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도구 : 문학 8
두껍아 두껍아
앞에서 주술에 대해 이야기를 했으니, 하나만 더 이야기 해보자. 어릴 적에 아이들끼리 모래밭에 모여 앉아 다음과 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재미있게 불렀다. 새집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이들의 소원이었는지 어른들의 소원이었는지 몰라도, 대한민국 사람들이 집과 같은 부동산을 좋아하는 무의식이 반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자기의 소원을 왜 굳이 느려터지고 못생긴 두꺼비에게 말하는 걸까? 소원을 빌고자 하면 멋지고 전능한 대상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옛날부터 개구리나 두꺼비는 생김새와는 달리,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재물과 복을 가져다 주는 영물로 생각했다. 고소설『두껍전』을 보면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를 깨우친 현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 좀 있는 집은 순금으로 ‘복두꺼비’를 만들어 장롱 속 깊숙이 넣어두기도 했다. 그리고 집 주변의 두꺼비는 함부로 잡거나 죽이지 않았다. 고구려 벽화에도 두꺼비가 그려져 있으니 그 뿌리가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두껍아 두껍아' 노래는 한민족의 집단무의식이 유전되어 자연스럽게 전달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두꺼비와 마찬가지로 거북이도 신령스러운 동물로 여겨졌다. 거북이는 다산보다는 장수의 상징으로서 영물로 여겨졌다. 고대가요에 보면 거북이를 토템으로 여기며 살았던 부족을 소재로 한 ‘구지가’라는 노래도 나온다.
거북아 거북아
'구지가'는 가야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고대가요로, 일반적으로 거북이에게 왕을 달라고 기원하는 주술적 노래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가사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숭배하는 토템에게 기원하는 노래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다. 그래서 '구지가'의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여기서는 '구지가'를 토템에게 무엇을 달라고 비는 노래로 해석하지 않고, 거북 토템을 몰아내는 김수로왕의 협박이 담긴 노래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는 곧 권력 교체를 강력히 요구하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만약 내어놓지 않으면,
불태워서 먹어버릴 것이다!
학교에서는 토템인 거북에게 왕을 달라고 기원하는 노래로 설명한다. 그러나 왜 기원의 대상에게 협박조로 말하는지 설명이 애매하다. 주술의 노래가 원래 그렇다고 하지만, 아무리 주술이라도 쫓아내고자 하는 대상에게나 협박조이지, 소원을 비는 대상에게 협박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종교도 자기가 소원을 비는 대상이나 절대자로 믿는 존재를 협박하지는 않는다. 물론 어떤 분은 자기에게 까불면' 하나님도 죽어'라는 이상한 망발을 하기는 했다. 그럼 그건 사이비이다.
‘거북’은 가야의 초기 지배 세력이 숭배하던 토템이었을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특정 동물을 신성시하는 토테미즘(Totemism)은 흔한 현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철기 문명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권력층이 등장했고, 그들은 동물을 토템으로 섬기는 신앙보다는 철기를 만드는 원천인 불과 태양을 숭배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을 확립하려 했다. 김수로(金首露)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성씨 ‘김(金)’은 쇠(金), 즉 철을 다루는 기술을 가진 세력을 의미한다.
이름이 그의 직업을 암시하는 경우는 신라의 성씨인 박, 석, 김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박혁거세의 박(朴)을 파자하면, 나무 목(木)에 점칠 복(卜)이 결합된 글자이다. 혁거세는 커다란 신단수 아래에서 점을 치며 미래를 예언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박혁거세'의 주술에 복종하며 처음에는 그를 왕으로 섬겼다.
그러나, 박씨는 석탈해(昔脫解)와 같은 철광석 제련자에게 밀려난다. 석(昔)씨는 돌(철광석)과 관련된 성씨로 알려져 있으며, 그가 숯을 이용해 제련기술을 갖춘 사람임은 그의 설화에도 잘 나타나 있다. 땅속에서 숯이 묻힌 곳을 발견하고, 이를 자신의 조상이 살던 옛 집터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석씨도 결국은 철기로 무기를 만드는 경주 김(金)씨에게 밀려난다.
이러한 흐름을 보면, 신라 왕조의 교체 과정은 주술적 권력(박씨) → 철 제련 기술자 권력(석씨) → 철기 무기를 다루는 권력(김씨)으로 발전해간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철기로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집단은 강력한 힘을 갖게 되며, 이는 군사적 우위를 제공한다. 하물며, 거북 토템을 섬기는 청동기 부족에 가서는 협박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권력을 빼앗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구지가'는 철기 문명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이주 세력이, 기존의 토템 숭배자들에게 권력을 넘길 것을 요구하는 ‘협박 선언’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여지가 있다.
거북(토템)아, 거북(토템)아!
이제 그만 너의 머리(권력)을 나에게 내놓아라.
내 놓지 않으면,
바로 너를 불태워 죽여버릴 것이다!
'구지가'는 단순히 흘려 넘길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몰락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는 역사적 기록이다. 토템 신앙을 기반으로 한 사회가 철기 문명을 가진 불과 태양 신앙 세력에게 밀려난 것이다. 거북이를 향해 "머리를 내어놓으라"는 요구는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기존 권력이 새로운 세력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이처럼, 새로운 질서를 거부하는 권력은 언제든 도태될 수 있다. 단순히 가야 건국 신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국가, 기업, 개인은 철저히 밀려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변화하지 않으면 구워먹힌다.
두꺼비에서 거북이로, 불과 태양에서 박달나무 사제로, 그리고 사제에서 철을 제련하는 기술로, 또 다시 철의 제련에서 철의 활용으로 문명은 발전해 왔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 시대이다. '구지가'에서 '거북이'가 왕의 자리를 내놓고 물러나야 했듯이, 혁신을 거부하는 조직이나 개인은 새로운 세력에 의해 철저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한가운데에 있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터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빠르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AI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는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겠지만, 이에 적응하지 못한 국가는 경제적, 군사적, 산업적으로 철저히 뒤처질 것이다.
하지만, 미래 교육을 선도해야 하는 대한민국 교육은 현재 의대 신화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지금 의대는 풍요와 장수의 신화이며, 숭배의 대상인 토템이 되버린지 오래 되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의대생 다오'라고 노래를 부를 지경이다. 정원을 2,000명 늘린다는 말에는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대한민국 교육계 전체가 한 길로 움직였다.
심지어 지역 의대의 모집인원 증가와 맞물려서 지방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느니, 남들보다 먼저 준비하려면 7세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7세 고시가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술 더 떠, 7세 고시가 유행을 하니 남들보다 더 빨리 준비를 시킨다고 이제는 5세 고시와 3세 고시도 나온 판이다. 이건 좀 미친 거 아닌가?
갈수만 있다면야 좋은 거는 알겠지만, 이래저래 다른 나라들은 최첨단 기술을 놓고 사활을 건 경쟁 중인데, 우리나라는 의대 정원을 놓고 사활을 건 경쟁을 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의 머리를 다 들어낼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