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의 황제가 된 백수건달을 아시나요?
중국의 황제가 되었음에도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기록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의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다.
법가사상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가 된 진시황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저 그렇게 제대로 배운 바도 없으니 그저 동네 백수건달로 자랐다.
그는 패현(沛縣: 지금의 장쑤 성, 상하이 남부에 있는 패현) 출신으로 원래는 진(秦) 왕조의 정장(亭長: 10리 정도의 땅을 관리하는 낮은 벼슬)이었다.
성향은 게으르기 짝이 없었다.
늘 술에 빠져 살았고 술집 여자들 꽁무니나 따라다니는 백수건달로 유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인부들을 호송하여 여산(驪山)으로 가던 도중에 인부들이 많이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임무를 완수할 수 없어 추궁당할 것이 두려웠던 그는, 아예 인부들을 모두 풀어주고, 자신도 따라온 인부 10여 명과 함께 망탕산(芒砀山)으로 도주한 후 100여 명을 더 모아 패현 관아의 문서 담당자 소하(蕭何), 감옥관 조참(曺參)과 몰래 연락을 취하였다.
이렇게 한심하기 짝이 없는 젊은 날을 보내고 동네의 불량배들, 개고기 장사꾼 등을 불러 모아 진나라에 대항하는 반란군을 만들어 마흔이 되어 자신의 인생기에 전환기를 맞고,
중국 대륙의 가장 긴 시절 통일왕국을 세운 이가
바로 한고조 유방(劉邦)이다.
그가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 53세의 일이니
그가 누린 황제로서의 행복도 그리 길지 않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영웅들은
'같은 시대에 나왔더라면 유방을 주군으로 섬길 것이다.'라는
찬사를 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술 마시고 싸움질하는 나날 속에서도 왕도와 패도를 논하는 등 남다른 데가 있어서,
믿고 따르는 자들이 많았다고 전한다.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
그리고 세상은 한 사람의 영웅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운이나 대세에는 모름지기,
'흐름'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흐름을 읽고 영웅들을 부리는 자만이
그 넓은 중국 대륙의 황제가
될 자격이 있다고들 한다.
영웅 항우는 하지 못했지만
유방은 중국 대륙의 황제 자리를
차지하고야 만다.
그가 한나라 왕이 되어 4년을 보내고 나서 다시 황제로 오르던 날
그 축하연을 벌이는 자리에서 자신의 역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나는 장량(張良)처럼 교묘한 책략을 쓸 줄 모른다.
소하(蕭何)처럼 행정을 잘 살피고, 군량을 제 때 보급할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에서 이기는 일을 잘하느냐 하면, 그 분야에서는 한신(韓信)을 따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세 사람을 제대로 기용할 줄 안다.
반면 항우(項羽)는 단 한 사람, 범증(范增)조차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천하를 얻고, 항우는 얻지 못한 것이다.”
그가 천하를 제대할 수 있었던 설명이 축약된 한마디라고 하겠다.
'지인 선용(知人善用)'
사람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다.
유방은 그야말로 사람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못난 인물임을 알았다.
잘난 영웅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그대로 피력해주는 못난이 왕이었다.
그래서 그는 영웅들을 모두 포용하고 부리는 입장의 황제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을 비난하면 불쾌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치고 사과할 줄 알았다.
그가 만약 모든 것이 뛰어난 영웅에
잘난 집안 출신이었다면
쉽게 할 수 없었을 일이었다.
돈도 없으면서 남의 잔치에 1 만전을 내놓겠다고 허세를 부리고 쓰고
상석에서 자리도 비켜주지 않을 황당한 오만함이 있는 이였다.
한신이 제나라의 임시 왕이라도 시켜달라며 요구하였다는 장량의 말을 듣고 제나라의 왕으로 봉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내라면 마땅히 진짜 왕을 해야지 임시 왕이 다 뭐라더냐?"
엄격하기 그지없는 법가사상으로 유지되던 진나라가 멸망하게 된 것도,
그렇게 뛰어나고 못하는 것 없는 절세의 영웅 항우가 자멸하게 된 것도,
항우에게 매번 지고지고 또 졌지만
결국 마지막에 이겨 천하를 차지한 것도
결코 운이 아니었다.
그가 한 것은 별로 없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장기를 두면 왕으로 이기는 장기는 없다.
아니, 왕으로 이기는 방법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왕이 죽으면 게임에 진다.
왕은, 황제는,
영웅을 부릴 뿐이다.
그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의견을 따를 '뿐'이라고 한다.
그 다른 전문가(영웅)의 의견을 따라
합리적인 방식으로 결제 도장 찍어주는 게
유방의 능력이었다.
유방은 그저 듣기만 한 자가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은 것이었다.
그가 엄격하기 그지없는 법가사상에
넌더리를 내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제시한 것은
아주 간략한 세 가지 법만 지키라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행은 그의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지금보다 당시(기원 전이다.)의 평균 수명이
짧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마흔이 되도록 동네 백수건달로 지낸
그의 삶이
지식을 수양하거나 덕을 닦으며
잠룡으로 지냈다고 포장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몇 살이든
당신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몇 년을 준비한 시험에서 좋지 않은
결과만을 봐서 실망하고
지쳐 좌절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당신이 더 잘할 수 있음에도
게을러서
혹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즐길 것 다 즐기면서
뭔가 준비합네하고
백수생활에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그런 당신이
한고조 유방같이 될 것이니
더 외상술 많이 마시고
놀러 다니라고
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정말 큰 오산이다.
오늘의 이야기에서
한고조 유방이 겪었을 실패는
일생 전체에서 5분의 4에
해당하는 시절을
변변치 못하게 지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하등 하게.
그렇지만 그는 시대의 흐름이 왔을 때
그 흐름을 읽었다.
그리고 그 흐름을 탈 줄 알았고,
주변의 영웅을 읽을 줄 알았으며
그들의 의견을 듣고 따라주었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주군을 만난 영웅은
결코 주군을 베고 올라서려 하지 않는다는
영웅들만이 아는 심리를
그는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었다.
당신이 게으르지도 않고
방만한 생활을 하지도 않으며
나름대로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데
되는 일도 없고
불러주는 이가 없으며
써주는 회사나 주군이 없다고
결코 실망하지 마라.
아직 때가 안 왔을 뿐이다.
준비하라,
정작 때가 왔을 때
당신에게 준비가 되어있는지
당신에게 되물어봐라.
그는
그리고 그의 마흔까지의 삶은
이후를 위해 사용되기 전까지
준비단계였다.
마흔이 되도록
무책임한 듯 방만한 삶을 살았던 자가
어느 날 우연히
그저 중국 대륙의 황제가
되었다고 오독하는 일이
없길 바란다.