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동안 한 놈만 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에 그 성과는 모두와 공유한다.

by 발검무적

프랑스 파리에서 독일인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뮌헨 공과대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세계 최초로 '기포 없이 투명한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를 만들어

이미 관련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다른 것이었다.

역사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그의 연구성과를 요약한다.

1893년부터 1897년까지 MAN AG와 함께 식물 부산물(바이오매스) 연료로 가동되는 압축착화 방식의 새로운 엔진의 실용화를 위해 연구와 시제품 제작을 하였고,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 끝에 실용화에 성공하고 세계 각국에서 특허도 냈다. 특허전문 특허는 곧 Sulzer와 Krupp에서 라이선스를 받아가면서 돈방석에 앉는다.


자동차 엔진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디젤(Diesel)’이란 명칭을 만들어낸 사람.

바로 디젤엔진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다.


처음 디젤엔진을 개발했을 때 루돌프 디젤의 아내가 ‘디젤엔진’으로 부르자고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뒷이야기가 있는데, 꼭 그 이름이 아니었어도 그가 이것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20년이라는 세월 때문이다.

위의 기록에 따르면 마치 4년 정도 연구하고 디젤엔진이 개발된 것 같지만, 디젤엔진을 구상화하고 상품화되는데 루돌프 디젤이 바친 시간은 무려 20여 년이었다.

심지어 시험적으로 제작한 엔진이 폭발하면서 죽을 위기를 넘긴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석유를 정제해 나온 등유는 등불용으로 적합해 19세기 후반 세계에 널리 보급되었다.

초기 석유산업은 등유를 추출하고 남은 검고 끈적끈적한 부산물의 용도를 찾지 못해 태워버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정제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유를 뺀 부산물에서 휘발유, 중유, 경유 등을 추출해냈다.

이것이 2차 산업혁명의 에너지 혁명을 가져왔다.

값싼 에너지가 공급되면서 이를 활용한 기계 발명이 이어졌다.

1885년 독일의 카를 벤츠와 고틀리프 다임러가

거의 동시에 휘발유로 작동하는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를 발명했다.

1897년에는 루돌프 디젤이 디젤엔진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하지만 1900년까지도 휘발유 자동차는 비주류였다.

그해 미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4192대 가운데 증기자동차 1681대,

전기자동차는 1575대였고, 나머지 936대만 휘발유 자동차였다.

1908년 헨리 포드가 가볍고 힘이 좋은 저가 승용차 모델 T를 개발해 대량으로 보급했다.

이로써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가 열렸다.

그 와중에 나온 디젤에 대해 휘발유 엔진을 사용하던 업자들이 디젤을 얼마나 중상모략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비디오 수준이었을 것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그림 속 엔진은 1893년 디젤이 MAN에서 만든 실험용 단기통 엔진이다.

당시 연료는 지금의 경유가 아니고 등유였는데, 연료효율이 휘발유보다 2배나 좋았다고 한다.

그 후 디젤엔진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경제형 엔진으로 알려지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광산, 공장, 선박, 기차, 건설장비, 트랙터용 엔진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순식간에 루돌프 디젤은 백만장자가 됐다.

그러나 가솔린 엔진과 증기엔진 제조업자의 시기와 모함 중상 모락 등이 엄청났다고 한다.

그러다 1913년 9월 루돌프 디젤은 영국에 세워진 디젤엔진 공장의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기선을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너던 중 실종되었는데 그로부터 2주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일설에는 당시 군비확장에 올인하던 독일 정부가 해전용 잠수함 U보트에 디젤 엔진을 적용할 계획 중이었는데, 적이 될 영국에 기술이 넘어가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루돌프 디젤은 독일의 권고를 무시했고, 결국 독일 비밀경찰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설이 있지만, 전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유서까지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 부분 역시 미스터리에 빠져 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이 아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루돌프 디젤의 20여 년간의 실패,

그 후의 대성공은 그의 실패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엔

너무도 컸다.


전술한 바와 같이,

중간에 어떤 성공의 기미도 없이 20년 동안 하나의 기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생을,

그것도 젊은 나날을 바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성공하고 나서 자신의 20여 년간의 그 노력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았다.


그의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디젤엔진이 급속도로 퍼지게 되었고,

자동차용으로는 1922년 벤츠가 트럭에 적용했고,

승용차 또한 1936년 벤츠가 사용하게 되었다.

소음이 크고, 진동이 심했기 때문에 아무도 승용차에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후 전기차 열풍 전까지 디젤은 휘발유 자동차에 앞선 모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20여 년 동안 내가 모든 젊음을 다 바친 기술에 대해

모든 이들이 내가 만든 기술을 그냥 사용해도 좋다며

풀어놓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독점되어선 안된다고 기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는

모두가 공유하고 사용하면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루돌프 디젤은

20여 년 동안 자신이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해

완성품에 해당하는 과학기술을 개발하는데 핵심기술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아는 과학자였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조국 독일과 싸움을 하고 있는

영국에 기술을 전수하겠다는 결정 또한

범인들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실패를 거듭하며 뭔가 하는 일에

얼마의 시간과 공을 드렸는지 잘 모르겠다마는,

실패가 거듭되고 단 한 번의 성공도 없이

미래가 까맣게 되어

도통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면

성공 단 한 번으로 그 이전의 수많은 실패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을 위한 시행착오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공을 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하더라도

당신이 그것으로 좌절하고 일어서지 못할 때가 아니라면

그것은 실패라고 할 수 없다.


당신이 디젤처럼 당신의 이름을 달 무언가를

발명해내기 위해 그렇게 온몸을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인생에 있어

무언가 이루어내어 보겠다고 노력하는 것이라면

수백 년 전 디젤이 했던 그것보다는 작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아직 20년은 불과하고

10년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온 몸을 던졌다고 할 수

없는 단계 아니던가?


당신의 실패가 시행착오가 될지

좌절이 될지는

당신을 써주지 않는 고용주나

당신을 계속 떨어뜨리는 시험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의지이고 생각이 아닐까?


당신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어제의 실패로 인한 좌절감보다는

성공을 위한 당당함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