다. 


이제는 지겹다. 배우는 거. 노력하는 거.

그리고 그게 당연시 여겨지는 게 서운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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