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허락된 시간에 모든 것을 걸다
당신의 인생이 서른 하나에 끝난다고 한다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아들로 16명의 형제 중에서 13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음악가가 될 생각은
아버지에게도 본인에게도 없었다.
그저 취미로 하던 음악에서 아름다운 미성이 눈에 띄어 빈 궁정 예배당의 소년 합창단 단원에서부터 바이올린 주자까지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거쳤다. 그 유명한 살리에리(천재 모차르트를 질시하던 노력가)에게 음악이론 공부를 했다.
13세에 작곡을 시작하였고,
15세에는 최초의 서곡을 썼다.
16세에 교향곡을 작곡한 이래 계속하여 교향곡 2,3번, 가곡 '마왕(Erlkonig)', '들장미' 등을 작곡하였는데,
18세 때까지는
모두 140곡이나 되는 아름다운 가곡을 썼다.
그는 16세부터 그의 아버지를 도와 보조 교원으로 3년간 일한 외에는
아무런 공직도 없이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그렇게 그는 ‘가곡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가곡들을 작곡했고, 낭만파 음악의 첫 장본인으로 여겨지며, 시대 상 바흐 - 모차르트 -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천재 음악가로서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인물이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생활 속에서 31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600곡이 넘는 예술가곡을 비롯하여 교향곡, 피아노곡, 실내악곡 등 많은 유산을 남겼다.
그는 소심했으며 실패를 달고 살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법은 징병제였기 때문에 일정 연령이 된 남성은 군대를 가야 했다.
당시 슈베르트의 입장에서 군대를 안 가는 유일한 방법은 학교 선생이 되는 것뿐이었다.
음악 쪽으로 진로를 삼고 싶었던 슈베르트는
학교 선생이라는 직업이 내키지 않았으나
군대를 가고 싶지 않아서 결국 1814년,
17세 때부터 아버지의 초등학교에서
조교사로 일하면서 저학년의 수업을 담당했다.
이 해에 슈베르트 최초로 발표된 큰 작품인 F장조의 '장례 미사곡'을 작곡했는데 이때 독창을 맡았던 한 살 아래의 테레제 그로브(Therese Grob)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테레제 부모의 반대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사랑에 실패한 소심한 음악가는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음악을 찾았다.
19살이던 1816년, 초등학교 교사 일에
신물이 난 슈베르트는
마침 자신이 원하던 라이바흐의 초등교원양성학교에 음악교사 자리가
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 들어가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또 실패했다.
친구 슈파운이 몇 개의 가곡을 출판할 것을 제안하고 그중에 괴테의 시를 바탕으로 한
작품 몇 개를 추려서 괴테에게 보낼 것을 제안하자 슈베르트는 고심 끝에 승낙했다.
하지만 괴테는 화를 내며 그 수준이 낮다며
악보를 되돌려 보냈다.
소심한 슈베르트는 실망했다.
1827년, 슈베르트는 경제적 어려움과 인정받지 못하는 불우함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작곡했다.
바로 그 해에 자신이 가장 존경하던 베토벤이
죽기 1주일 전
그와 운명적인 짧은 만남을 갖는다.
이때 자신이 작곡한 작품 중 몇 곡의 악보를 베토벤에게 소개하자
베토벤은 그의 음악에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겨우 자신이 존경하던 인물에게 인정받고
만남을 가졌건만
베토벤은 일주일 후 세상을 떠난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자 크게 슬퍼했고
베토벤의 관을 운구하는 음악가들 중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죽기 불과 1년 전에야 피아노를 장만했다.
다시 말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그는 피아노도 없이 작곡한 것이었다.
이것을 두고 악기를 전혀 연주해 보지 않고
'머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쓴 것'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기타를 갖고 있었고
이걸로 악상을 연주해 가며 작곡했다고 한다.
그렇게 찢어지게 가난하고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했던 그는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위 그림의 설명처럼 그는 슈만의 롤모델이었다.
자신이 베토벤을 그렇게 존경에 마지않았지만, 결국 세상에 인정받지 못했고,
가난한 생활을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아마추어의 삶으로 펴보지도 못하고 끝을 맺었다.
그는 가난 때문에 오페라의 규모에 맞춘 '제대로 된' 작곡을 할만한 배경을 갖추지도 못했고,
'가곡의 왕'이 된 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먹고살기 위해 다작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요즘을 흔히 '백세 시대'라고 한다.
시대가 많이 변해, 서른 전에 결혼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만혼 시대가 되었다.
이제 10살이 되기 전인
당신에게 신이 나타나
당신의 삶의 여정이 서른 하나라고 말해준다면,
당신은 남은 20여 년을 어떻게 살까?
70을 넘게 산 사람이 시한부 병에 걸려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도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일어나 서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은 그렇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한 동물이다.
그것은 본능이다.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고 싶은 것 또한
사람의 본능이라면 본능이라 할 수 있겠다.
내가 추구하는 분야에서
대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주변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것 또한
사람으로서의 강한 본능이라 하겠다.
가난했고,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그가,
서른 하나에 인생을 마치면서
죽기 1년 전에서야 겨우 피아노 한 대 장만할 수 있었던
그의 삶에 무엇을 성공이라 하고
무엇을 실패하고 하겠는가?
그런데 당신들이 알고 있는 슈베르트는 어떠한가?
불우하고 우울하며 실패자인가?
아닐 것이다.
최소한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정도로
그는 유명한 천재 음악가이다.
그의 음악은 자연스러우며, 베토벤처럼 무겁거나 격하고 장중하지 않다.
그 교묘한 멜로디의 구사 방법은 모차르트에 비할 만하다고 평가된다.
기악곡에 있어서는 성악곡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질서 정연한 형식미보다는 자유로움을 드러내는 것에 더 가깝다.
결과적으로 생채적인 화성 기법은 낭만주의 음악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슈만, 브람스, 볼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이 슈베르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후배 음악가들로
손꼽힌다.
자아, 그럼 그는 인정받지 못한 불운한 음악가였을까?
그는 그 잦은 실패와 인정받지 못하는 삶 속에서도
꾸준히 그렇게 살아갔고 살아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
당신도 천재 음악가라고 알고 있을 정도라면
그의 삶이 불운했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당신의 젊은 날이
얼마나 오래갈지
그 기간이 언제인지 객관적으로
딱 부러지게 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당신이 아무리 100세까지 한다 할지라도
당신의 젊은 날은 한정적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젊은 날의 가치를
아직 모르고 있거나
모르고 지나친 후
후회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농후하다.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기 마련이다.
당신의 지금이 돌아오지 않을 젊은 날이라면
당신의 삶이 서른 하나에 끝난다면
당신은 당신의 젊은 날을 그렇게 허망하게
훌훌 날리며 쓸 것인가?
잊지 말고 기억하라.
당신 삶의 가장 멋진 날은
바로 오늘일 것이며
그 오늘을 당신의 가장 기억에 남을 날로
만드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