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어떤 가족 04화

4. '평균'이라는 위험한 유혹

그렇게 극성 보호자가 된다

by Skylar

한동안 육아 예능 TV 프로그램을 열심히 챙겨 봤다. 순수하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풍파가 다 잊히는 듯했다. 이런 아이는 이래서, 저런 아이는 저래서 다 예뻤다. 그래서, 출연자들이 자녀를 전문가에게 데려가 발달 상황을 점검하는 에피소드가 나올 때마다 나는 혀를 차곤 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가를 데리고 학습 능력 평가를 하는 게 의미가 있어? 왜 극성부모를 못 만들어서 안달이야?"

"키도 모자라서 머리둘레가 백 명 중에 몇 등인지, 그딴 걸 왜 견줘봐? 하여간 우리나라 사람들 줄 세우기 참 좋아해."


그때는 몰랐다. 훗날의 내가, 내 새끼도 아닌 고양이 새끼를 놓고 얘가 남들만큼 컸는지 어쩐지 안달복달하게 될 줄은.

단풍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이고 한동안은 하루하루가 새로움에서 오는 기쁨으로 가득했다. 자고 일어나면 조금씩 키가 자라고 살이 찌는 단풍이의 모습에 어떤 사료와 간식을 먹일지 고민했고, 나날이 넓어지는 냥초딩의 활동반경에 맞춰 어떤 장난감을 사 줘야 할지 공부했다. 틈만 나면 유튜브며 인스타그램에서 전문가들은 뭐라고 조언하는지, 남들은 고양이를 어떻게 키우는지를 열심히도 찾아봤다. 그러면서 스멀스멀, 불안감이 싹텄다.


다른 고양이들은 간식에 환장하는데, 단풍이는 왜 츄르마저 먹다 말고 가는 거지?

이 고양이는 단풍이와 비슷한 월령인데 훨씬 커 보이네? 우리 단풍이는 왜 아직도 저렇게 작지?


나의 인터넷 검색창은 점점 '아기 고양이 평균 몸무게', '코숏 연령별 몸무게', '코숏 평균 체중' 같은 키워드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길고양이를 통칭하는 '코리안 쇼트헤어(코숏)'는 정식 품종이 아니기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관련 자료가 없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에 사로잡힌 초보 집사는 '평균'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코숏 키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면 평균 데이터가 있을 법도 한데, 그거 잘 찾아서 비교하면 단풍이가 정상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의 바닥에는 단풍이가 혹시라도 뭔가 모자란 존재일까 싶은 두려움이 있었다. 고양이를 포함한 동물의 세계에서는 약하거나 병든 새끼를 어미가 도태시키는 경우가 있다는 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먹이 활동을 나간 어미가 나쁜 일을 당했거나, 산만하기 그지없는 단풍이가 이소 중에 어미를 놓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풍이가 어딘가 잘못된 고양이라서, 아픈 아가라서 어미가 버렸을 가능성을 마음 한 구석에 품고 걱정했다. 다른 고양이에 비해 부족한 점을 뭘로 채워야 할지 몰라 간식이며 영양제며 장난감을 마구 사 들였다. 물론 그런 걸로 작고 입 짧은 아이가 갑자기 식욕이 폭발하거나 급격히 성장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느 겨울날, 내 무릎 위에서 뒤집어져 잠든 단풍이를 보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남들보다 더디게 자라는 아이면 어떤가. 그게 단풍이인걸. 아프거나 병들어 버려졌던 아이면 어떤가. 우리는 이제 함께 가는 가족인걸. 단풍이는 나를 믿고 배를 깐 채 쿨쿨 자는 내 새끼가 되어 버렸는걸.


결과적으로 단풍이는 누가 봐도 코숏 치고는 좀 작은 고양이가 됐다. 중성화 시기가 되었을 때에도 적정 체중에 도달하지 못해 수술 날짜를 미뤄야 했고, 성묘가 된 지금도 무게가 3.8kg가량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입이 짧아서 츄르 한 봉지를 4-5회에 나눠 먹는 희한한 고양이로 자랐다.


구토 문제로 찾아갔던 대형병원에서 간문맥단락증(PSS)이라는 간혈관기형 가능성을 들었기에 걱정도 된다. 그게 부족한 식욕과 작은 체구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거였다. 장기적으로 대비가 필요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막연하게 두렵지는 않다. 작으면 작은 대로 어딘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단풍이는 단풍이로서 잘 살아가고 있고 나는 집사로서 필요한 일들을 해주며 살아가면 되니까. 무엇보다도, 남들보다 잘하지 못하고 남들만큼 잘 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며 보냈던 내 어린 날의 불안감을 단풍이에게도 덧씌울 필요는 없는 거니까.




keyword
이전 03화3. 병아리인 줄 알았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