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사람으로 남지 않는 법
[정체성이란]
첫 만남으로도 분위기를 ‘홀리는 사람’이 있다. 비유하자면 애원하지 않아도 도도한 고양이처럼 낮게 ‘야옹’하고 울며 뒤돌아 제 갈 길을 가도 추종자를 만들어버리는 힘이다. 그들은 사랑받기 위한 표면적인 퍼포먼스를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감정에 충실할 뿐이다. 역설적으로 모두는 그 냉담함과 차가움에 열광한다. 그들과 같은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휩싸이지 않을 자신감이 기본으로 탑재되어야 한다.
자신감은 개인의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정체성으로부터 발현된다. 정체성은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내면의 자아가 조화를 이룰 때 완벽해진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행위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를 맞이하는 순간 자기 보존을 위한 폭력이 발생하고 온전한 정체성을 일그러뜨리는 것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어떠한 사람에게 ‘홀리는’ 본질적인 이유는 온전한 정체성을 열망하고 추종하고자 하는 욕구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온전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른 종 구성원들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동물은 오히려 무너진 정체성을 마주하기 나름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본인만의’ 정체성을 확립할 것을 강요한다. 대체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홀리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인가 ‘안정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인가.
[심리적 정체성을 찾아야]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례로 자기소개할 때 밝히는 성 이름에도 본관이 존재하며 재학 중인 학교 혹은 재직 중인 직장은 온전한 소속으로 인정된다. 모두 타인과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내용이긴 하나 정체성을 잃었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정체성을 찾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정체성의 본질을 잊었기 때문이다. '소속과 역할로 설명'되는 ‘사회적 정체성’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심리적 정체성’ 중 정체성의 본질은 바로 후자에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내적 속성보다는 사람을 감싸는 외적 속성에 압도되어 본질을 찾지 못한다. 그것은 본인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도 혼동을 일으킨다. 그런데도 우리는 심리적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않고 소속을 통해 정체성을 찾았다고 어떻게든 ‘위안 삼으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 위해 남의 시선을 필요로 하며 ‘멋진 보통 사람’으로 치장하려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가 아니라 외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지금까지 내 안에 나는 없었다. 오로지 남이 정의한 나만 있었을 뿐. 많은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체성을 인지하는 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통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온전히 본인의 본성과 작동법을 알면 된다. 내 머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이해하고 메커니즘을 따라가면 된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축선이 존재하며 이는 인간이라는 종이 동일하게 느끼는 무형의 것이다. 동작하는 인간은 회전축을 형성하고 단단한 회전체를 형성시켜 강력한 정체성을 발현시킨다. 이것이 우리가 누군가에게 홀렸던 이유이며 추종자를 만드는 힘의 원천이다.
우리는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나 오히려 무너질 필요가 있다. 무너지는 그 순간이 본인의 본성과 작동법에 대한 성장분을 내재화하는 단계이다.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지기 위해 틈을 찾아내고 메꾸어 나가는 과정의 반복이 인생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우리가 온전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은 이유이자 정체성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