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부터 1897년까지 MAN AG와 함께 식물 부산물(바이오매스) 연료로 가동되는 압축착화 방식의 새로운 엔진의 실용화를 위해 연구와 시제품 제작을 하였고,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 끝에 실용화에 성공하고 세계 각국에서 특허도 냈다. 특허전문 특허는 곧 Sulzer와 Krupp에서 라이선스를 받아가면서 돈방석에 앉는다.
자동차 엔진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디젤(Diesel)’이란 명칭을 만들어낸 사람.
바로 디젤엔진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다.
처음 디젤엔진을 개발했을 때 루돌프 디젤의 아내가 ‘디젤엔진’으로 부르자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뒷이야기가 있는데, 꼭 그 이름이 아니었어도 그가 이것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년이라는 세월 때문이다.
위의 기록에 따르면 마치 4년 정도 연구하고 디젤엔진이 개발된 것 같지만, 디젤엔진을 구상화하고 상품화되는데 루돌프 디젤이 바친 시간은 무려 20여 년이었다.
심지어 시험적으로 제작한 엔진이 폭발하면서 죽을 위기를 넘긴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석유를 정제해 나온 등유는 등불용으로 적합해 19세기 후반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초기 석유산업은 등유를 추출하고 남은 검고 끈적끈적한 부산물의 용도를 찾지 못해 태워버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정제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유를 뺀 부산물에서 휘발유, 중유, 경유 등을 추출해냈다.
이것이 2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혁명을 가져왔다.
값싼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이를 활용한 기계 발명이 이어졌다.
1885년 독일의 카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거의 동시에 휘발유로 작동하는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를 발명했다.
1897년에는 루돌프 디젤이 디젤엔진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하지만 1900년까지도 휘발유 자동차는 비주류였다.
그해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4192대 가운데 증기자동차 1681대,
전기자동차는 1575대였고, 나머지 936대만 휘발유 자동차였다.
1908년 헨리 포드가 가볍고 힘이 좋은 저가 승용차 모델 T를 개발해 대량으로 보급했다.
이로써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그 와중에 나온 디젤에 대해 휘발유 엔진을 사용하던 업자들이 디젤을 얼마나 중상모략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비디오 수준이었을 것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그림 속 엔진은 1893년 디젤이 MAN에서 만든 실험용 단기통 엔진이다.
당시 연료는 지금의 경유가 아니고 등유였는데, 연료효율이 휘발유보다 2배나 좋았다고 한다.
그 후 디젤엔진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제형 엔진으로 알려지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광산, 공장, 선박, 기차, 건설장비, 트랙터용 엔진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순식간에 루돌프 디젤은 백만장자가 됐다.
그러나 가솔린 엔진과 증기엔진 제조업자의 시기와 모함 중상 모락 등이 엄청났다고 한다.
그러다 1913년 9월 루돌프 디젤은 영국에 세워진 디젤엔진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선을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던 중 실종되었는데 그로부터 2주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일설에는 당시 군비확장에 올인하던 독일 정부가 해전용 잠수함 U보트에 디젤 엔진을 적용할 계획 중이었는데, 적이 될 영국에 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돌프 디젤은 독일의 권고를 무시했고, 결국 독일 비밀경찰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설이 있지만, 전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유서까지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부분 역시 미스터리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