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고양이는 세상에 없다
"고양이가 원래 이래?"
"고양이가 왜 이래?"
"쟤 고양이 맞아?"
단풍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 몇 개월간, J와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들이다.
갑자기 우리 삶에 쑥, 하고 들어온 단풍이는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존재였다. 고양이라는 동물에게 우리가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 가장 크겠지만, 보통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단풍이는 보이지 않았다.
상상했던 고양이의 모습 1: 조용하다.
등장부터 동네가 떠나가라 시끄러웠던 이 아기고양이는 집냥이가 된 후에도 조용해질 줄을 몰랐다. 단풍이는 배가 고파도, 응가를 할 때도, 그냥 심심해질 때도 냥냥거리며 사람을 오라 가라 했다. 그때는 사람 아기가 우는 걸로 의사표현을 하듯이 단풍이도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단풍이는 성묘가 된 지금도 자기의 상황과 의도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낸다. 닫힌 문 앞에서 문 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새벽에 혼자 잠에서 깼을 때 심심하다고 징징대며 우리를 깨운다. 너무 신날 때 '꾸르륵! 꾸웨엑!'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는 걸 보고 있자면 귀신이라도 들렸나 싶다. 캣타워 앞에 앉아서 누군가 올 때까지 울고 있는 건 다반사다. 캣타워 위 밥자리에 올라가 밥을 먹는 걸 봐 달라거나, 캣타워 기둥에 스크래치를 할 테니 와서 감상을 하라는 부름이다. 그리하여 집사가 당도했을 때, 캣타워에 올라가며 '끼양!' 하면서 힘주는 소리를 내는 것까지가 루틴의 완성이랄까.
상상했던 고양이의 모습 2: 깔끔하다.
고양이의 까끌한 혀와 침에서 나오는 성분 덕분에 고양이는 스스로 하는 그루밍만으로도 양호한 위생상태가 유지된다는 게, 내가 책과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이었다. 하지만 단풍이를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거실에 당당하게 찍힌 단풍이의 똥발자국과 마주했다. 하얀 펫매트 위에 종종종 찍힌, 이미 말라버린 똥발자국. 그게 최악일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단풍이를 안아 들었던 내 손에서 풍겨오는 묘한 악취. 배변이 잘못된 건지, 그루밍이 잘못된 건지 항문 주변 털에 묻은 변에서 나는 냄새였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걸까, 어미와 너무 일찍 떨어져서 배워야 할 걸 못 배운 걸까, 아니면 장이 좋지 않다는 신호?
이런 고민이 잦아들 때쯤 단풍이는 냥초딩의 시기에 입문했다. 호기심과 활동성이 함께 폭발하는 공포의 시기. 아차 방심하면 먼지구덩이에 거꾸로 처박혀 있거나 베란다 창틀에 앉은 검댕을 발에 묻혀 흰 벽에 발도장을 찍고 있는 단풍이를 발견하기 일쑤였다. 물티슈로 해결하는 것도 하루이틀, 결국 우리는 고양이용 샴푸를 사서 단풍이를 욕조에 담가야 했다. 요즘도 한 번씩 단풍이를 붙잡고 시꺼멓게 말라붙은 눈곱을 떼어 주는 게 J와 나의 일상이다. 그럴 때마다 단풍이는 불만이 한가득이다. 풀려나자마자 씩씩대며 한참 그루밍하는 걸 보면, 인간들이 자기를 더럽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상상했던 고양이의 모습 3: 독립적이라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이뤄지던 팬데믹 기간, 화상회의 중 화면에 난입한 반려동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화제가 되곤 했다. 남들이 그런 화면을 캡처해 올릴 땐 나도 같이 웃었다. 내 고양이가 업무나 학습 화면에 등장하는, 모골이 송연한 일들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때쯤부터 알게 된 사실은, 단풍이가 어마어마한 관종이라는 점이다. 집사의 관심을 좋아하는 단풍이가 가장 싫어하는 건, 집사가 컴퓨터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시간이다. 나의 화상강의에도 J의 화상회의에도 단풍이는 난입을 하기 시작했고 그걸 차단하려 방문을 닫자 문 앞에 앉아 애옹애옹, 불만을 제기했다.
단풍이의 관심과 애정 갈구 대상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아서 혜리와 타니가 장시간 집을 비웠다 귀가하면 냥사이렌이 가동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츄 언니오빠가 자기를 귀찮아하거나 별 관심을 주지 않았을 때,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보려고 혜리와 타니의 턱밑에서 떼굴거리며 생 쇼를 하곤 한다. 그것도 모자라 화장실 앞에 앉아서 '나 똥 싸러 간다!'라고 관객을 부르는 단풍이를 보고 있자면 저 동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갸우뚱하게 된다.
지금도 단풍이의 하루하루는 상식 파괴로 가득하다. 어떻게 떨어져도 무조건 네 발로 착지한다던 고양이가 캣타워 위에서 빙글 굴러 등부터 떨어지는 걸 보면서, J와 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다른 고양이가 어떤들, 세상 고양이가 다 조용하고 깨끗하고 독립적인 들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내가 데리고 사는 고양이가 저 모양인 것을. 단풍이는 단풍이 일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다. 이런 게 진정한 정신승리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