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데, 공부도 못해, '그래도' 그림은 잘 그리잖아!
아버지는 화가 지망생이었던 미술 교사였다.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급학교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어려워했고
졸업이 어려울 정도로 학습능력이 저조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14세 때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였는데,
이때부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미술공부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학교 규칙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다시 마드리드에 있는 왕립 미술학교에 다녔지만 결과는 같았다.
17세 때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으며
이 무렵부터 프랑스와 북유럽의 미술운동에서 많은 자극을 받고
특히 A. 르누아르, H. 툴루즈 로트레크, E. 뭉크 등의 화법에 매료되어
이를 습득하려고 노력하였다.
철저한 독학과 자기 뛰어넘기의 반복이었다.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습능력도 꽝이었으며
집안도 가난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림 하나에는 독보적인 재주를 보였다.
아버지 호세는 아들에게 새 다리를 그려오라고 시켰는데
결과물을 보고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네가 내 꿈을 이루어 다오."
그가 바로, 천재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이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이었음에도 프랑스 파리로 간다.
1900년 19세 때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가 가진 것은 오직 평생 '탁월한' 그림실력 하나였다.
가난하고 자살까지 결심했었지만 20세에 첫 전시회를 열면서
그는 요절한 다른 화가들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단기간에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 꽃 투성이 길이 었을까?
피카소는 파리의 비참한 생활상에 주목하여 거지와 가난한 가족 등을 그렸다.
청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때를 피카소의 ‘청색시대(靑色時代)’라고 부른다.
이때 제작된 작품들은 하층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생활 참상과 고독감이 두드러졌다.
또한 파리에서 동고동락하면서 지낸 절친한 친구였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가 비극적인 자살을 함으로써 그의 충격은 더했다.
자신이 어려운 시기,
그것도 인성과 실력을 막 쌓아가던 시기
함께 하던 친구의 죽음은 견뎌내기 쉬운 고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명 화가로서의 길을 계속 걸었고,
80이 넘도록 장수했으며,
무엇보다 생전에 14만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려내서
기네스북에 '가장 많은 작품을 만든 미술가'로 등재되어 있다.
그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은 여성편력이다.
나이 6, 70이 넘어서도 20살 갓 넘은 지금으로 보면 손녀뻘 되는
여자들과 살림을 차려 자식을 낳기도 했다.
여자를 유혹할 때, 엄청난 사교력을 구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신을 어제보다 더 내일보다 덜 사랑한다"
이 말 한마디에 신세 망친 여자가 한 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가 죽은 후, 그 충격에 동반 자살을 한 부인까지 있었다.
돈도 잘 벌고, 그림도 잘 그리고, 여자까지 많았으니 무슨 실패며
무슨 좌절이냐고 반문할 독자들이 있을 법하다.
그는 늘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다.
그 오만함에 가까울 정도의 당당함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의 결핍에 기인한 것이다.
그가 다작을 하고, 너무 짧은 시간에 작품을 완성한다는 이유로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때 그는 당당히 이렇게 말한다.
"보통 사람은 흉내 내고, 천재는 훔친다."
그는 자신을 자극하는 그 모든 것에 오감을 열고, 솔직했다.
당시 유행하는 그림에서부터 아프리카 조각까지 온갖 예술에 자극을 받았고
그것을 자신의 작품에 여과 없이 투영했다.
그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아름다운 한 여인이 파리의 카페에 앉아 있는
파블로 피카소에게 다가와 자신을 그려 달라고 부탁하며
적절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피카소는 몇 분 만에 여인의 모습을 스케치해 준 다음 50만 프랑(약 8천만 원)을 요구했다.
여자가 놀라서 항의했다.
"아니, 선생님은 그림을 그리는 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잖아요?"
피카소가 대답했다.
"천만에요. 나는 당신을 이렇게 그리는 실력을 얻기까지 4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실제로 14만 점이나 되는 그의 모든 작품이 각광을 받았을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실패로 인정받은 것이 더 많았다.
그렇게 돈이 많은 피카소였음에도 그는 늘 자신의 작품이
얼마에 팔리는지 궁금해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결핍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늘 확인받고 싶어 했다.
여성편력 역시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면
그러한 결핍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멋지게 승화하고
뒤돌아보지 않는 쿨함으로 연기했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뭐냐고?
그렇게 많은 실패작과
비난 속에서도
그의 도전은 아흔이 계속되도록 지속되었다.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그가 한 말속에
그 근거가 들어있다.
입체파는 기존의 미술과 다르지 않다.
기존의 미술과 같은 원칙과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입체파는 이해되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 사람들은 이것을 볼 수 없었고, 없는 것처럼 간주되어 왔다.
나는 영어를 읽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영어 책은 내게는 백지와 같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내가 모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탓할 수 있겠는가?
-1923년 출간된 마리우스 데 자야스의 "피카소 어록(Picasso Speaks)"에서.
당신에게도 여러 가지 결핍적 요소가 있을 것이다.
없다고 우긴다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치자.
어찌 되었든 당신이 그 무언가에 느낄 결핍과 갈증이
당신의 삶을 조금씩 좀먹고
당신을 우울하게 만들며
심할 때는 당신을 저 심연의 고독으로 끌고 가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이
당신에게만 생기는 것이고
이제까지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다고
자책하고 자해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말이다.
결국 그 심연의 고독과 우울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란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과 천재가 구분되는 이유는,
실패와 성공이 갈리는 이유와 같다.
당신이 그것을 떨치고 당당히
일어서면 성공이 되어
오늘 당신이 겪고 있는 그 고통이
술 한잔 하며 떠올리는 그 옛날이 되는 것이고.
그 우울에 사로잡혀
계속 손톱만 물어뜯으며
자해하는 것에 그치고
이불속으로 숨어버린다면
그 현재가 당신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아흔이 넘도록 끊임없이
실패를 무시하려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자신이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쪽팔려하기보다
자신이 잘하는 한 가지에 올인하여
천재 백만장자가 된 바람둥이 할아버지를 보라.
당신은 한국어도 하고
어줍지만 영어도 할 것이고
그도 안된다면 아직 그보다 젊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