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모든 감각을 깨우는 행위다.
독일의 추운 겨울에 적응할 때쯤 공원의 산책도 익숙해져 갔다. 겨울새의 소리가 봄을 알리는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로 바뀌었다. 유럽을 생각하면 구구구구 소리를 내는 살찐 비둘기가 연상되겠지만 비가 부스스 내리는 겨울엔 까마귀 소리가 더 많이 들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국에서의 까마귀에 대한 의미와는 달리 상서로운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심)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날이 밝기 전 초등학교 아이들은 삼삼오오 친구들 또는 부모님들과 동네 골목을 지나 등교를 했다. 작은 마을엔 아이들의 재잘 됨으로 아침 산책이 시작되었다. 딸아이도 언니 오빠들 틈에 끼어 작은 가방을 메고 공원을 가로질러 유치원으로 향했다. 호수를 지나가야 했으므로 백조 가족을 만나는 건 일상이 되었다. 가끔 녀석들에게 딱딱해진 빵을 던져주면 호수 저 멀리에서 파도를 가르듯 날쌔게 헤엄쳐 오는 광경은 무섭기까지 했다. 물론 가끔 빵에 대한 집착으로 물밖으로 뛰쳐 나와 우리를 향해 좇아오는 날에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백조들도 아침 수영이 끝나고 아이들도 등교가 끝나면 공원은 나 같은 산책자의 전용 휴향림이 되었다.
고요함 속에 나뭇가지 사이로 세차게 불어대는 늦겨울바람 소리가 내 볼에 스치면 신선한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상쾌한 공기가 내 촉각을 깨우고 가끔 푸드득하고 숲 사이로 날아드는 까마귀의 날갯짓 소리가 내 청각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가끔 처음 보는 음지 식물들의 입들은 너무도 다채로워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키 큰 나무들 아래 잘 자라 있는 생명들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나는 점점 산책을 하며 내 온몸의 감각을 깨우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건 아마도 하루를 잘 살기 위한 명상 행위였던 것 같다. 독일의 산책길은 흙과 나무껍질과 이름 모를 작은 곤충들이 내 발아래 함께 했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는 날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나의 감각을 깨우는 산책은 계속 되었다.
2008년 독일 트리어 안토니에 하우프트 스트라세에(Germany, trier, Antonie haupt strasse) 살며 산책자로 살기 시작한 그 때를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