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떤 가족 03화

3. 병아리인 줄 알았던 것

우리 집 막내가 된 아기고양이

by Skylar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한 번씩 병아리를 파는 행상이 왔다. 낡은 종이상자 속, 톱밥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고 따뜻한 병아리들. 양계장에서 병들고 약한 병아리들을 버린 걸 들고 와 파는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그럼에도 살겠다고 작은 부리로 삐약대는 생명의 모습은 기특하고도 귀한 것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4년 전 늦가을, 나는 많은 시간을 J의 집에서 보내고 있었다. J가 출근한 빈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다가 강아지들과 노닥거리다가 하는 게 그 시절 내 루틴이었다.


건물들이 촘촘하게 들어선 빌라촌, 1층 같은 2층의 J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노라면 밖에서 나는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근처 직장인들이 지나가며 수다 떠는소리, 택배 트럭이 차를 댔다가 뺐다가 하는 소리, 남의 집 강아지 짖는 소리, 그리고 병아리 소리...응?


내 귀에 그건 분명 병아리 울음소리였다. 높은음으로 선명하고 힘차게 반복되는 삐약, 삐약, 삐약. 요즘도 길에서 병아리를 파는 사람이 있나?


온갖 다른 소음에 묻혀 그 울음소리는 곧 사라졌고 나도 병아리 생각은 잊어버렸다. 그러나 밤이 되자 삐약대는 소리가 다시 시작됐다. 병아리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이 있나,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봐도 남의 집에서 나는 소리치고는 볼륨이 지나치게 컸다.


혹시...?


그즈음 내 절친이 길냥이 돌보기에 한참 열심이어서, 자기가 밥이며 간식을 챙겨 먹이는 어린 길냥이들의 사진과 영상을 내게 보내주곤 했다. 나는 삐약삐약 소리가 울려 퍼지는 골목의 영상을 찍어서 친구에게 보냈다.


"이거, 고양이 소리일 수도 있나?"


친구는 그게 아기 고양이 소리라고 확신했다. 그날 밤, 퇴근한 J와 함께 문제의 소리가 나는 쪽에 가서 랜턴을 비춰보니 거기에 정말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맞은편 건물의 주차장 화단, 에어컨 실외기가 있는 곳이었다. 마구 버려진 담배꽁초 사이에서 누군가가 쓰다 버린 일회용 마스크 끈을 입에 물고 있던 아기 고양이는 동공이 이만큼 확장돼서는 후다닥, 사라져 버렸다.

강아지 산책을 하다 보면 길에서 수많은 길고양이를 만나기에, 그날의 마주침도 그런 스쳐가는 만남 중 하나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기고양이는 절대 자기를 잊지 말라는 듯, 매일 지치지도 않고 삐약 댔다. 낮이고 밤이고 골목이 우렁찬 삐약삐약 소리로 채워지자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길고양이를 해코지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폭우가 내린 어느 날이 돼서야 삐약이는 조용해졌다. 걔는 차가운 가을비에 죽은 걸까... 했는데 웬걸, 다음날이 되자 시끄러운 삐약 삐약이 다시 시작됐다.


그게 반가워서 슬쩍 갖다 놓은 참치캔-그때는 사람 음식을 그리 함부로 주면 안 된다는 걸 몰랐다-은,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다 비워지지 않았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아기 고양이가 혼자 울어 젖히고 있다는 얘기에 친구는 말했다. 어미를 잃었을 거라고. 어미가 있었으면 아기가 그리 고래고래 울도록 두지 않았을 거고, 내가 갖다 놓은 참치캔이 그렇게 남겨졌을 리가 없다고.


며칠 후 다시 한번 세찬 가을비가, 그리고 한파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가 떴다. 어쩌지, 아기고양이가 또 비 맞고 이번에는 진짜 죽으면 어쩌지. 동동거리는 나에게 친구는 고양이 구조용 덫을 빌려 보라고 말했다. 노랑통덫이라고 찾으면 나올 거랬다. J가 혹시나 싶어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물었더니, 그가 진짜로 그 덫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게 빠르고 순조롭게 착착 진행되었다. 일이란 게, 그렇게 되려면 그렇게 되는 법이었다.


서울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반대쪽 끝에 있는 J의 친구 집에 덫을 빌리러 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J는 노랑통덫을 자꾸 노랑통닭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걔를 노랑통닭에 넣는 데 성공을 한다고 쳐. 그다음은 어떡해?"

"......."


그다음은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마스크를 물고 있는 고양이를 찾아가는 일도,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르는 참치캔을 따다 주는 일도, 이렇게 다짜고짜 구조용 덫을 빌리러 가는 일도. 평생을 책임질 각오가 선 게 아니라면 길 위의 생명을 함부로 구조해서도 안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일단 살리고 봐?"

"그러자."


그냥 살리자, 일단 살리자, 그 생각뿐이었다. 그 비바람을 맞고도, 담배꽁초 사이에서도, 살겠다고 소리 지르는 저것을 살리고 보자. 그때 이미 우리 마음속에 그 아이의 남은 생에 대한 책임감이 싹텄던 것 아닐까.

혼자 길 위에 남아 배고프고 두려웠던 아기 고양이는 너무나 쉽게, 단번에 덫에 들어와 주었다. 그리고 곧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눌러앉아서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단풍이는, 단풍이가 되려니 단풍이가 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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