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도 느낀다, 둘째의 설움
모든 갓 태어난 것들은 예쁘다. 사람 아기의 귀하고 사랑스러움은 굳이 말할 것도 없다. 꼬물대는 아기 강아지, 아기 고양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심지어 봄에 푸릇푸릇 올라오는 새싹마저 그 빛나는 생명력으로 보는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태어난 지 고작 몇 주밖에 되지 않은 아기 고양이는 사십 대 인간 둘과 열한 살 노견, 여섯 살 장년 강아지가 섞여 있던 세상에 설렘을 가득 퍼뜨렸다. 그 빠른 움직임에 놀라 짖으며 날뛰는 일이 몇 번 있기는 했지만 강아지들은 생각보다 빨리, 각자의 방식대로 단풍이의 존재를 받아들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로 살아가는 혜리는 곧 단풍이에게 무관심해졌다. 반면 타니는 단풍이에게 관심 폭발, 애정 폭발이었다. 네 발 동물의 세계에서도 아기가 귀엽고 보호하고 싶은 존재인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단풍이가 중성화 수술을 받은 후 끙끙 앓고 있을 때 타니가 단풍이 옆에 가서 살을 대고 누워주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다 단풍이가 한창 쑥쑥 자라던 7~8개월령 때쯤부터 단풍이를 향한 타니의 짜증이 잦아졌다. 어제는 단풍이에게 먼저 놀자고 폴짝폴짝 뛰었다 엎드렸다 해 놓고, 오늘은 솜방망이를 날리며 장난을 거는 단풍이에게 버럭 성질을 내는 식이었다. 뻗치는 에너지로 사방천지를 쑤시고 다니던 단풍이는 갑자기 달라진 강아지 오빠의 태도에 당황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보호자인 우리도 타니가 언제 단풍이를 예뻐할지, 그러다 또 언제 돌변해서 화를 낼지 몰라 신경이 쓰이긴 마찬가지였다.
타니의 행동은 점점 퇴행에 가까워졌다. 혼자서 잘만 뛰어 올라오던 침대며 의자에, 이제는 올려달라고 바닥에 주저앉아 낑낑댔다. 내 품이든 다리 사이든, 단풍이가 즐겨 잠을 청하는 자리마다 타니가 먼저 뛰어와 눕기 시작했다. 장난감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타니가, 단풍이에게 흔들어주는 낚싯대에 열렬히 달려들기도 했다. 단풍이가 좋아하던 깃털 장난감 여러 개가 타니의 침으로 뭉개져 버려졌다. 타니가 전에 없이 징징거리며 가랑이를 파고들던 날, 가만히 지나가던 단풍이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며 짖던 날, 나는 깨달았다. 타니가 샘을 내는구나.
혜리와 타니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두 강아지를 대하는 J의 태도에서 묘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혜리에게는 한없이 스윗한 J가, 타니에게는 살짝 무심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혜리는 심한 아토피 때문에 피부 관리를 부지런히 해 줘야 해서-자칫하면 피가 나도록 몸 곳곳을 긁었다- 손이 많이 갔는데, 정성스럽게 혜리를 만지며 다정히 말을 건네는 J를 타니는 옆에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적극적이고 애교 많은 성격의 강아지였다면 차라리 대놓고 관심을 갈구했을 텐데 타니는 그러지 못했다. 드러내 표현도 못하고 J와 혜리만 번갈아 보는 타니의 눈빛에서 나는 더 큰 애정과 관심을 향한 갈구를 봤다.
"타니한테도 혜리처럼 잘해 줘. 아들이라고 너무 강하게 키우는 거 아니야?"
타고난 피부 질환에다, 원 보호자와의 이별로 마음의 병까지 든 채 J의 집에 온 혜리는 J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자신이 손수 받아낸 혜리의 새끼이니만큼 타니도 그에게 참 특별한 존재지만, 당장 혜리에게 쏠리는 마음이 더 바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의 지적 이후로 J는 타니에게도 같은 온도의 사랑을 주려 애썼으며 나는 나대로 타니의 부족한 자존감을 채워주려 애썼다.
그랬는데, 겨우 우리 넷의 애정관계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쯤 단풍이라는 천둥벌거숭이가 나타난 거였다. 혜리는 나이가 많고 아프니까, 그리고 단풍이는 아직 아기니까 우리의 손길이 닿아야 할 곳이 많았다. 건강하고 말도 잘 듣는 타니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있을 거였다. 돌봐야 할 존재가 둘에서 셋으로 늘었어도 아가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그대로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타니에게 가 닿는 우리의 눈길과 표현이 줄어든 것, 그게 팩트였다. 나와 함께 있는 단풍이를 바라보는 타니의 눈빛은, 과거 혜리와 J의 꽁냥댐을 부러워하던 그것에 가까웠다. 결국 나마저 타니에게 결핍을 안겨준 것 같아 나는 너무 미안해졌다.
고민하던 우리는 타니를 강아지 유치원에 보냈다. 강아지 친구들 사이에서 다양한 자극을 경험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오길 바랐다. 타니의 이상 행동에 대해서도 훈련사 선생님들과 상담하며 보호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를 배웠다. 비록 더디긴 해도 타니는 유치원에 잘 적응했고 퇴행행동도 줄었다. 유치원에서 잘 놀고 온 날이면 집에 와서도 흥이 채 가라앉지 않아 단풍이와 추격전을 벌이며 즐겁게 놀았다. 다견 다묘의 보호자가 된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그건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지금도 J와 나는 우리의 사랑이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도록, 손길이 한쪽에만 안 닿는 일이 없도록 애쓰고 있다. 누군가 단풍이를 안아줄 일이 생기면, 다른 한 명은 반드시 타니를 안아주는 식이다. 물론 그 반대로도 해야 한다. 혜리나 타니를 케어하고 있자면 단풍이 또한 J와 나에게 다가와 비비적대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보호자의 마음은 반려동물들이 더 먼저, 본능적으로 느낀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사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빈틈없이, 쉴 새 없이 관심과 사랑을 부어줘야 하는 게 반려동물과 우리의 사이라는 걸 그렇게 매일 느끼고 배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