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마음의 해방
내가 독일에서 딸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문화 충격받았던 어떤 날이 생각이 나는 날이다. 여름이 다가오는 이맘때쯤 울 윤은 여섯 살이었고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좀 다니다가 낯선 땅 독일에서 살게 되었다. 한국은 유치원만 다녀도 남녀를 구분하는 색부터 옷의 종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의 취향마저도 사뭇 달랐다. 그건 아이들도 잘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살았던 독일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성의 구분을 초등기 즉 유치원에서는 구분하지 않았다. 딸아이가 수영을 한창 배울 나이 6살의 일이다. 한국에서 공수해 온 예쁜 누가 봐도 여자아이들의 상징색 분홍색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수영을 배우러 수영장을 다니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반 독일 소녀가 입고 온 수영복을 본 이 한국 엄마가 깜짝 놀라는 일이 생겼다. 그 여자아이의 수영복은 원피스도 비키니도 아닌 남자아이들이 입는 수영복 팬티만 입은 채 해맑은 얼굴로 물 밖으로 나와 탈의실로 선생님을 따라가는 게 아닌가? 아무도 그 여자아이의 상의 없는 수영복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만 빼고, 말이다.
그날의 문화 충격은 잊을 수가 없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한국에서 딸아이가 양말을 다른 색으로 신고 등원하고 물안경을 선글라스 대신 쓰고 등원하는 날에는 딸아이의 친구 엄마나 유치원 선생님으로부터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아주 특별한 아이가 되었다. 심지어 딸아이를 보고 웃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독일이라는 나라에서는 타인에게 피해 주는 일만 아니면 무엇이든지 허용되는 나라였다. 서양의 이런 문화가 동양인의 눈에는 자유로움을 선사했다. 여성의 가슴을 드러내는 일은 남녀를 구분하는 신체 일부가 아니라 그것이 남성에게 들어내는 섹시함의 일부로 인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의 한 부분이었다.
그 후 6살 딸아이의 독일 생활은 한국에서와는 사뭇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수영복을 비키니와 원피스를 가져갈 필요도 없었으며 탈의실도 남녀 구분이 있는 공간에서 갈아입을 필요도 없었다.
일 년이 지나 놀이터에서 독일 친구들과 모래놀이를 하다가 상의를 탈의하고 놀아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며 맨발로 숲을 걸어도 행복했고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언덕 위에서 구르며 깔깔대며 놀았고 그곳이 개똥이 천지여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어린 딸아이의 마음에 자유와 해방을 안겨 주었다. 어떤 타인의 시선도 신경을 쓸 필요 없는 진정한 자유를 알게 해 준 독일에서의 유년 시절이었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양인들에 대하여 때론 색안경을 끼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서 삶의 자유를 누리는 방법을 배운 건 분명 사실이다.
어린아이에게도 마음의 해방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