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떤 가족 01화

1. 짐승 셋, 사람 둘

이 집엔 왜 이리 짐승이 많아?

by Skylar

우리 가족은 다섯이다. 사람 둘에 개 둘, 그리고 고양이 하나. 개 둘을 데리고 살던 사람 하나와 혼자 살던 사람 하나가 합쳐지던 과정에, 혼자 버려진 길고양이 새끼 하나가 얹히며 완성된 조립식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모여 사는 집은 상당히 오래된 아파트라서, 잊을만하면 한 번씩 동네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을 집으로 청해 이곳저곳 수리를 해야 한다. 3년 전 그날은 이 집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사장님을 뵙게 된 날이었다. 현관 벨소리에 흥분한 강아지 두 마리를 겨우 진정시킨 나는 진땀을 흘리며 수리가 필요한 발코니 쪽으로 사장님을 안내했다. 그때 사장님이 말했다.


"이 집엔 왜 이리 짐승이 많아?"


발코니 바로 앞에 놓인 캣타워와 고양이 화장실을 보고 뱉은 말이었다.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미 강아지들 때문에 힘들게 집안에 들어왔는데 고양이까지 키우는 눈치니 기가 막혀서 나온 말일지도 모르겠다. 뱉듯이 던진 혼잣말이었지만 충분히 내게 닿을 만큼 크고 분명한 목소리였기에 나는 당황했다. 나에게 어떤 답변을 바라며 질문을 한 것도 아니고 짧은 감탄사 혹은 불평의 한 마디일 뿐이었지만 사장님의 그 말 이후 나는 어쩐지 주눅이 들어 있었다.


사장님이 볼일을 마치고 떠난 후, 나는 사장님의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내 마음을 흔들어놨을까 생각했다. 물론 '짐승'이라는 흔치 않은 워딩에 동물을 향한 사장님의 비호감이 묻어있기는 했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기가 죽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깨달았다. 세상의 편견,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열다섯 살 암컷 시츄 혜리와 아홉 살 수컷 시츄 타니, 그리고 네 살 암컷 고양이 단풍이를 데리고 사는 J와 나는 연인 관계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반적인, 그러니까 멀리는 우리의 부모님 세대부터 가깝게는 우리의 친구들 사이를 두루 둘러봤을 때 보편적인, 그런 가정의 형태는 아니다. 둘 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사십 대 중년인데, 아이는 없다. 물론 강아지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챙겨 키우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아이 키우는 집만큼 바쁘고 돈도 많이 들지만, 반려동물을 데리고 사는 것과 사람을 하나 키워내는 삶을 감히 빗대어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


J와 나는 종종 우리가 자식이 셋이나 되는데 다자녀 혜택도 못 받는다고 농담을 하지만, 나이 지긋한 어른들 앞에서 하면 불호령이 떨어질 몹쓸 말장난이라는 걸 잘 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아빠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애는 안 낳고 개를 끌어안고 산다'는 비판을 하는 분이다. 게다가 나는 요즘 넘쳐나는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 동물 애호가나 길고양이 케어테이커(이른바 캣맘과 캣대디)에 대한 비호감 여론이 상당하다는 것도 인지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삶의 형태가 정상 범주에서 벗어났고 남들에게 비판받기 좋은 것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집엔 짐승이 많다'는 한 마디가 큰 가시로 가슴에 박혔던 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떳떳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모여 살고 있고,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는 가족이다. 강아지가 아파서, 고양이가 말썽을 부려서, J가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아서, 그런 저런 이유로 힘들고 괴롭고 할 때가 많기는 한데, 그렇게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사는 게 가족 아니던가. 세상이 변하고 있고, 우리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또 포용해야 하고, 뭐 그런 멋들어진 얘기는 쉽게 하고 살면서 정작 내가 내 삶에 직접 부여한 다양성을 내가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엔 이런 모양새로 우당탕탕 살아가는 가족도 있고, 저런 사연으로 삐걱대며 굴러가는 집안도 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홀가분해졌다. 맞다. 인테리어 사장님의 말처럼 우리 집은 짐승이 많은 집이다. 사람보다 짐승이 더 많다. 개와 고양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도 없는, 하이브리드 가족이랄까. 네 발 달린 가족구성원들 덕분에 J와 나는 우리 각자의 부족했던 지점-배려심이나 준비성 같은-에 대해 깨닫고 모자란 구석을 채우며 산다. J와 나 모두 어딘가 조금씩 부족한 인간이건만 그런 우리의 존재만으로도 행복해하는, 털뭉치 친구들이 주는 사랑을 흠뻑 누리고 산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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