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떤 가족 02화

2. 강아지 반려인의 첫 관문, 산책

강아지 산책을 만화로 배웠습니다만

by Skylar

'강아지'와 '산책'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주는 느낌은 꽤나 낭만적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 그리고 바쁜 생활 속에서 숨 쉴 틈이 되어주는 산책. 이 얼마나 무해하고 여유로우며 아름다운 그림인가. 혜리와 타니를 만나기 전까지, 내 머릿속 강아지 산책이란 건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초원을 강아지와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이었다. 아뿔싸, 그렇다. 나는 강아지와의 외출이란 걸 '플란더스의 개'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배운 사람이었다.


그러니 혜리와 타니를 만나고 받았던 큰 문화충격 중 하나가 강아지 산책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산책이 어떤 선택적 여가활동이 아니라는 것부터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나에게 편한 박자대로 걷는 게 과거의 내가 생각하던 산책이었다. 강아지 산책이란, 그 내 맘 내키는 대로의 유랑에 강아지라는 예쁜 존재가 한 스푼 얹힐 따름인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강아지 산책의 현실은 내 상상의 정반대였다. 그것은 여유롭지도, 자유롭지도 않았다. 산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한순간도 내 뜻에 의해 결정되는 게 없었다. 오로지 강아지가 필요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강아지에게 적당한 온도과 습도일 때, 강아지가 원하는 노선을 그저 따라 걸으며 무엇보다도 강아지의 오감 자극과 그에 따른 배변활동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돕는 일이었다. 나의 게으름, 나의 귀찮음, 나의 아픔, 하여간 나의 그 어떤 것도 개님들의 산책보다 높은 우선순위를 가질 수 없었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혜리와 타니가 배변을 원활히 하지 못한다는 걸 훤히 아는데, 구(舊) 변비인으로서 내 사소한 사정 때문에 강아지가 똥을 못 싸게 한다는 건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다.


강아지 산책의 중대성을 깨달은 이후에는 시츄라는, 활동성 낮은 데다 고집까지 센 종을 데리고 산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배우는 일이 남아 있었다.


"지지, 지지, 안돼!"

"이제 가자, 응? 쉬야 응가 해야지."


먹으면 안 되는 것들로부터 강아지가 멀어지도록 얼르고, 요철이 심한 바닥에선 걷지 않겠다며 주저앉아버린 늙은 강아지를 달래며 느릿느릿 걷는 일. 다른 보행자나 남의 집 강아지에게 우리 강아지가 불편이나 두려움을 끼치지 않도록, 쉴 새 없이 리드줄을 조절하느라 바쁘디 바쁜 일. 세 걸음 걷고 멈춰 서서 킁킁 냄새를 맡고, 또 세 걸음쯤 걷다가 멈춰서 마킹을 하는 강아지를 따라 걷다 서다 하는 일. 여름엔 비처럼 쏟아지는 땀 사이로 달려드는 모기를 쫓으며, 겨울엔 칼바람에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필사적으로 개똥을 줍는 일. 강아지 산책의 현실은 어릴 적 TV에서 봤던 그야말로 그림 같은 강아지 산책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혜리와 타니를 위해 옷을 꿰어 입는다. 인간은 불편하지만 개는 행복한 삼보일쉬(三步一쉬)의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 나처럼 보잘것없는 인간을 하루에 여덟 시간이고 열두 시간이고 기꺼이 기다렸다가 순도 100%의 반가움으로 맞아주는 이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에게 하루에 고작 한 시간씩 두 번의 외출을 선사하는 건, 힘들어도 힘든 일이 아니다.


"산책 갈까?"라고 말했을 때 좌우로 갸우뚱거리는 고개와 팔락이는 작은 귀, '산책'이라는 두 음절에서 비롯된 설렘을 견디다 못해 토끼처럼 깡총대는 짧동한 네 다리, 기쁨이라는 개념이 어떤 물성으로 바뀌는 순간, 이것들을 목도하고도 이 불편한 외출을 감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혜리와 타니의 변을 봉투에 집어넣으며 그 적당한 크기와 색깔에 흡족해하는 나는, 혜리와 타니의 반려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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